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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Amazing India 05화

옐라기리 힐에서

신을 모시듯 당신을 대합니다.

by Euodia

인도의 NGO단체, 지역 사회를 위해 일하고 있는 단체들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볼 기회가 있어서 방문하기로해 며칠 다른 지역으로 나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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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갈로르에서 첸나이 쪽으로 가는 길에 옐라기리 힐(Yelagiri hills)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일정이 늦어지면서 잠잘 곳이 필요해 홈스테이를 하게 되었다. 옐라기리 힐 호수 앞 매점에서 일을 하는 나시 쿠마르와 자네기 부부의 집에 머물게 되었는데, 그들의 딸 리베나와 아들 니티쉬 까지 네 식구가 살고 있는 집이었다. 그들의 집에 들어서니 자네기와 그녀의 언니인 라니가 맞이해 주었고 딸 리베나가 수줍게 웃으며 집의 이곳저곳을 소개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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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기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면서 옥상으로 올라가 하늘의 별과 야경을 볼 수 있게 해 주었고 라니는 저녁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타밀어라 알아들을 수 있는 내용이 하나도 없었다.

조금 후 집안으로 내려왔는데 아이들은 타밀 영화를 보고 있었고, 쌀 뻥튀기와 비슷한 ‘코리’를 간식으로 주었다. (왜 집을 허물어야만 커리 냄새가 없어진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맛이 궁금해서 조금 먹어보는데 뻥튀기에서도 카레(마살라) 맛이 나서 웃음이 났다. 리베나는 영화를 보면서 대화를 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언어가 통하지 않아서인지 어색해서였는지 말을 걸지 못하며 쭈뼛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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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 / 베지 뿔라오

저녁은 베지 뿔라오(Vegetable Pulao)였는데 내 접시에만 치킨이 조금 들어있었다.

필라프(Pilaf)또는 풀라오(Pulao)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야채 볶음밥과 비슷하며 쌀에 많은 향신료를 넣고 육수를 넣고 가열한 요리다. 이 풀라오도 지역별로 만드는 방법이 다양하며 향신료를 많이 넣기 때문에 약간의 호불호가 있을 수 있다. 약간 늦어진 저녁식사라 조금만 먹으려 했는데 자네기는 접시 위 밥이 없어지기도 전에 계속 담아주었고 그만 주어도 된다고 했지만 결국 소화가 안 된 상태로 잠자리에 들 수밖에 없었다.


씻으려고 하니 물을 따뜻하게 데워 온도까지 맞춰주며 확인을 하고는 안방과 침대까지 내어주고 네 가족은 마루에서 다 함께 잤다. 거절했지만 끝까지 자신들의 안방을 내어주는 쿠마르와 자네기였다. 침대와 베개는 편안한지 혹시 춥지는 않은지 계속 신경 써주는 가족들의 마음, 선뜻 내어주는 침대와 새 이불에 고마움과 감동이 끊이지 않았다. 우리나라처럼 바닥에 온돌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가족들이 조금 추웠을 수도 있는데

“우리 집에 온 손님에게 신을 모시듯 하고 싶다.”

는 그들의 말에 다양한 감정들이 오고 갔다.



이른 아침 방문 밖은 이미 TV 소리로 시끄러웠다. 덕분에 새벽에 일어나 꼼지락 거렸더니 기척을 느낀 자네기는 모닝커피를 내어주며 하루를 시작하게 해 주었다. 따뜻한 인도식 커피 한잔을 다 마시고 나니 리베나가 수줍게 웃으며 컵을 치워준다.

세수를 하려고 했더니 어느새 데워 놓았는지 따뜻한 물을 맞춰주며 씻으라고 한다. 이렇게 하나하나 세심한 배려에 대접을 받는 느낌이다. 아이들이 카메라를 궁금해하기에 옐라기리힐에서 찍은 사진들도 보여주고 그들의 집 안과 아이들 사진을 찍으며 조금 친해져 갔다. 나갈 시간이 되어가기에 조금 일찍 인사를 하며 나서려 했지만 10분만 기다려주면 아침 식사를 준비해 준다고 했다. (역시 30분이 넘게 기다려야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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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준비하는 자네기 / 우프마

아침 식사는 남인도 사람들이 아침 식사로 많이 먹는 세미야 우프마(Semiya Upma)인데 일반적으로 야채 종류와 콩, 캐슈너트가 들어간 소면 요리다. 빠르게 만드느라 청양 고추에 삶은 소면을 볶아준 맛 같았다. 아침에 먹기에 너무 매웠지만 열심히 먹었고 또 듬뿍듬뿍 주려고 하기에 아침은 조금만 먹고 싶다고 했다.


