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디로 나를 옮겨줄텐가.
나는 매일 아침 지하철을 탄다.
서울의 복잡한 지도 위에 그어진 색색의 선들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내가 지금 어디에 발을 딛고 있는지, 어디로 가야하는지, 얼마나 걸리는지가
'한 눈에 보인다'는 것은 나에게 꽤 든든한 일이다.
20대, 처음 구직을 준비하면서도
나는 모니터 위에 지하철 노선도를 띄워두고
"우리 집에서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를 먼저 계산했다.
가능성과 범위를 선으로 잴 수 있다는 건, 마음이 놓이는 일이다.
나는 지하철이 좋다.
움직이는 시간이 정해져 있고,
방향도 분명하며,
온도도 친절하다(약냉방칸까지 갖추었다니...)
이 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음 칸으로 넘어가는 선택권도 주어진다.
버스는 나에게 조금 어렵다.
초등학교 3학년, 친구와 처음으로 버스를 타고 경복궁을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반대쪽 노선을 타고 먼 길로 떠나버렸던 기억이 영향을 미친걸지도 모른다.
주머니엔 동전 하나 없었고, 어찌할 바를 몰라 발을 동동 굴렀다.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아주머님에게 용기내어 나의 사정을 말씀드렸고
몇백원을 얻어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던 날
그 날의 기억이 내 몸에 저장된 탓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가끔은 버스를 탄다.
쉴 새 없이 지나가는 바깥 풍경이 꽤 흥미롭다는건 부정할 수 없지만
나는 예측 간으한 시간, 친절한 전광판과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며
나를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지하철의 다정한 규칙성이 더 좋다.
그 안에서 나는 지루하지 않은 반복을 경험한다.
오늘도 나는 지하철을 탄다.
탔고 타고있고 또 탈 예정이다.
익숙한 발걸음을 옮겨 지하철을 타고
전광판을 흘깃 보며, 다음 역을 확인하고
누가 일어날지 눈치 싸움을 하며 슬그머니 앞에 서보는 보물찾기같은 시간도 마음에 든다.
잠깐 앉는 자리마저도, 작은 성취처럼 느껴지는 하루의 시작
지하철은 늘 같은 속도로 달리고
창 밖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일이 부지기수지만
내 마음의 풍경은 선명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