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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 Dec 25. 2021

7살의 크리스마스

로즈에게 크리스마스는 '설렘'이다. 5살 때부터 매년 11월 30일 밤, 크리스마스 달력을 꺼내 24개의 사탕을 넣어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12월 아침, 24개의 사탕을 꺼내먹으며, 로즈는 크리스마스의 설렘을 스물네 번을 세어나갔다.


2021년 7살. 이제는 엄마가 챙겨주지 않아도 11월의 마지막 날이 되면 스스로 크리스마스 달력을 꺼내고 사탕을 넣는다.

그렇게 12월의 매일매일, 로즈는 아침마다 눈을 뜨자마자 그곳으로 달려간다.


설렘은 전염성이 강하다. 매일 아침, 퉁퉁 부은 눈에, 부스스한 머리. 아래위로 똑같은 내복을 입고 후다닥 달려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로즈의 그 마음이 나에게 까지 전해오는 것 같다. 빨간 달력 앞에 선 모습이 사랑스럽다.


이제 제법 뺄셈이 가능해지기 시작하면서, 24에서 오늘 날짜를 빼보려고 가끔 시도도 하지만, 여전히 직접 숫자를 세어보는 게 편한가 보다.


"일, 이,삼 사, 오.... 이제 열 밤만 자면 산타할아버지 온다!"  

"아싸! 다섯 밤만 자면 크리스마스 파티다!"  



"우리 딸 산타할아버지께 받고 싶은 선물이 뭐야?"

"음... 몰랑이 연필이랑, 지우개랑, 필통!"

"오..! 착한 일은 많이 했어?"


 가끔 착한 일이라는 조건부로 선물을 받는다는 것이 필요 이상으로 합리적으로 느껴지긴 한다. 하지만 한편으론, 무엇이 계기든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한 의식이 기특하다.


"어.. 어.. 내가 친구 멘토스 하나 더 줬고,

신발 먼저 신으려고 할 때 양보도 해주고,

아빠가 화장실에 휴지 없다고 할 때

내가 갖다 주고, 엄마가 빨래할 때

양말 떨어진 거 가져다주고…

"우와 진짜 멋지다.

그런 마음만으로도 충분하네!

근데 사실 산타할아버지는 착하던, 나쁘던,

모든 어린이에게는 선물을 주실 거야.

어린이들은 다 멋지거든"

"그럼 나 몰랑이 달라고 편지 써도 돼?"


할아버지가 한국말이 서투를 수 있기 때문에 선택한 서투른 영어편지는 참 심플하다. 다른 말은 없냐고 물으니, 나머지는 마음속으로 기도하면 산타가 들을 수 있다고 말하는 딸.

산타 할아버지를 위한 쿠키와 물 한잔을 트리 밑에 두고 로즈는 잠이 들었다. (쿠키엔 우유가 어울리는데 우유가 집에 없어서 아쉽다는 말을 뒤로한 채…)


아이가 잠이 든 모습을 확인하면 우리(엄마, 아빠)는 슬금슬금 거실로 나온다. 그렇게 쿠키도 대신 먹고, 선물을 트리 밑에 놓아두며, 산타할아버지의 대행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그렇게 크리스마스이브의 밤은 엄마, 아빠들이 만드는 귀엽고 하얀 거짓말이 가득 내린다.


미션을 성공하고 혹시나 깨진 않았을까 잠든 아이를 살펴보다 문득 생각한다.

‘나는 로즈에게 언제  '산타'의 진짜 존재를 알려야 할까..’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어느새 이렇게 자랐는지 새삼스러운 영원한 아기의 모습을 바라보니, 그 시간이 조금은 천천히와도 좋을 것 같다는 바람을 품어본다. 그리고 그 유치할지 모르는 하얀 크리스마스의 밤이 찬란한 추억으로 오래 남길 바라본다


2021년 12월 24일



+ 오늘 유치원에서 산타가 왔는데 로즈가 보기에 이상한 점이 많다고 했다. 산타할아버지가 생각보다 배가 나오지 않았고 마스크를 쓰고 있는 산타가 이상해 보인다고.

결정적으로 화장실 가는 길에 산타할아버지가 옷을 갈아입는 모습을 봤는데, 매주마다 오는 체육선생님인 것 같아 너무 이상하다고 말한다.

잘못 봤겠지. 아님 산타할아버지가 못 오셔서 부탁하셨나?? 진땀 빼며 대답을 하고 나니, 생각보다 산타의 정체가 빨리 탄로 날 수 있겠다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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