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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Amazing India 04화

인도에서 만난 천사들

고아원의 아이들 그리고 NGO 단체

by Euodia

가을로 향하고 있는 9월이었다.

우체국에서 편지를 부치고 오는 길 처음으로 원숭이 떼를 만났다. 약간 무서웠지만(인도에서는 이 원숭이들이 사람을 공격하거나 물건을 빼앗기도 한다.) 정신없이 사진을 찍으며 원숭이들의 식사 시간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나를 붙잡았다. 원숭이인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랐는데 고아원 아이들이었다. 내가 놀라자 재미있다는 듯 자기네 말로 깔깔 거리며 웃었다.

그렇게 몇 분 간 아이들과 원숭이를 구경하고 집으로 가는 길, 하얀 꽃이 너무 예뻐서 아이들에게 이름을 물어봤다.

“저 꽃 이름이 뭔지 알아?”

“White Flowers” 그러는 것이 아닌가. 나는 웃으며 그렇지 화이트 플라워지 했다.

아이들은 이건 분홍꽃, 저건 주황꽃 하며 꽃이 보일 때마다 이름이 아닌 색깔로 이야기해 주고, 이거는 바나나 나무, 저거는 망고 나무, 구아바 나무 하며 하나하나 이야기해 준다. 너무나 친절하게.

그러다가 갑자기 손을 잡고 빨리 뛰어가야 한다고 외친다. 벌집이 위에 있으니 여기는 뛰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구나 하며 엄청난 표정을 지었더니 또다시 뱀굴을 보여주며 이 안에는 뱀이 있다고 조심해야 한다고 심각한 표정으로 말한다.

내가 길을 가다가 카메라를 꺼내며 염소에게 풀을 먹이는 할아버지를 찍으려고 하자 한 아이가 저 할아버지는 무서우니 빨리 찍으라며 나를 가려준다.

빨리 찍을게 하며 후다닥 찍고 함께 걷는 길 아이들이 신나 하며 웃는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내 가슴 언저리에 콕 박혀 그 모습들이 떠나지를 않는다.



천사 같은 아이들


인도 역시 빈부의 격차가 워낙 크고 지방 소도시에는 여전히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다수이지만 산아 제한은 없고 15억 가까이 되어가는 인구수를 막을 수 없다. 법적으로는 사라졌다고 해도 뿌리 깊이 남아있는 카스트 제도로 인해 이들의 직업, 교육에는 알게 모르게 한계가 있고, 농촌 지역에서는 여전히 카스트의 분리가 남아있다.

인도 남서부, 카르나타주의 뱅갈로르. 그것도 도심에서 한 시간 남짓 들어가는 시골에 있는 고아원에 살게 된 아이들 중에는 부모님이 안 계신 아이들도 있지만 부모의 가난으로 키우기 어려워 보낸 아이, 지병으로 아이를 돌볼 수 없게 되어 보낸 아이 등 다양한 이유로 모여있었다. 여러 곳에서 후원을 받아 아이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학교를 다닐 수 있게 교복이나 책가방 등을 준비해 주고, 하교 후에는 한국의 방과 후 교실처럼 프로그램을 하기도 한다.

어떤 부모들은 자신이 좀 어려워도 아이는 더 좋은 시설이나 시스템에 따라 여기저기로 옮겨 보내기도 하며 그들의 종교에 따른 시설로 보내기도 하는데, 어떤 형제는 다른 종교가 운영하는 고아원으로 학기 중에 옮겨 가기도 했다. 사실 이 아이들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종교가 아닌 지속적으로 보내줄 수 있는 애정과 사랑, 끊임없는 안정적인 돌봄이다.

물리적 안정을 위해서는 맛있는 식사와 따듯한 잠자리가 필요하고 심리적 안정을 위해서는 내가 이곳에서 성장할 때까지 계속 보살핌 받을 수 있을 수 있다는 믿음을 줄 수 있어야 했다.

새로운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고아원에 적응하려 몸부림치며 이곳에서 조금 더 사랑받는 느낌을 받기 위해 애정을 구하고 예뻐해 주기를 바라는 눈빛으로 어른들을 바라본다.


