점심식사 후 주어진 20분의 자유
나는 출근하는 날이면 점심 식사 후에 산책을 한다.
이 시간은 나를 위해 만들어낸 작은 습관이다.
산책의 규칙이 있다면 꼭 혼자여야 한다는 것이다.
혼자 걷는 일이 누군가에겐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늘 주변에 안테나가 열린채로 살아가는 나에게는, 작지만 소중한 '쉼'의 시간이다.
나는 '관계지향적'인 사람이다. 늘 누군가와 함께하기를 좋아했고, 그게 즐거웠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나와 함께하는 시간'도 필요하다는걸 느끼기 시작했다.
주변의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나만을 신경쓰며 지낼 수 있는 순간이 필요하다고 느낀 것이다.
얼마 전, 상담자들과의 모임에서 이런 질문이 주어졌다.
"지금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그것을 가로막는것은 무엇인가요."
나는 눈을 감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떠올렸다.
나는 구름을 뚫고 일자로 내려쬐는 햇빛, 부드러운 바람에 일렁이는 나뭇잎이 햇빛을 받아 연둣빛으로, 진한 초록색으로 색을 바꾸어가며 반짝이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느라 눈은 미처 깜빡이지 못했고, 햇빛에 눈이 시큰거리는 감각을 온전히 느꼈다.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내 몸을 충전하는 감각에 집중했다.
"저는 편안하게 쉬고 싶어요."
나의 편안함을 가로막는 것은, "내가 지금 쉴 수 있는 시간이 있을까?" 라는 스스로에 대한 제약이었다.
가슴 깊이 숨을 들이쉴 수 있는 쉼의 시간을 가지기 위해 나는 매일 점심식사 후 산책을 시작했다.
긴 문장 속 중간의 호흡을 위한 쉼표처럼
내 하루에서도 그런 쉼표가 필요했다.
어릴 적 즐겨 본 <빨간머리 앤>의 만화에서
앤과 다이애나가 숲속에서 나무사이로 보이는 하늘과 햇빛을 바라보며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인다"는 표현을 쓴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 장면이 꽤나 인상깊어서
나무가 우거진 숲을 갈때마다 그 감동을 느껴보려 애썼던 기억들이 있다.
그 감동이 30대를 훌쩍 넘어선 지금에서야 밀려온다.
나무 사이로 밀려오는 햇빛을 보며, 일상에서도 다이아몬드 같은 순간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공간을 배회할 수 있다는 안정감
그리고 매일 조금씩 변하는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는 점이 만족스럽다.
공원의 갈림길에서 어느날은 오른쪽으로, 어느날은 왼쪽길로 돌아가기도 한다.
나의 작은 선택이 그 날 내가 느낄 풍경들을 결정한다.
길을 건널 때 보이는 서울타워의 선명도를 보며 그날의 날씨를 가늠하고 그에 맞는 음악을 선곡하기도 한다.
이런 일상의 반복이 내 삶을 쉬게 한다.
혼자만의 산책 시간에
나는 나만의 경계선을 그리고
그 선 너머 타인들과 적당한 거리에서 함께 한다.
단단한 보도블럭의 느낌, 그리고 바스락거리는 흙길에서 자잘하게 밟히는 모래알의 감촉
내 살갗에 닿는 따뜻한 햇빛과 시원한 바람,
각자의 방식으로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과 자연의 풍경들을 눈에 담는다.
내 귀에 스며드는 음악과 사람들의 소리들
나의 오감을 깨우는 이 모든 감각들이 주는 행복감을
나는 매일 20분씩 만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