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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 Jan 06. 2022

아이의 앞머리를 자르며

찰랑찰랑. 멀리서 뛰어오는 아이의 앞머리가 꽤나 길다. 마스크와 앞머리 사이로 아슬아슬 눈 만 보인다. 작년 여름, 엄마처럼 머리를 잘라보고 싶다는 말에 생긴 앞머리는 눈썹에 닿을락 말락 조금씩 자르며 두 계절을 보내왔다.


 오늘 아침, 유치원 갈 준비를 하며 거울 속 로즈를 보니 앞머리가 눈썹 밑으로 어느새 내려왔다.

'흠.. 이제는 자르지 말고 길러 볼까…’ 생각하며 앞머리를 옆으로 모아 핀으로 고정해줬다.


"엄마, 나 핀 하기 싫어"

"그래? 근데 앞머리가 눈썹까지 내려와서 불편하잖아. 그럼 한번 더 자를까?"

"자르기 싫어"

"그럼 사과처럼 묶어줄까?"

"그것도 싫어"

"에이 불편해서 안돼. 앞을 가리잖아"

"아직 눈을 가리지 않아. 내 눈인데 내가 더 잘 알지”

"아니야 딱 봐. 지금 눈에 닿을락 말락 하잖아. 불편해서 안돼.”

“아니야. 안 불편해!”

“……”


요즘 우리의 대화는 이런 식이 많다. 애는 괜찮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괜찮지 않아 보여서 ‘이건 어때? 저건 어때?’ 끈질기게 물어보는 엄마. 예전엔 나의 뜻대로 되는 게 많았다면, 이제는 조목조목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로즈 앞에서 나는 한 발 물러선다.

물러 서긴 했는데, 볼 때마다 거슬리고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얼굴을 마주 할 때마다

'불편해서 어쩌나.. 보는 내가 다 답답하다. 앞머리도 저렇게 내버려두는 무관심한 엄마처럼 보이면 어쩌지...'

이러쿵저러쿵 내 마음은 요동친다. 그러다 은근슬쩍 유쾌한 척, 딸에게 물었다.


"딸… 앞머리 너무 길어서 불편하지 않아?"

"응 안 불편해. 불편하면 말할게. 근데 엄마,

나는 괜찮다는데 왜 자꾸 물어봐?"

"....."


로즈는 진짜 궁금해했다. 엄마가 왜 자꾸 그러지? 정직한 호기심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줄 알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할 줄 아는 아이에게 나는 자꾸 무엇을 강요했나. 순간 나 역시 나 스스로에게 정직하게 묻고 싶었다.


 진짜 아이가 불편할까 걱정된 건지 물었다. 아니다. 그건 그저 내가 겪는 답답함이고 불편이었다. 내가 보기에, 남들이 보기에 불편할지 모른다는 것에 대한 나의 생각이었다. 모성이라는 아름다운 명분으로 하는 쓸데없고 이기적인 걱정. 아주 예쁘지만 진짜 쓸모없는 ‘예레기같은, 진짜 필요한 소비는 이게 아닌데뒤늦게 후회되는 그런 것이었다.


유치원에서 돌아온 로즈가 간식을 먹으며 말한다.

"엄마, 오늘 받아쓰기하는데, 앞머리 때문에 좀 불편하더라고! 옆으로 넘길까. 묶을까 생각해봤는데, 나는 그냥 자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저번처럼 미용실 안 가고 엄마가 잘라줄 수 있지?”

아이의 말에 나는 웃어만 보였다. 하마터면 ‘거봐 엄마가 자르랬잖아…’ 이런 말이 나올 뻔했지만 빠르게 되찾은 이성이 내 말을 다행히 막아주었다.


싹둑싹둑, 최대한 삐뚤거리지 않게 아이의 앞머리를 자른다. 가위질 하나에 기분 좋은 우리. 만약 억지로 머리를 내 생각을 강요해 자르거나 앞머리를 묶어주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나의 답답함은 사라졌을지언정, 아이의 답답함은 커졌을 것이다.


피식 앞머리를 자르며 이런저런 딴생각을 하다 보니 조금 앞머리가 삐뚤게 잘라진 것 같다.


오늘따라 유난히 더 귀여운 2022년 1월의 로즈의 모습을 기억하며. 한 뼘 더 자란 엄마를 기억하며.

오늘의 뒤늦은 육아일기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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