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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Amazing India 03화

처음 시내로 나가는 길

익숙한 도심 속에서

by Euodia

그렇게 며칠 후 먹을 것과 필요한 것들을 좀 사야 해서 처음으로 시내에 나가기로 했다.

시골인 꼬타누르에서 뱅갈로르 시내로 나가는 길은 마치 목숨을 담보로 하는 일 같았다. 아직 적응이 되지 않은 나에게 인도의 길거리는 혼돈이었다. 신호등이나 횡단보도는 고사하고 흙밭에 버스, 택시, 릭샤, 소, 닭, 들개, 사람들이 한데 뒤엉켜 다니고 있었다. 뭐가 그리도 바쁜지 횡단보도가 있었음에도 지나갈 수가 없어서 한참을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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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도착한 곳은 커머셜 스트리트인데 사람들의 정신없는 모습이 익숙한 시장에 온 거 같아 진짜 인도를 드디어 경험할 수 있겠구나 싶어 신나게 돌아다녔다. 총 천연색의 아름다운 옷감들은 내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고 사람들은 내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나는 그들이 신기했고 그들은 내가 신기했다. 사람들은 어디에서 온 외국인인지 무척 궁금해했다. 시골이라 외국인이 별로 없기에 그런 듯했다.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

“한국 사람이에요.”

“한국? 못 들어봤어요” 가 대부분이었다.

한국은 무엇으로 유명한 나라인지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 한참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고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있다고 하면 알아듣기도 했다.


쇼핑을 하며 사람구경을 하고 나니 처음으로 사람 사는 곳이 다 똑같구나 싶었다. 정상가격을 붙여놓고 판매하는 사람도 있었고 외국인이라고 (눈이 안 보이는 것은 아닌데, 가격표가 있음에도) 더 비싸게 부르는 사람까지 다양했다. 어울리지도 않는 스카프를 권하기도 했고 인도에 왔으면 인도 옷을 입어야 한다며 맞지도 않을 옷을 권하기도 했다. 복잡한 틈에서도 익숙한 상인들의 소리에 웃음이 났고 좀 편안해졌다.


뱅갈로르에서 가장 중심 상업지역인 MG 로드(Mahatma Gandhi Road의 줄임말, 대부분의 도시의 큰 도로는 MG로드라고 부른다.)는 시내 중심부에 있고 가장 번화한 곳이어서 쇼핑몰이나 레스토랑이 있어서 그나마 조금 질서가 있다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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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보는 도심뷰 속 커다란 빌딩들, 깔끔해 보이는 레스토랑, 버스 스테이션, 커피숍이 보이니 너무나도 반가웠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만 살아왔던 나에게 시골보다는 이런 도심이 더 익숙하고 안전하게 느껴졌다. 사람은 역시 변화를 어려워한다.


인도에 와서 처음으로 레스토랑을 방문해 찹스테이크 같은 스테이크와 구운 야채들을 먹는데 게눈 감추듯 허겁지겁 먹었다. 며칠 고아원에서 주는 인도 집밥은 세끼 모두 인도 남부식 커리였기에 강렬한 향신료는 처음이라 적응이 어려웠고, 너무 매워 입안과 식도가 얼얼해지고 배가 자주 아팠다. 물론 익숙해지고 나서는 적당한 선에서 맛있게 잘 먹게 되었지만 첫 한 달 정도는 위장에서도 인도 음식을 거부했었기에 레스토랑에서 먹는 음식은 당연히 꿀맛 그 자체였다. 오랜만의 외식이어서였을까, 아니면 향신료가 없는 음식을 너무 오랜만에 먹어서였는가. 살면서 먹었던 스테이크 중에서 가장 맛있었다고 기억을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나중에 다시 갔을 때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세끼 중 아침 정도는 직접 해 먹기 위해 커다란 슈퍼에서 아침으로 먹을 과일, 달걀, 식빵, 오트밀, 야채 종류, 우유 등과 반가운 레이즈 감자칩, 호기심에 인도 과자들도 몇 개 사고 여유를 부리며 커피도 한 잔 했다. 날씨가 워낙 더워 익숙한 31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어갔는데 커리맛이 있어서 웃음이 났다. 도전해 볼까 하다가 첫 아이스크림부터 그럴 수는 없어서 익숙한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며 버스 스테이션으로 향했다.


돌아오는 길이 너무 막혀서 저녁을 사 먹기로 했다. 저녁 메뉴는 인도 음식점이었는데 탄두리 치킨과 난, 볶음밥이었다. 왜 하필 인도 음식인 거야 했는데 처음으로 인도 음식이 맛있는 걸 알았다. 향이 조금 강하기는 했지만 적당한 간에 고소한 난과 입맛에 맞는 커리는 처음이었다. 그동안 내가 먹었던 인도 음식은 뭐였지? 싶을 정도로 맛있었다. 다 먹고 나니 미지근한 물과 라임이 담겨있는 그릇을 준다.

