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적인 궁전이 있는 도시, 마이소르
금요일 오전 일정을 마치고 오후와 주말을 이용해서 몇 명의 사람들과 근처로 여행을 떠나보기로 했다.
뱅갈로르에서 150km 정도 떨어진 마이소르, 서울에서 세종시까지 가는 정도의 거리다. 뱅갈로르 센트럴 버스 스탠드에서 마이소르로 가는 제일 좋은 Volvo버스를 탔다. 주로 여행객들이 타는 버스라 우리나라 고속버스쯤 되었다. 그동안 타고 다녔던 시내버스와는 다르게 깨끗하고 좌석도 넓었다. 저녁 8시 반쯤 도착이라 조용히 가게 될 줄 알았는데 버스에서 남부(타밀) 인도 영화를 틀어 놓아서 정신없는 소리에 멘탈이 약간 나가 있었다. (인도 영화는 언제나 거의 3시간)
3시간쯤 후 마이소르 버스 스탠드에 내렸다. 밤 9시쯤이 되어 캄캄해진 밤 중이라 걱정이 되었지만 웬걸 내가 지내던 꼬타누르와는 다르게 시끌벅적 정신이 없는 복잡한 도시였다.
첫 여행이라 추천받은 숙소 중에 고르기로 했는데 처음 본 호텔은 생각이하 화장실이 너무 불편하고 더러웠다. 조금만 더 발품을 팔기로 하고 그럴듯한 이름의 리츠 호텔로 갔다. 호텔이라 하기엔 민박집 정도였지만 깨끗하고 침대도 넓은 편이라 이틀간 묵기로 했다. (큰 도시를 제외하고, 여행책 혹은 추천받은 호텔은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는 믿을 수 없기에 꼭 확인해야 한다.) 중간에 지나가다 들린 빵집에서 빵과 바로 따를 먹고 꼭 가야 하는 곳들에 대해 잠시 회의?를 한 뒤늦게 잠이 들었다.
이불이 딱히 없어서 침대 위에 침낭을 놓고 들어가 잤더니 땀에 절어 일찍 눈이 떠졌다. 아직 모두 잠을 자고 있어서 침대에서 조용히 내려와 샤워를 한 뒤 로비에 나와 잠시 책을 보며 여유를 부렸다.
둘러보기로 한 장소들의 동선이 길어서 9시 10분으로 릭샤를 예약한 후 아침을 먹으러 갔다. 식사 후 릭샤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예약한 시간이 한 참 지나도 오지 않아 다른 릭샤를 타고 연꽃이 거의 모든 곳에 피어오른다는 강을 지나, 가장 호화로운 랄리타 마할 팰리스 호텔(Lalitha Mahal Palace Hotel)에 구경하러 갔다.
랄리타 마할은 과거에 왕실 거주지였던 건물을 고급 호텔로 사용하고 있기에 외관이나 정원이 매우 아름답다. 마이소르 궁전 다음으로 큰 궁전으로 궁전의 원래 왕실 분위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서 인기가 많으며 꼭 둘러봐야 할 관광지에도 속한다. 한국 돈으로 10만 원대로 예약할 수 있기 때문에 마이소르를 둘러보는 사람들에게 이 아름다운 정원 속에 있는 호텔에 묵어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거 같다. 영국 저택과 이탈리아 궁전 양식을 반영하여 지어져 보기에도 인도의 전통 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밖에서만 봐서 아쉬웠지만
차문디 힐 Chamundi Hills
차문디 여신의 이름을 딴 차문데스와리 사원은 언덕 꼭대기에 있다. 릭샤를 타고 언덕을 올라가니 뷰가 매우 아름다웠다. 언덕에 내려서 200개 정도의 계단을 올라가면 차문데스와리(Chamundeshwari) 사원이 보이는데 그 앞에는 과일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야자수, 오이, 파인애플, 파파야, 구아바 등을 파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중 뜨거운 더위에 벌써 지쳐 그 자리에서 야자수를 잘라 음료를 마실 수 있어서 하나씩 사 먹었다. 겨우 오전 10시 반, 200개 계단을 올라왔을 뿐인데 땀이 줄줄 흐르고 뜨거웠다. 약간의 더위를 식힌 후 사원에 들어가야 하는데 신발을 벗어야만 한다. 볕을 그대로 받는 바닥은 뜨겁지만 그늘은 시원했기에 최대한 그늘을 밟으며 다녔다.