나는 운이 좋게도 이런 스무 명 남짓한 천사 같은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거나 영화를 함께 보기도 하고, 이발을 해주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하고 친해지는 데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한 번 문을 열면 쉽게 친해지기도 한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아이들과 미술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처음에는 아이들도 미술을 처음 해보니 색종이, 크레파스 등을 사용하는데 장난치기 일쑤였고 프로그램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거나 관심이 없기도 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은 새로운 것에 즐거워하고 재미를 느껴갔다. 매주 표현 능력이 좋아지는 아이도 있고 몰입하는 태도도 달라지고 표정이 밝아진 아이도 있었다. 조금만 칭찬과 미소를 지어줘도 아이들은 방긋 웃으며 엄청난 노력을 하는 듯 액션을 취한다.

그림을 잘 그리는 것, 예쁘게 하는 것은 상관없었다. 질문에 대해 어떤 대답을 하는지, 내가 어떻게 표현하고 싶은지, 어떤 색으로 말하고 싶은지, 얼마나 즐겁게 하는지가 더 중요한 시간이었다. 고아원에 온 지 얼마 되지 않는 한 아이는 여전히 세상에 대한 상처로 마음을 열지 않았지만 고요하게 혼자 그 시간을 보내며 묵묵히 있는 것 또한 예뻐 보였다. 조금씩 친해지자 고아원의 엄마 아빠에게 영어로 편지를 쓰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있었는데 스펠링을 알려달라며 조용히 물어보는 아이도 있었다. 말로 할 수는 있어도 아직 영어를 쓸 줄은 모르는 아이도 있었기에 자신들이 말로 하면 영어로 적어달라며 소곤소곤 거렸다. 종이를 예쁘게 꾸미고 또박또박 고마운 마음을 적는 그 작은 손이 얼마나 귀여운지.

한 아이가 유독 마음에 걸렸는데, 마음을 표현할 때마다 검은색으로 불안함을 날카롭게 표출했는데 몇 개월동안 변함이 없었다. 지금쯤은 그 아이의 세상이 다채로워졌기를.


아이들의 생일 파티


매월 태어난 날을 축하하며 생일 파티를 하는 날, 신기하게도 케이크에 불을 붙이자 정전이 되었다.

“저절로 불이 꺼졌네? 신(God)도 이곳에서 너희를 축하하나 봐”

누군가가 말하자 모두 깔깔거리며 웃음을 지었다.

아이들에게 영어로, 까르나타어(인도 남서부 카르나타주)로, 한국어로, 축하 노래를 몇 번이나 불러주고 케이크를 잘랐다. 이곳에서는 케이크를 함께 먹는 것이 축하해 주는 의미로 통했는데 작게 자른 케이크 조각을 입에 직접 넣어준다. 아이들에게 “축하해. 축복해.”라는 말을 하고 한 명씩 안아준다. 아이들은 쑥스러워하며 웃는다. 아이들을 위해 준비한 작은 선물도 주면서 파티는 계속된다. 누군가의 존재를 축하해 주는 마음과 표현은 어디를 가든 기쁨 그 자체다.




꼬타누르 고아원에 머무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과 복지 서비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한국보다(남한 면적의) 33배는 큰 이 인도 땅 전역, 15억이나 되는 수많은 인구들이 살아가는데 델리, 뭄바이, 첸나이와 같은 큰 도시 외에 지역 소도시, 정부의 손이 닿기 어려운 곳곳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했고,

교육에 대해 꾸준한 관심이 있다 보니 소외된 계층들이 모여 살아가는 NGO단체 몇 곳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그중에서도 남부 몇 군데를 돌아볼 수 있었는데 고맙게도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시스템에 대해 들어볼 수 있었다.


NGO(Non-Governmental Organization),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공익을 추구하는 시민사회 조직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다양한 단체들이 있었다. 그중에는 도심에서 많이 떨어져 있어서 정부의 관리가 어려운 곳이나, 카스트 또는 여러 이슈로 사람들과 어울려 살기 어려운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들도 있었다.