인도인에게 “이건 마시는 물이야?” 하고 물었더니 깔깔거리며 웃는다.

“손 씻는 물이야.”

라임 반쪽에 손을 닦아내고 물에 씻는 거였다. 인도 사람들은 탄두리 치킨이나 커리나 모두 손으로 먹기 때문에 (물론 숟가락과 포크를 쓰는 사람들도 많다.) 레스토랑에서는 이렇게 손 씻는 물이 대부분 나오는 편이었고, 라임 또는 레몬 한 조각이 들어있어서 손가락 끝을 닦고 손을 닦아낼 수 있다. 생각보다 커리 냄새가 별로 나지 않고 상큼한 라임향이 맴돌아 깨끗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도 쌈을 먹으러 갈 때 물티슈 대신 이런 라임 한 조각과 손 씻을 물을 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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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캄캄한 밤 시골길에는 가로등도 없었다. 해가 지고 나면 캄캄한 시골길은 사람이 없고 모든 감각을 동원해 집을 찾아가야 한다.

한 번은 캄캄한 밤에 아무것도 모른 채 돌아오는 길 무언가 물컹하는 물체를 밟은 적이 있었는데 아침에 보니 커다란 구렁이였다. 차에 치어서 죽어있었지만 아마 살아있었다면 물리지 않았을까 싶다. 특히 인도의 밤에는 조심해야 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들개다. 들개는 앙상하고 이빨이 매우 뾰족하며 사람을 향해 으르렁 거리다가 종종 달려들기도 한다. 몇몇은 들개에게 물리기도 했는데 사람을 노려보는 눈빛이 예사롭지가 않다. 만약 인도에서 들개와 대치중이라면 빠르게 돌을 줍는 시늉을 하거나 진짜로 돌을 들어 던져야 한다. 이런 행동을 해야 들개가 주춤하는데 이때 빠르게 목적지로 향해야 한다.




숙소에서 20분 정도 걸어 나오면 버스 정류장 근처 작은 슈퍼가 있다. 우유, 달걀, 식빵, 바나나, 약간의 채소들을 구입할 수 있는 곳이어서 종종 이용했는데 몇 주가 지나니 내가 익숙해졌나 보다.

내가 “Good Morning?” 하며 슈퍼를 들어가면 익숙한 젊은 점원들이 좋아하며 함께 인사한다. 사람이 많아서 인사를 못하면 꼭 찾아와 왔냐며 굿모닝 인사를 하고는 했다. 시골이라 외국인이 없어서인지 신기해하고 좋아해 준다.

이른 시간 슈퍼에 가면 장바구니를 들어주기도 하고 사람이 없을 땐 어떤 물건을 사는지 졸졸 따라다니며 “음, 이거를 먹는구나? 이거 맛있어? 이거는 어때?”하며 말을 걸기도 한다. 사람이 많은 동네였음에도 항상 그들의 친절의 대상이 되어 기분이 좋았다. 나도 그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며 스몰 토크를 매일 하다 보니 점원들과 친구가 되어갔다. (단, 외국인 남자에겐 딱히 친절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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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사람들도 익숙해져 갔다. 건너편에 사는 사람도 아침이 되면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함박웃음을 웃어주었고 나도 덩달아 기분이 즐거워진다. 자주 만나는 아이들도 활짝 미소를 지으며 손인사를 한다. 이렇게 인사 하나만으로 기분이 좋아지는데 한국에 와서는 무엇을 사러 가던 인사를 잘하지 않게 된다. 적응하기 어려웠던 몇 주간 내 얼굴이 어두웠는데 이 인도 사람들 덕분에 점점 웃게 되고 잃어버렸던 나의 표정들을 되찾아갔다.

서서히 이 시골 마을에 적응하며 태양이 나에게 주는 따뜻함이 무엇인지, 바람이 나에게 주는 시원함이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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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사이 많은 일이 있었다.

인도 음식에 적응하는 시간, 위장이 계속 아파도 먹을 것이 없으니 먹을 수밖에 없었고, 철 침대에서 잠을 자도 허리가 점점 괜찮아졌고, 태어남을 축하하는 일과 죽음을 애도하는 일도 있었다. 옥상에 올라가 빨래를 하려는데 물에 흙이 섞여 나오면 그냥 내버려 둔다. 여기에선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기에 ‘조금 있으면 제대로 된 물이 나오겠지' 하며 반짝이는 하늘을 쳐다보게 된다. 여행하며 가장 중요한 릭샤꾼과 흥정하는 법, 전반적인 인도의 물가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는 여유도 생겼다. 이렇게 인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나름의 질서가 있다는 것도 배웠다. 예전 같았으면 짜증이나 화가 날 일들에 웃음을 짓게 되고 그렇게 점점 물들어갔다.