사원에 들어가면 봐야 하는 두 조각상이 있는데 하나는 오른손에 검을 들고 왼손에는 코브라를 든 마히샤수라(Mahishasura)상과 차문데슈와리 조각상이다.
마히샤수라는 힌두 문학에서 황소의 형상으로 모습을 바꾸고 사악한 길을 추구하는 교활한 악마로 묘사되는데, 차문데슈와리가 이 마히샤수라를 이 언덕 꼭대기에서 죽였다고 믿고 이곳에 사원을 세웠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마이소르는 원래 카나다어인 ‘마히슈루’에서 유래했는데 ‘마히샤수라의 마을’이라는 뜻이며 영국은 이 이름을 지금의 마이소르로 변경했다. 2014년에는 카르나타카 주 정부에서 이 마이소르(Mysore)를 마이수르(Mysuru)라고 이름을 변경했다.
차문디 힐은 도시의 이름과 이곳을 지키는 여신의 히스토리가 담겨 있기 때문에 꼭 한번 방문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되는 거 같다.
1000개의 계단을 내려오는 길, 중간쯤에 커다란 난디(황소 상)를 볼 수 있는데 높이가 약 5m 정도 길이는 7.6m 정도라고 한다. 검은색 화강암을 깎아 조각한 것으로 이 난디 조각도 사람들에게 인기가 대단하다. 이 앞에서 사진 찍는 사람으로 인산인해를 이루며 1000개의 계단을 내려가다가 다리가 후들거리기 때문에 여기서 한번쯤 쉬어주는 것도 체력을 비축하기에 좋은 장소가 되어준다.
차문디 힐 위에서는 ‘1000개를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내려가는 것쯤이야!’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늘 없는 무더위 아래 1000개의 계단(정확히 1008개)을 내려오며 내 마음과는 다르게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마지막 계단에 걸터앉아 내려오는 것의 만만치 않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모두 체력이 바닥났고 점심 식사가 시급했다.
점심을 먹은 후에는 정부 비단 공장(Govermment Silk Factory)과 오일 공장을 가기로 했다. 실크로 유명한 마이소르 정부 비단 공장은 정문 안쪽에서 허가증을 받아야 들어갈 수 있다. 공장에 들어가는데 어떤 유럽 노부부가 손을 꼭 잡고 들어가서 나올 때까지 놓지 않는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뒤에서 몰래 사진을 찍는데 인도 여인이 웃으며 카메라를 주시했다. 약간 머쓱한 순간이었지만 문을 지키고 있던 경비가 자신도 찍어달라 했다.
정부 공장에서 판매도 하기 때문에 실크를 좋아하면 구입도 가능했다.
Sandalwood oil(백단향 오일)로도 유명한데 정부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가야 진품을 살 수 있다고 한다. 샌달우드 향을 좋아해서 오일 구경을 하려고 했는데 릭샤 왈라는 토요일이라 문을 닫았다며 다른 오일샵을 추천해 주며 데려다주는데, 이런저런 향이 섞인 향 때문에 머리가 심하게 아파 그냥 나왔다. 뱅갈로르에 가서 알았지만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는 문을 열었다고 했다. 일요일만 문을 닫는다고. 우리가 릭샤왈라에게 속은 건가? 싶었지만 알 길은 없었다.
스리랑가파트나(Srirangapatna)
시내에서 16km 떨어진 스리랑가파트나로 출발했다. 릭샤로 16km라는 거리는 온갖 흙과 먼지가 섞인 바람을 장시간 맞아야 하는 일이기도 한다. 인도에서의 한 낮은 너무 뜨겁기 때문에 정수리가 볕에 너무 타 버려서 탈모가 오는 건 아닐지 종종 걱정이 될 정도였는데, 그 더위 속에서 땀을 흘리다가 릭샤를 타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달려서인지 노곤해졌다. 오전에 뜨거운 태양 아래 언덕에서부터 계단을 걸어 내려와서였는지, 아니면 점심 식후라서 식곤증이 온 건지, 바람에 머리카락이 엉키는지도 모르게 졸다가 깨다가를 반복했다.
