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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치즈 Jun 06. 2023

세 개의 직업, 아빠와 직장인 그리고 떡집사장님 남편

나는 내 영혼을 반쪽씩 나눠가진 5살 남매둥이의 아빠이다.

나는 판교에 있는 한 회사에 다니고 있는 직장인이다.

나는 성수동에 있는 떡카페 사장님의 남편이다.


올해 초까지 24시간 주 7일의 시간은 사실 내게 너무도 부족하게만 느껴졌다. 도대체 언제 자고 쉬고 취미를 운동을 사람들과의 교류를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체념한 채

그저 묵묵히 맡은 일만, 그렇게 지내는 게 맞는 길이라 생각하고 지내왔다.


그러던 어느 날 이미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표현할 수 있는 반열에 있는 가장이자 직장인인 분과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다. 많은 이야기 중(거의 내 질문)에 한 가지 답변이 매우 강력한 자극을 주었는데, 너무 뻔할 수 있지만 맞는 말이었다. "해야 하는 일을 안 할 수는 없다. 하고 싶은 일은 잠잘 시간을 줄여서 했다" 어찌 보면 이미 알고 있는 정답이지만 애써 외면하고 또 무시해 온 것 같다. 밤에 드라마 볼 시간에, 아침에 30분만 일찍. 얼마든지 내가 가진 시간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할 기회는 차고 넘쳤었다.


내 평소 루틴 점검해 보았다. 3가지 빈틈을 발견했다.


ㅡ 평일

서울에서 판교까지,

회사 어린이집에 함께 출근하기 위해 7시에 일어나 준비를 마친 후 5살 아이들은 한참 자고 있어야 할 시간인 오전 7시 30분에 아이들을 깨운다. 그리고 어렵사리 눈 비비고 일어난 쪼꼬미들은 나니아 연대기의 얼음마녀가 터키과자로 유혹하는 거 마냥 새로운 유혹으로 카시트까지 이끌려간다.


퇴근 시간,

저녁식사를 마치고 아빠를 목 빠지게 기다릴 아이들에게 서둘러간다. 함께 성수동 카페로 가서 엄마를 픽업한 뒤 집으로 향한다. 그럼 오후 8시 30분 정도가 된다. 씻고 잘 준비를 마치면 오후 9시 30분에서 10시 사이가 된다.

그럼 그때부터 야식과 함께 드라마나 유튭을 보다가 잠에 든다. (아님 그전에 저녁을 먹거나)

>> 오케이! 이 시간을 활용하거나 아이들 재우는 시간을 아내에게 부탁해서 운동시간으로 쓰는 것으로 결정


ㅡ 토요일

토요일엔 카페로 함께 출근한다. 그래서 금요일 저녁 퇴근길은 부모님 댁으로 향한다.


오전 7시 일어나 아내와 함께 성수시루에 간다. (예약주문이 많은 날엔 새벽 3시에 일어나기도)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에스프레소 더블샷 내리기. 아내가 카페를 해서 좋은 점은 맛있는 에스프레소를 주말에 무료로 무제한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깨알 어필을 해보면 원두를 고르기 위해 약 30여 개 제품 테이스팅을 통해 골랐고, 단가도 저렴이 원두보다 2배 비싸서 참 맛이 좋다. ㅎㅎ

아무튼 우린 토요일 아침마다 오늘 손님이 얼마나 올까 예언을 해본 뒤 떡케이크와 떡을 만들기 시작한다. 날씨가 오랜만에 화창하면 나들이를 가서 손님이 없고 궂은 날씨도 없는 편이다. 그리고 애매한 비소식은 더 최악이다.

장사가 정말 어렵다고 느낀 게 지난주 장사가 너무 잘되어서 동일 수량을 준비하면 이상하게 안되거나 그 반대로 수량을 적게 만들면 부족해서 못 파는 경우가 왕왕 발생한다.


다시 돌아와 장사 준비를 마치면 오전 11시가 된다.

늦은 아침을 간편식으로 때운 뒤 손님을 맞이하기 시작한다. 매우 높은 확률로 오후 3시~4시 사이는 손님 방문율이 낮은 편이다.

>> 오케이! 이 시간에 책 읽기


저녁 8시 가게를 마감하고 부모님 댁으로 가서 아이들을 픽업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저녁 10시 정도가 된다.

토요일 밤은 아내와 함께 애들을 재운 뒤 동네 산책을 하거나 넷플릭스를 시청하며 고단했던 일주일을 서로 격려하고 다독여주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마지막은 언제나처럼 침대 위 유튭 보다가 잠들기...


ㅡ 일요일

어린이집에서 사회생활 하느라 고생한 그리고 하루 3시간가량을 자동차 안에서 지루한 시간을 보낸 기특한 아이들을 위한 날이다.


둥이는 늦잠을 자면 보통 9시 정도에 일어난다.

>> 오케이! 그전에 일찍 일어나면 일어나는 만큼 내 시간이다.


아침을 먹고 나면 놀이타임이 시작된다. 요새는 아이스크림 가게 놀이가 최고 유행이다. 아이들과 역할 놀이할 땐 항상 주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대화의 스크립트가 정해져 있다.

내가 얼마예요?를 말해야 하는 순서에 이거 주세요. 나 생뚱맞게 아빠 뽀뽀해 주세요. 를 말하면 혼이 난다.


숨바꼭질, 자동차, 영웅과 괴물 등 놀이를 순서대로 마치면 어느새 점심시간이 된다. 작년까지만 해도 점심 먹고 낮잠을 잤었기 때문에 이 시간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었는데, 갑자기 낮잠이 아이들로부터 사라지는 바람에 우리는 이때 외출을 한다.


킥보드를 탈 수 있는 공원이나 놀이터에 가서 신나게 뛰어놀거나 체험 혹은 볼거리를 찾아 떠난다. 시간은 정말 희한하다. 아이들과 놀아주는 건 확실히 육체적으로 힘이 든다. 그런데도 시간이 빨리 간다. 물구나무서기는 1분이 억 겹의 시간처럼 느껴지는데 말이다.


이런저런 깨달음. 더 잘해주지 못했던 기억들의 죄책감에 대한 보상과 좋은 아빠가 되리란 다짐을 실천하기 위한 일종의 책임감과 함께 하루를 보내며 일요일은 또 하루가 끝난다. 월요일 시작을 위해 일요일 저녁엔 시간을 추가로 할애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적으로 평일 토요일 일요일 모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존재하고 있었다.


미래의 내가 오늘을 회상했을 때 그리고 우연히 이 글을 다시 읽게 되었을 때 머쓱해지지 않도록 오늘부터 시작해보려 한다.


그래서 이 글을 브런치에서 썼고,

오늘 저녁엔 운동하러 간다!


좋은 아빠, 든든한 남편, 신뢰받는 직장인으로 가는 길.

단단하게 밑받침이 되어줄 내 본연의 자아까지.


오랜만에 욕심을 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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