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 같은 독서

하지만 번번이 나에게 즐거움을 주지요

by 소라움

약속까지 남은 한 시간, 게임도 질릴 즈음 독서모임 책이 떠올랐다. 숙제였다. 습관처럼 영상으로 시간을 보내볼까 했지만, 마음 한구석에 숙제가 남아 있었다. 큰맘 먹고 이북 어플을 켰다. 이번 책은 성해나의 『두고 온 여름』. 책을 읽고 싶을 때면 어디서든 폰만 켜면 된다니, 참 좋은 세상이다. 신기하다 신기해~ 하며 작은 화면 속 책장을 넘겼다.


오랜만에 펼친 소설이다. 잘 읽힐까 하는 의구심은 금세 무너졌다. 단단히 다져진 흙바닥을 한 발 한 발 디디듯 묵직한 문장이다. 이래서 이 작가가 유명하구나. 풍문으로만 듣던 문장을 직접 만나는 순간, 행복하다기보다 흐뭇하고 흡족했다. 그리고 나는 작가가 이야기하는, 어딘가 있을지 모르는 ‘그들의 세계’를 엿보기 시작했다.

그렇다. 내가 알지 못하지만, 누군가는 살아내고 있을 세계를 가장 안전하게 지켜보고 경험할 수 있는 방법, 그건 책이다. “영상으로 보면 되지”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활자가 주는 상상력은 언제나 영상을 뛰어넘는다. 내가 아는 세계를 한 뼘 더 넓혀주는 매체는 확실히 책이다.


작은 경험을 강제로 넓혀주는 모임이 하나 있다. 대학교 친구들과 함께 만든 '독서모임'이다. 딱히 별칭이나 이름은 없다. 단순하게 졸업 후에도 만나자는 마음으로 시작됐고, 지금까지 길고 가늘게 이어지고 있다. 나는 이 모임을 ‘독서를 빙자한 맛집 모임’이라 부른다. 우리가 만난 날, 내 인스타그램엔 늘 사진과 함께 ‘독서모임으로 불리는 맛집투어’라는 문구가 올라간다. 웃으며 붙인 그 이름과 달리, 책과 밥 사이에서 오가는 우리의 언어는 묵직하다. 그렇게 우리는 책 한 권, 밥 한 끼로 달라진 삶의 궤적을 공유한다.


대학생 때 우리의 이야기와 사회인으로서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는 조금 결을 달라졌다. 가끔은 '그때 읽었던 책을 지금 다시 읽는다면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치곤 한다.


독서모임이라고 하면 꽤 거창하게 들리지만, 사실 우리는 아주 사소한 이유로 책을 고른다.
“표지가 예쁘지 않아?”,
“이거 유명하대, 재밌다고 하던데?”,
“너 이 장르 좋아했지? 내가 기억하고 있지~”,

"이거 재미있었는데, 같이 얘기하고 싶어."

그렇게 고른 책을 읽고, 웃고, 먹고, 수다를 떨며 작은 기쁨을 쌓아간다. 가끔은 말도 안 되는 결말에 분노하기도 하고, 서로 다른 감상평을 들으며 고개를 갸웃대기도 한다. 하지만 언제나 결론은 '그래도 덕분에 안 읽을 책 한 권을 더 읽었네'로 마무리된다.


독서모임은 가끔 숙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맛집 투어하려고 핑계 대는 거지!" 하고 웃어 버리지만, 그 덕분에 그 덕분에 평생 있는지도 몰랐을 책 한 권을 더 읽게 된다. 그래서 우리의 모임이 이렇게 가늘고 길게 이어져 오는 게 아닐까. 사소한 이유와 작은 배려들이 켜켜이 쌓여 우리의 모임을 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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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