샤론의 꽃 Rose of Sharon


인도에는 힌두교가 오랜 시간 뿌리내리고 있으며 당연하게도 힌두 템플이 어디에나 있다. 지금은 없다고 하지만 과거 신전에는 신전 여성(데브다스)들이 있었다. 그녀들은 신의 제물로 바쳐진 ‘신의 여인(하인)’이었는데, 말은 신을 위해 봉사한다지만 현실은 사제, 신전에 방문하는 상위 계급 남성들의 매춘을 위해 존재했다. 이 남성들은 신전의 여인들을 취하고 매춘한 돈을 신전에다가 바쳤고 그 돈은 신전의 운영비로 사용되었다. 데브다스들은 사람대접을 받을 수도, 교육을 받을 수도 없기에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꼬타누르에서 가까운 카르나타카 주에 있는 샤론의 꽃(Rose of Sharon)이라는 단체는 이런 데브다스들과 이 여성들이 낳은 아이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곳이다.

야자수가 우거진 골목으로 들어가 보니 작은 예쁜 집들이 곳곳에 모여 있었는데 9월이지만 따뜻한 기후에 피어난 다양한 나무와 꽃들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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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들어가자 몇몇 아이들은 교복을 입고 학교에 다녀온 모습도 보였고, 신문지로 예쁜 바구니를 만들고 있거나, 자연환경에서 주어지는 것들과 재활용지로 엽서나 편지지, 파일 등을 만들고 있었다.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어울려 땅을 고르고 농작물을 키우기도 하고, 흙바닥을 밟으며 원을 그리고 함께 노는 모습이 평안해 보이고 예쁘다고 느껴졌다. 이 작은 마을처럼 보이는 공간에서 아이들과 여성들은 편안한 얼굴로 교육을 받으며 생활을 위해 가내 수공업을 함께 하고 이곳에서 만든 생필품을 판매하여 필요한 것들을 사거나 교육을 위해 다시 사용한다.

이곳을 소개하는 분에 의하면 ‘샤론의 꽃’은 과거의 풍속을 벗어나기 위한 일환으로 데브다스들을 구출하고 총체적으로 필요한 훈련들을 위해 존재하고 있으며 그야말로 공익을 위한 장소다. 공동 육아, 미래를 위한 직업 교육, 아이들의 인권 신장을 위한 노력, 의료 서비스 등 정부가 제공하기 어려운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설명을 들으며 주변을 살피다 보니 이 아름다운 공동체 안에서 자연과 더불어 공부하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훈련을 하는 것이 상처받은 아이들의 정서에 매우 좋은 환경임을 알 수 있었고, 흙바닥을 밟으며 성장하는 모습이 어떤 교육보다도 훌륭하단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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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사람 몇몇이 공동체를 돌아다니 신기했는지 교복을 입은 아이들의 얼굴엔 미소와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아이들 중에는 슬쩍슬쩍 쳐다보며 주변을 돌아다니기도 하고 까르르 웃으며 쳐다보다가 눈을 마주치기도 한다.

방문이 짧은 시간만 허락되어 아쉬웠지만 기회가 된다면 이곳 아이들과 며칠 살아가며 어떤 교육을 하는지 알고 싶었고 이 호기심 어린 눈망울을 가진 아이들의 아름다운 사진을 찍어주고 싶었다. 언젠가 또 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곳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들이 자신의 존재대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랬다.


셀프 헬프 그룹 SHG(Self Help Group)