스리랑가파트나는 비자야나가르(Vijayanagar) 왕국 시대의 중심지이며 순례지였던 곳인데 이 시대가 쇠퇴할 즘 마이소르 통치자들이 독립을 주장하여 라자 워데야르(Raja Wodeyar)는 그 당시 부왕을 정복하고 마이소르 왕국에 대한 주권을 행사하게 되었다. 이후 하이데르 알리(Hyder Ali)와 그의 아들 티푸 술탄(Tipu Sultan)에 의해 마이소르의 수도가 되었다. 영국에 점령당했을 때 인도 남부 지방 사람들은 영국인에 불만이 많았기 때문에 티푸 술탄을 지지하여 영토를 확장했는데 이후 티푸는 영국에 패배하면서 오히려 더 많은 영토를 내어 주게 되었다. 박물관 안에는 티부 술탄의 전쟁을 묘사한 그림들, 각종 다양한 소품들이 전시되어있으며 꽤 볼만하다. 여기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동하면 굼바즈 (Gumbaz)라는 돔 모양의 능이 있는데 티푸의 능이다.
스리 랑가나타스와미(Sri Ranganathaswamy) 카베리 강을 따라 순례하는 곳 중에 하나이며 랑가타나에게 바쳐진 사원이다.
데바라자(Devaraja) 과일 & 야채 시장
다시 마이소르로 돌아와서 데바라자 마켓에 내렸다. 하루 종일 함께 다닌 릭샤왈라와 안녕을 고하고 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과일, 야채가 다양하고 엄청난 양을 쌓아 놓고 파는 곳이다. 뿐만 아니라 오색 찬란한 향과 액세서리도 다양하다. 매일 아침 과일과 야채를 들여오기에 매일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이라 저녁인데도 사람이 매우 많았다. 이 물량이 과연 어디로 갈까 싶을 정도로 싱싱한 과일들이 한가득, 집 앞이었다면 매일 들르고 싶은 곳이다. 다양한 컬러로 인해 사진 찍기에도 좋은 곳이었다.
이렇게 하루 종일 관광을 하는 일은 오랜만이라 모두 약간 지쳐 저녁 식사를 하고 호텔로 들어갔다. 종일 흘린 땀을 씻어내고 다음 날을 위해 푹 잠들었다.
마하라자 궁전(Maharajah’s Palace)
마이소르에 오는 이유는 다양한 유물과 유적들, 실크와 향료 쇼핑, 먹거리들 등이 있겠지만,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곳은 단연코 마하라자 궁전이다.
기존의 궁전은 아쉽게도 1897년 불에 타 소실되었고, 영국인 건축가에 의해 1912년 재 건축 되었다. 궁전의 외관도 아름답지만 내부는 호화롭고 찬란한 색채가 가득해 감탄과 경외가 저절로 나오는 곳이다. 아쉽게도 내부는 사진을 찍을 수는 없는 곳이다. 성 내부에는 다양한 힌두 사원도 존재하며 주요 방(Main Room) 들은 일요일이라 그런지 인파가 많이 몰려 구경이 어려울 정도였다.
일요일 저녁 7시부터 8시까지 성 외부에 달린 97,000개의 전구가 켜지는데 축제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수만은 인파 속에서 사진을 찍기 어려울 정도인데 많은 커플들, 가족들이 나와 이 1시간을 만끽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마하라자의 궁에 들어오기 전 자간모한 궁전과 아트 갤러리를 다녀오면서 어지럽고 속이 불편했다. 얼굴이 창백해지니 함께 동행하는 사람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사실 어지러워서 방문했었던 곳들이 잘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쓰러질 거 같은 느낌에도 참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마하라자 궁 안에 사람들이 쉬는 그늘에 누웠다.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해서 궁전을 둘러보게 하고 혼자 레스토랑 같은 곳으로 가서 음료 한잔 시켜놓고 의자에 앉아 (거의 누워) 쉴 수밖에 없었다.
해가 질 때까지 쉬다가 불빛 축제를 보고 떠나야 해서 다시 마하라자 궁전으로 갔다.
97,000개의 조명이 켜지는 순간 사람들의 입에서는 감탄이 터져 나왔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크고 아름다웠고, 사진으로 봤던 것보다 더 황홀한 기분이었다. 한 시간을 함께 구경하고 밤 버스를 타고 다시 뱅갈로르로 향했다.
마이소르는 여행이라기보다는 관광이었지만 예상보다 아름답고 찬란한 도시였기에 2박 3일간의 일정이 짧게만 느껴졌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 마지막 날이 아쉬워 다음을 기약했고, 내가 아팠던 것은 물갈이였다는 걸 뱅갈로르에 도착해서 알게 되었다. 꼬타누르에 도착한 그날부터 3주간 배앓이를 심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