처음에는 너무 온실 속에서 살아왔다는 걸 알게 되어 두려운 마음이 컸지만 인간은 변화를 싫어하면서도 적응이 빠르기에 첫인상과는 다르게 점점 익숙해져 편안해져 갔다.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그들의 삶 속에서 문화를 경험하고 아무래도 혼자 다니면 현지인들과 대화하기 편해 이야길 나누고 사진을 찍어주기도 하며 금방 친구가 되어가고 그렇게 만난 사람들을 알아가는 시간이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꼬타누르 마을 앞 버스 정류장은 커다란 나무 아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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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잘못 맞춰 나오면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할 때도 있는데 언제 지나갔는지 알 수 없으니 시내로 나가는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린다. 이 버스 정류장 주변에는 간식거리를 파는 사람들도 있고 간단한 아침을 파는 사람도 있다. 주변에 작은 가게도 있어서 제법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 곳이다. 정류장 주변 사람들에게 버스가 언제 지나갔는지 물어보면 대략 말해주기 때문에 여유가 있을 땐 작은 가게를 둘러보거나 간식거리를 구경할 때도 있다. 나에게 호기심을 갖는 사람들과 약간의 이야기를 나누며 버스를 기다릴 때도 있었다.

그러다가 잘못된 정보로 버스를 놓칠 뻔한 적도 있지만 신기하게도 사람들이 소리쳐 버스 기사에게 나를 태워가라고 말해주기도 한다. 모두에게 주목을 받으며 부끄러움 속에 버스를 타야 했지만 한 시간을 더 기다릴 수는 없으니 기다려주는 게 고마웠다.


어느 날, 주말이라 숙소에서 이른 점심을 먹고 MG로드로 나가 근처에서 팔지 않는 과일과 빵을 사고 커피도 마시러 나가는 길, 버스가 생각보다 빨리 와서 속으로 ‘럭키'를 외쳤다. 보통은 버스 시간을 몰라 30분 정도 기다리는 것은 보통이었는데 10분 만에 버스를 탔으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그런데 갑자기 버스 운전기사가 내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화장실을 갔나 보다 싶어서 좀 기다리는데 10분이 지나도 오지 않는 것이다. 나는 혼자 ‘이게 무슨 일일까’ 싶어서 두리번거리며 운전기사를 창 밖으로 찾아봤는데 보이지 않는다. 20분이 넘어가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혹시 버스를 잘못 탄 것은 아닌지, 다른 사람들은 왜 가만히 서서, 혹은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어렵게 사람들에게 물었다.

“왜 버스가 출발을 안 하나요?”

옆에 있던 한 여자와 남자가 이야기한다.

“버스 기사가 밥 먹으러 갔어요.”

‘응?’

내 표정이 이상했는지 옆에 있던 여자가 말한다.

“너도 밥은 먹잖아, 뭐 그럴 수도 있지.”

하며 가만히 기다린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바쁜 일이 있느냐며 묻고는, 이런 일은 종종 있으니 조금만 기다리면 기사가 곧 올 거라며 안심을 시킨다.

한국이었더라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라 어이가 없었지만 인도였기에 그런가 보다 하고 있었다. 시간이 좀 지난 뒤 시골엔 버스 노선이 워낙 길고 차고지가 멀기 때문에 버스 기사가 가끔 이렇게 간식이나 밥을 먹는 일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시내버스 터미널까지 가기에는 배가 많이 고팠나 보다. 30분 정도가 지나자 버스 기사와 차장이 올라타고 버스는 출발했다. 앞에 앉은 누군가가 “뭐 먹었어?” 등의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여유 있는 웃음을 지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그들의 모습이 늘 시간에 쫓기며 살았던 나의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배가 고픈 사람의 식사 시간마저 기다려주지 못하는 조급함이라니, 30분 전의 내 마음이 부끄러웠다.


이 일이 있은 후에 인도에서 지내는 동안 “뭐 그럴 수도 있지.”하는 마음이 생각의 습관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화가 나는 순간도 짜증이 나는 순간도 적당히 그냥저냥 넘어갈 수 있게 되는 거 같았다.

살아가다 보니 융통성 없는 나에게 ‘왜 그러지!, 왜 저래?” 가 아니라 “그럴 수도 있지.”는 단순한 생각의 차이였지만 결과적으로는 크게 달라져 있었다.

여행을 통해 철학자가 된다는 말은 이런 순간들이 모여 새로운 마음과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인 거겠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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