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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티콘의 세계

by 율리

카카오톡의 대화가 익숙해지고, 편해진 요즘. 카톡 속의 또 다른 세상, '이모티콘'이라는 존재는 나를 드러내는 하나의 도구가 되었다. 왠만한 대화의 리액션에 사용할 수 있게 종류도 다양하고, 분위기의 반전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고, 어색함을 털어내기에 괜찮은 것들이 가득하다. 이모티콘이 없는 다른 메신저의 대화가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한 때, '늬에시' '궁늬여' 라는 이모티콘에 푹 빠져 열심히 사용했던 적이 있다. (지금도 열심히 사용하고 있다.) 익살스럽고, 리얼한 표정묘사. 상황에 맞게 업데이트 되는 버전들을 열심히 사 모아서 사용했다. 쏟아지는 카톡 대화에 나 대신 열심히 대답해주던 궁늬여. 언제부턴가 친구들이 나와 귕늬여의 모습이 오묘하게 오버랩 된다는 말에 흠칫 놀라기도 했다.

'내가 이렇다고..? 풉...'


다양한 표정을 가진 나의 최애 캐릭터, 궁늬여



얼마 전 회사 친구와 회사 메신저로 회사를 향한 불만, 하소연 섞인 이야기를 주고 있었다. 정점을 향해 가던 이 대화에 우리는 동시에 설명하기 힘든 '감칠맛'이 떨어짐을 느꼈다.

"우리 카톡에서 이야기할까? ㅋㅋ"

"그치...!!! 여기서는 내 마음이 표현이 안돼..."

그렇게 우리는 기본적인 이모티콘만이 있는, 이 삭막한 메신저를 떠나 노란 대화창으로 자리를 옮겼다.


뭔가 채워지지 않던 대화에 온갖 이모티콘이 더해져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다. 답답했던 심정을 대변해주고, 엊그제 머쓱했던 내 표정을 닮은 캐릭터, 텅텅 빈 내 통장을 들고 있는 모습, 술 한잔 야무지게 먹고 싶은 우리의 심정을 담은 이모티콘을 날리며 그렇게 대화를 이어갔다.

그러다 해야할 일은 많은데, 하기 싫은 우리의 빈 엑셀, 파워포인트, TO DO LIST 화면에 잘 들어맞는 이모티콘을 발견하고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껄껄 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회사원이라면 공감되는 이모티콘


특히나, 오랜 시간 마케팅실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우리들의 고충이 비슷했다. 계속되는 회의 속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내보세요' '빵빵 터질 수 있는 참신한거 없을까?'라는 상사의 어려운 질문.

'이 것좀 부탁해요. ASAP으로...' 라는 무서운 메일들을 몇 년 넘게 경험 해오고 있고, 어제도 그제도 똑같은 상황을 지나며, 회사 친구와도 어쩜 이리도 변한게 없냐며 투덜 대며 열심히 써오던 이모티콘을 우르르 날려본다.


회사원이라면, 특히나 마케터라면 더 많이 공감되는 이모티콘


얼마 전에 엄마에게 이모티콘 하나를 선물했다.

"뭐 쓸데 없이 이런데 돈쓰노..."

라고 하셨지만, 엄마의 카톡 대화창을 힐끗 보니 여기저기 이모티콘을 보내고 있었다.

"쓸데 없다더니 잘 쓰네?"

"어 편하고 좋드라. 몇 개 더 사줘봐라"


만날 수 없기에 삭막해져 간다고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만나지 않아도 우리는 공감하고 함께 웃을 수 있다. 한편으로 씁쓸하긴 하지만 이렇게 괜찮은 대안들을 찾아가며 의미를 찾고 있는 우리의 삶을 기특하게 여겨본다. 그리고 그 중 하나의 도구인 '이모티콘'을 덕분에 오늘도 피식, 웃음 지어본다.



엄마에게 선물한 이모티콘



<매일매일 도구도구>
세상의 모든 만물에는 각자의 서사가 있다고 믿습니다. 내가 선택해, 나를 이루고 있는 크고 작은 도구들이 가진 본연의 역할, 맥락을 생각해봅니다. 그렇게 그 안에서 이뤄지는 저만의 소소한 이야기를 기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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