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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치즈 Jan 02. 2021

성인이 되기 전

내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장황하게 어디에서 내뱉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는데 드디어 한다.

"좀 지루할 수도 있으나 나의 순수한 욕심으로 쓰는 글이니 하품 인정합니다."


나는 노는 거 좋아하고 성적은 중하위권에 특별한 재능 하나 없는 평범한 아이였다.

그나마 말재주가 좀 있어서 반 애들을 많이 웃겼다는 점을 특징으로 잡을 수는 있다.


하나, 모든 부모님들이 바라는 공부 잘하는 모범생은 결코 아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중학교 3학년 때까지 매번 임원을 맡았다.

(아무래도 앞서 언급한 말재주로 인한 여파가..)


엄마는 내게 제발 임원 좀 그만하라고 부탁을 하셨으나,

투표로 하는 걸 나보고 어떡하란 말이요... 게다가 추천제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거부권이 없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각자 한마디 할 때 "제발 나 좀 뽑지 말아 줘, 엄마한테 혼난다"라고 외친 채 단상에서 내려왔음에도 회장으로 당선됐다.


성인이 되어서 들은 얘기지만,

당시 선생님들이 그렇게 얘가 임원인데 공부를 못하는 것에 대해 엄마 보고 뭐라고 했다고 한다. 마미 쏘리


아무튼 중학교에서 3년 연속 임원을 한 덕에 졸업식 때 공로상이라는 상을 인생 처음으로 받아보기도 했다.

(반에 햄버거를 3년 연속 돌린 것에 대한 값..)


그렇다. 거 딱 하나가 16살까지 살면서 내세울만한 거리였다. 난 그저 평범? 아니 그 이하에 위치한 사람이었다. 꿈도 없었고 의지박약에 장기 하나 없는...


그랬던 내가 변화하는 중대한 이벤트가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생겼다. 운동을 하게 된 것.

고1 2학기 늦깎이 태권도 선수로 전향하여 운동선수가 되었다. 놀랍게도 그토록 나약했던 내가 운동을 시작하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당시 부모님은 자율적으로 무언갈 하던 애가 아니었는데 갑자기 새벽까지 운동을 하고 집에 오질 않나, 평일 주말은 물론 공휴일에도 운동하겠다고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으셨었다고 한다. (좋은 쪽으로 말이다.)


아무튼 난 고3까지 그렇게 미친 듯이 노력해서 전국대회에서 은메달까지 따게 되었다.

그럼에도 원하는 대학을 가기엔 부족했다. 당시 기준 금메달이 있으면 수능 평균 7등급이 안전선. 은메달은 평균 4등급 이상이 있어야 했다.


7월, 그 사실을 알고 난 수능 공부에 매진하게 된다.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 조차 없이 그냥 했다. 집에 있는 모든 에이포 용지 양면이 시꺼매질정도로 쓰고 또 쓰면서 외웠고, 문제집을 모조리 풀고 또 풀었다. 그리고 9월 평가원 모의고사에서 원하는 성적이 안 나오면 수시로 다른 곳을 가기로 했었다. 다행히 결과는 기대 이상 달성.

당시 한국지리를 갑자기 1등급을 맞아서 선생님이 커닝한 거 아니냐며 묻는 해프닝이 있기도 했다.

아무튼 그때만큼 독기가 흘러넘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시간이 흘러 수능을 보고 합격 발표 당일이 되었다.  태권도장에서 아르바이트하다가 점심때 짜장면을 시켜놓고 결과를 보았는데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 날의 기억.

합격이라는 단어를 보고 그 자리에서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상가 한 바퀴를 뛰어 제자리로 돌아와 다시 조회를 해보았다.

다시 합격이라는 글자를 보고 나니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도저히 절제할 수 없었다 그냥 복받쳐 울었다. 그렇게 한 30분을 목놓아 울고 나서 불어 터진 눈물 젖은 짜장면을 먹었다.


이것이 지금의 나를 잊게 해 준 과거의 나 10대 때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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