방글라데시에서 가장 먼저 생겨난 SHG는 스스로 도우며 살아가는 단체다. 처음 6개월간은 오직 저축을 하는 기간으로 하루에 10루피씩 10~20명 6개월 뒤 5,000루피 정도가 모이면 대출을 받아 사업을 시작한다. 처음 설립 후에 책, 회의록, 현금 증서 등의 기록과 교육을 받고 6개월 정도가 지난 후 지역의 특성을 살린 경제 사업을 찾는다. 그룹이 실력을 갖추게 되면 청결문제, 교육 문제, 사회 문제 등을 함께 해결해 나간다. 이곳은 90명 정도의 여성과 40명 정도의 남성으로 7개 정도의 그룹이 생겨났으며 지역 사회를 위해 경제사업과 교육을 실천한다. 방문한 그룹에서는 향을 만들어 팔고 장미나 누에 등을 재배해 공동 분배 형식으로 지을 수 있도록 해준다. 야생 꽃은 뱅갈로르나 첸나이로 보내기도 하고 과일, 칠리파우더, 꿀, 향 등의 사업도 한다. 정부의 임대를 받아서 사업을 하기도 하는데 매점, 상가, 등의 사업을 한다. 지금까지는 대출금을 갚아나갔기 때문에 수익이 없었지만 우리가 방문한 다음 달부터 수익이 생긴다고 한다. 타밀나두 주에서 이 옐라기리 힐스의 SHG이 가장 잘 되고 있는 그룹으로 꼽힌다. 이곳은 여성 주도적인 마을이며 시작이 여성들이었기 때문에 절대적인 힘을 보여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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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스와티라는 리더는 교육을 받고 이 그룹을 실현한 사람인데 사람들 중 리더를 세우고 훈련을 받게 한다. 카스트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교육받고 지역을 위해 힘쓰게 된다. 어떤 결정들을 내릴 때 문제가 생길 때도 있지만 끝까지 절충하고 민주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도록 하여 마을 사람들이 주인의식을 갖게 한다.

이곳의 주된 경제 사업은 돌산과 호수다. 처음에는 돈이 많은 사람이 이 호수의 임대권을 받아서 주변 임대업을 했는데 마을 사람들이 이 땅을 조금씩 사들여서 그룹의 소득이 되고 이 소득을 분배하여 생활이 나아지고 있다. 삶의 자세와 청결 등에서 나아진 생활을 하고 있으며 스스로 자긍심을 가지고 사회를 새롭게 바꿔나가는데 동참하고 있다. 이 땅에 진정한 주인이 되어가는 일들을 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며 교육과 지역의 발전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Javadhu hills의 SFRD (Society for Rural Development)


이곳의 설립자 아르주난은 간디 철학을 전공한 사람이다. 이 단체의 기본 원리 사상은 간디 사상이다.

첫 번째로 이들은 생활의 문제(기본적인 문제들), 두 번째는 교육, 세 번째는 건강(육체와 정신), 네 번째로 주체적 사고(주권)를 갖게 한다. 이 네 가지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해 나가도록 한다.

마을을 위해 결정하고 스스로 모니터링을 하면서 프로젝트를 구성한다. 이 단체에서는 리더가 직접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알아서 할 수 있도록 해주는데 자치적으로 커뮤니티를 가지고 있다. 다섯 개의 위원회(교육, 건강, 지역사회 개발, 농업, 마케팅)에서 각 분야의 부분들을 해결하고 있다. 이 마을엔 4만 명 정도가 살고 있으며 이들의 주요 수입원은 꿀과 쌀이다.

이 마을을 위해 독일에서 20년 동안 지원해 주었고 2004년 이후 지원이 끊겼다.

이후 필요한 활동비는 이곳에서 자라 교육을 받고 의사, 변호사, 교사 들이 배출 되었는데 이들에게 후원을 받아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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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체의 활동으로 교육을 할 수 있게 되자 이 마을의 문맹률이 현저히 줄었으며 어린이 사망률과 유산 등을 낮출 수 있었다고 한다.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을 교육하고 교육 수준에 올라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야학으로 가르쳐 수준에 맞게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서면 다시 학교를 들어갈 수 있게 한다. 지난 20년간 지도 교사가 몇 없었는데 이제는 이 단체로부터 교육받았던 아이들이 교사가 되어 교육을 하고 있으며 직업 훈련으로 컴퓨터, 옷 만들기 등도 가르치고 있다.



이렇게 인도 곳곳에는 기본권 중에서도 교육받을 권리, 근로의 권리,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등을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과 마을이 많이 있다. 수도, 산업이 잘 되어있는 큰 도시, 관광 사업이 발전한 도시 등을 제외하고 수많은 시골 마을에는 평등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환경이다. 이를 위해 인도 곳곳에서는 이런 그룹들이 생겨난다고 한다.


이런 단체들을 방문한 후 인도를 여행하며 ‘벅시시’를 외치는 거리의 천사들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이들에게도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기를, 적어도 길에서 굶어 죽는 아이들은 없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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