헤어질 시간이 되어 대화를 많이 하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쉬웠다. 니쉬 쿠마르 외에는 타밀어만 가능했기에 타밀어를 조금 배워둘걸 하는 후회도 좀 들었다. 자네기에게 한국의 고유한 문양이 들어간 거울을 선물로 주면서 니쉬 쿠마르에게 말을 전해달라고 했다.

“어제저녁식사와 아침 식사, 그리고 준비해 주신 모든 것에 감사해요. 덕분에 편안한 하루를 보냈어요. 여러분을 잊을 수 없을 거예요.”

“우리는 우리에게 온 손님을 신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어려운 일이 아니었어요. 기회가 된다면 또 방문해 주세요.”

우리의 모습이 없어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는 자네기와 리베나에게 골목 끝을 나갈 때까지 나도 함께 손을 흔들었다.

그들이 대접해 준 저녁과 아침 식사는 화려한 요리는 아니었지만 가장 따뜻하고 맛있는 음식이었고, 푹신한 매트리스가 아닌 철제 침대 위 얇은 이불 한 장이었지만 인도에 와서 가장 편안하게 잠이 들었다. 진심으로 누군가를 존중하고 섬기는 마음을 처음으로 배웠던 날이라고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면 행복하고 따뜻한 추억이 아닌가 싶다.




옐라기리 힐(Yelagiri hills)은 분지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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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위에서 보면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14군데의 마을을 돌아보며 이 평화로운 마을에 한 번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해졌다. NGO단체도 돌아보고, 홈스테이도 하면서 이 마을에 정을 붙이고 있을 때쯤, 마을을 돌다가 신고 있던 슬리퍼 끈이 끊어져 맨발로 걸어 다닐 수밖에 없었다. 인도 사람들도 신발을 신지 않고 다니는 사람이 더 많았고 흙 길이기 때문에 괜찮을 거 같아서 망가진 슬리퍼를 손에 들고 맨발로 걸었다. 이 상황을 본 현지인들은 외지 사람이기 때문에 다치거나 병에 걸릴 위험이 있으니 시장에서 슬리퍼를 하나 사 신으라고 한다. 나는 맨발도 괜찮을 거 같다고 말했지만 주변 모든 사람들이 만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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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함께 시장을 들러 슬리퍼를 하나 사고 사람들과 짜이도 한 잔 사 먹었다.

짜이를 파는 가게 앞에 꼴람(행운의 부적과 같은)이 그려져 있었는데 짜이 파는 아저씨에게 이 것을 그리는 이유에 대해서 물어봤는데 웃으며 말해준다.

“이 꼴람은 나의 가게를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신의 평화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매일 아침 직접 그리고 있어요. 밟으면 축복이 있을 거예요.”

“이 꼴람이 아름다워서 밟지 못하겠어요.”라고 했더니 직접 밟으며

“이렇게 밟아야 신의 축복이 있지요.”

하고는 밟아보라는 시늉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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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인도 지역에서는 길이나 가게 앞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이 꼴람은 이 꼴람을 밟는 모든 사람들에게 신의 축복을 불러들여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어있다. 축제 날이 아니어도 쌀이나 돌가루, 향료등으로 그리는데 ‘신들이 땅으로 내려와 발을 딛는 받침대’라는 의미다. 그러니 꼴람이 그려져 있으면 신이 내려와 발을 디딜 테니 이왕이면 내 집 앞, 내 가게 앞에 신이 다녀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 꼴람은 다양한 컬러로 그리기도 하고 매우 대칭적이며 창의력이 수반되는 그림이다.


만다라 그리기가 한참 유행이었을 적이 있었는데 이 꼴람은 만다라와 비슷하게 대칭과 기하학적 형태가 들어간다. 아마도 이 꼴람은 만다라의 한 형태가 아닌가 싶다.

꼴람에는 우주적 질서가 들어있는데 매일 신을 구하는 의식과 힌두교의 부와 번영을 기원하고, 하루가 지나면 흩어져 버리기 때문에 이 일시성을 삶의 순환으로 여긴다.


나는 신의 축복을 받기 위해 새로 산 슬리퍼를 신고 이 꼴람을 밟았고, 아저씨에게 말했다.

“오, 행복해졌어요.”

함박 웃음을 짓는 가게 아저씨를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함께 간 사람들은 꼴람을 밟으며 너도 나도 신의 축복을 빌었다. 짜이 한 잔에 환영받는 느낌과 행복감이라니 마음 한편에 벅찬 감동으로 늘 남아있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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