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넷플릭스는 왜?
문화산업 절대적 규모나 생성되는 콘텐츠의 양은 미국이 큰 비중을 가지고 있다. 시대에 따라 간간히 새로운 문화가 주목받고 일부가 주류로 편입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일본문화는 70년대 경제성장과 더불어 새로운 것을 원하는 서구의 소비층을 공략했고, 열렬한 지지층을 만들어냈다. 그 결과로 대부분의 서구 사람들은 동양의 대표적인 문화이미지로 일본 콘텐츠 혹은 일본풍의 아이템을 제일 먼저 떠올릴 것이다. 00년대 들어서면서, 조금 더 새로운 문화 콘텐츠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은 한국에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일본/중국과 지리적으로 인접하지만 독자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고, 그 문화 자체가 독창적이지만 큰 이질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의 것으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가 해방과 전쟁을 겪으며, 고유의 정신을 새로운 기술로 표현하고 구축하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이라는 한국 콘텐츠로 소위 대박을 터트린 바 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오징어게임'은 신선하되 받아들이기 거북하지 않은 콘텐츠라는 것을 말해준다. 큰 성공 이후, 넷플릭스는 한국 콘텐츠 발굴에 지속적인 투자를 아끼고 있지 않다. 하지만 제2 제3의 '오징어 게임' 아직이다.
오늘 다루고자 하는 '택배기사'는 넷플릭스 6부작이다. 사실 필자는 2편까지만 겨우 봤다. 더 볼 생각은 없다. 넷플릭스임을 감안하고 이런 이야기는 맨 뒤에서 하기로 하고 콘텐츠로써 재미와 짜임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원작이 있던 없던 그게 만화에서 오던 소설이든 간에 콘텐츠로써 짜임새가 있었야 한다. 세계관을 구축하고 설정을 했다면 일관성 있고 설정을 벗어나 몰입을 방해하는 내용을 없어야 한다. 물론 상영시간 내내 완벽해야 한다는 것을 아니다. 최소한 콘텐츠의 흐름과 시청자 혹은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지 않아야 한다. 사실 '택배기사' 1-2화을 통해 나의 몰입을 방해한 요소(설명부족과 설정의 붕괴) 딱 3가지만 이야기하고 글을 마치고자 한다. 더 언급하기에는 가치가 없다.
첫째,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운석충돌을 원인으로 설정하고 있지만 그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부족한 점이다. 운석이 떨어져 인류의 대부분이 죽고 일부만 살아남았다. 도입부에 내레이션에서 지구가 그렇게 되고 인류가 죽은 이유에 대한 나름의 설명을 하지만 부족하다. 이런 류의 콘텐츠에서는 설정이 전부다. 우리가 물리법칙이나 생물학적 법칙을 설정으로 바꾸긴 상당히 어렵다. (물론 그것 또한 가능하지만) 몰입을 방해하거나 시청자에게 이해시키기 매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디스토피아적 설정은 지구전반에 영향을 주는 하나의 큰 사건으로 벌어지는 일련의 결과들을 이해하기 쉽게 콘텐츠 초반부에 내레이션이나 영상으로 보여준다. 2화까지 본 필자는 아직도 왜 산소가 없어졌는지, 산소가 중요하게 언급되었지만 등장인물들이 싸우기 전에 갑자기 잘 차고 있는 마스크를 벗어던진다던지, 외부에 공기를 흡입했을 때 얼마간 버틸 수 있다거나 왜 위험해진다는 건지 등 설명이 없어 필자가 놓친 것이 없는지 몇 번을 돌려봤을 정도이다.
둘째, 디테일한 짜임새가 없는 부분이 많다. 택배기사가 납치와 살인에 연루된 사건을 조사할 때, 택배기사는 항상 동선이 파악되고 기록된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인 김우빈(5-8)은 조심성 없이 테러세력을 도우러 갈 때 회사로 받은 택배트럭으로 접선장소에 가는 장면은 가히 놀라웠다. 그 정도면 이미 정부나 회사(천명)에서 알아차려야 되는 거 아닐까? 또, 한 장면만 더 언급하자면 다른 주인공인 사월이라는 인물이 친구들과 김우빈의 트럭을 털려고 하는 장면이다. 30km로 속도제한을 표시하는 장치를 들고 트럭속도를 강제로 조절해서 아이들이 올라타려고 한다는 건데 그렇게 택배기사로 실력 있는 김우빈은 왜 매일 다니던 길에 이상한 표지판이 생긴 것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가? 갑자기 생긴 걸로 오해했다고 치자. 그럼 아이들이 시속 30 km로 달리는 트럭에 올라타는 것을 생각해 보자. 시속 30 km면 100m를 12초에 주파해야 한다. 올라타려면 최소한 순간적으로는 100m를 10초 11초로 달리는 속도로 뛰어야 된다. 식량과 산소도 부족하고 공기가 오염되어 마스크까지 끼고 뛰는데 그게 가능해라는 의문이 들었다. 미래인간은 뭐가 다른가? 이걸 계산하면서도 내가 왜 콘텐츠를 보며 이럴까 하며 현타가 오며 거기서 이건 2화까지만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셋째, 넷플릭스임을 감안하고도 설정이 별로다. 디스토피아의 세계관에서 중요한 설정은 생존 그 자체와 그 생존에 필요한 한정된 자원을 두고 벌어지는 이야기가 중요하다. 좀비물과 같은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에서는 생존 그 자체만 다룬다. '택배기사'는 생존과 한정된 자원 이 두 가지를 복합적으로 다룬다. 여기서는 운석충돌로 공기가 오염되고 산소라는 한정된 자원을 두고 인간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나고 그 산소를 가진 권력자들을 무너뜨리기 위해 싸운다는 설정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난민들은 왜 밖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산소도 없는데 어떻게 살아가며, 가끔 구호물자를 받거나 약탈을 하며 사는 것 같은데 어떻게 버틸 수 있었는지 그리고 일반구역/특별구역/코어로 나누어진 구역에서 자원은 어떻게 생산하며 분배는 어떻게 하며 누가 그걸 통제하는지 과연 '천명'은 왜 물자를 생산하고 나눠주고 관리까지 하는지 이러한 설정에 대한 설명이 없다. '천명'을 무슨 파멸시켜야 하는 악의 집단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거 같은데 전혀 공감이 안된다. 과연 디스토피아적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그렇게 기술개발을 하고 체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이익집단이 존재할 수 있느냐 말이다. 쓰다 보니 한 없이 길어질 것 같아 이쯤에서 이번 글은 마무리하려고 한다.
보지 않으면 더 좋은 콘텐츠, 그리고 한국에 투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