돗자리는 사라졌지
나는 가끔 찜질방에 간다.
어릴 적에는 엄마 손에 이끌려 가던 공간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몸이 피곤하거나 괜히 쉬고 싶을 때 스스로 찾아가는 곳이 되었다.
잦은 세탁에도 꿋꿋이 살아남은 뻣뻣한 찜질복으로 갈아입고 들어서면, 우리는 모두 같은 옷을 입고 있다.
“날이 추워서 그런가, 사람이 많네.”
오늘은 다들 같은 마음인가 보다.
엄마와 익숙하게 60도의 황토방으로 들어간다.
옆 사람과의 적당한 거리, 몸을 뒤척일 때는 조심스럽게.
말하지 않아도 지켜지는 무언의 규칙이다.
따끈한 황토볼에 몸을 맡기고 눈을 감는다.
누군가 “자리 없나 봐” 하고 문을 닫으면, 이 온기는 더욱 소중해진다.
충분히 몸을 데우고 문을 열고 나오면 찜질방 ‘거실’이다.
모두의 공용 공간. 사람들은 매트를 하나씩 깔고 옹기종기 누워 있다.
누군가는 수건을 베고, 누군가는 휴대폰을 들고, 누군가는 깊이 잠들어 있다. 몸 하나 간신히 누일 매트 위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쉼을 보내고 있다. 내가 누울 자리는 없을까 하고 둘러보다가, 문득 여름밤이 떠올랐다.
하늘이 주홍빛에 스며들고 어슴푸레 저녁이 오는 시간, 가로등을 벗 삼아 골목 가장자리에 쪼르르 놓여 있던 돗자리들. 우리 집 대문 앞에도 어김없이 하나 깔려 있었고, 우리는 그 위에 앉아 허벅지에 빗살무늬가 남을 때까지 시간을 흘려보냈다. 밤공기를 맞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동생과 쎄쎄쎄를 하고, 간식을 나누어 먹던 시간. 각자의 집이 있지만, 대문 앞에 자기 몫의 돗자리를 펴고, 그 위에 모여 더위를 피하던 순간들. 돗자리를 오가며 싹트던 이야기들.
그 풍경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우리는 기어코 다른 장소에서 그 장면을 다시 만들어내고 있었다.
나는 매트 두 장을 들고 엄마와 나란히 앉는다.
달달한 미숫가루를 마시고 삶은 달걀 껍질을 까며 말한다.
“매트 두 장 깔았다고 괜히 맘이 놓이네.”
골목길의 돗자리 위에 앉았던 그 시간처럼, 오늘은 매트 위에서 느슨한 시간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