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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 Feb 13. 2022

어느 봄, 노래방에서의 추억 (2)

익숙한 피아노 소리에 이어지는 드럼 소리. 가녀린 목소리가 간절함으로 애절해지는 이 오래를 요즘 매일 들어왔다. 그러다가 어느 날 연습장에 시처럼 가사를 적어내려 갔다.

그래서 더 내게 소중했던 노래가 있었다.

A라고 불리는 그 애가 성큼성큼 걸어 나와 노래를 시작했다. 멜로디가 노래방에 울려 퍼질 때.

심장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뛰기 시작했다. 이윽고 노래가 시작되었다. 매일 밤 이어폰을 들으며 연습장에 끄적였던 그 가사가 하나하나 내 귀에, 머리에 박혔다.


‘창밖으로 하나둘씩 불빛이 꺼질 때쯤이면 하늘에 편지를 써.

날 떠나 다른 사람에게 갔던 너를 잊을 수 없으니 내 눈물 모아서 하늘에… ‘


웬만큼 친한 친구들이거나, 꼭 봐야 할 상황이 아니면 안경을 끼지 않는다. 갑자기 작아져버리는 내 눈과 우스꽝스러운 얼굴을 들킬까 괜한 의식을 한다.


지금은 안경을 쓸 상황이 아니다. 더더욱 쓰지 않아야 할 것 같았지만, 서둘러 안경을 찾았다. 이 노래를 부르는 남자. 이 노래를 선택한 것이 단순한 우연일지 모른다. 그저 이 상황. 나의 모든 오감에 담고 싶었다. 지하 노래방의 쾌쾌한 곰팡이 냄새. 노래방 입구에서 한 움큼 쥐어 나눠 먹은 박하사탕의 맛. 잘 코팅된 노래방 책의 매끈한 질감. 그리고 A의 목소리. 마지막 무엇보다 선명하게 담고 싶은 그의 모습.


가방에서 꺼낸 안경이 귀와 코에 걸리는 순간. 오감이 완성됐다. 그렇게 제6의, 제7의..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온몸의 감각이 살아났다.


‘오.. 그대여 난 기다릴 거예요.

내 눈물에 편지 하늘에 닿으면…’


노래가 절정을 향해 달려갈 때. 알았다. 이 노래를, 이 순간을, 마이크를 잡고 있는 저 애를… 계속 좋아하게 될 거라는 걸 말이다. 수많은 세포들이 깨운 감각들이 알려주었다.


쿡!

“야 안경 벗어라! 딱 티 난다! 정신 차리라”

제일 친한 친구인 B가 옆구리를 찔렀다. 큭큭 웃으며 손을 꽉 잡아주었다.

‘아 맞다!!!!!!’

갑작스레 머리에 박힌 수십 개의 느낌표 덕분에 재빨리 안경을 벗었다. 다행히 눈치챈 이들은 없으리라. 언니들도 친구들도 모두 A를 보고 박수를 쳤고, A학교 방송부 2학년 선배들은

“이번 신입생들이 다 이 정도야..! 야 다음 노래도 준비해라”

으스대며 계획이라도 한 듯 다음 1학년이 나와 예약해둔 노래를 불렀다.


그다음 아이인 C도 노래를 잘 불렀다. 자랑할만한 실력이었다. ‘쟤가 <내 눈물 모아>를 불렀더라면…

저 애를 좋아했으려나… 이건 운명이야..

열창하는 C의 노래를 BGM 삼아, 우연에서 필연으로, 필연에서 운명으로. 불과 5분 전의 그 상황을 내 마음속 뮤직비디오로 만들었다.


1시간이 흘렀다. 긴 시간 동안 우리 학교 아이들은 거의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A와 C를 비롯한 남자고등학교 방송부원들은 1시간을 꽉 채워 리드했고, 우리는 내숭 가득 박수만 도도하게 치고 있었다. (탬버린을 잡거나, 춤을 추는 행동은 자제하라는 언니들의 사전 지시 덕분이다.)


추가시간이 들어와도 가야 한다는 언니들의 일방적 통보에 우리는 칼 같이 등을 돌렸다. 곧장 집으로 들어가라는 언니들에게 90도로 인사를 한 뒤, 우리 6명은 집으로 가지 않고, 파파이스 3층 단체석으로 향했다.


종이 위에 케첩을 뿌리고 후추 가득한 프렌치프라이와 콜라를 먹기 시작했다. 새로 생긴 맥도널드 가봤냐며, 아무리 그래도 프렌치프라이는 파파이스가 최고라고 말하고,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오늘 어땠냐며, 시작된 수다는 노래방에서의 남자애들 이야기로 이어졌다. 예상했던 대로 모두가 A의 노래와 함께 잘생겼다. 멋있다는 칭찬이 가득했다. 프렌치프라이를 케첩에 찍다가, 갑자기 내가 무슨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다.

이 소중한 방송부 동기, 친구들의 입에서 A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  ‘잘못된 만남,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 하늘만 허락한 사랑’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나 걔 찍었다. 아무도 건드리지 마라이”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꿀꺽… 입 안에 케첩 향이 진하게 번진다.


“뭐꼬… 벌써! 알았다!”

온 우주의 힘을 끌어모은 듯한 이 용기를 비웃듯, 모두 킥킥 거리며 웃었고, 갑작스러운 선포에 암묵적 동의가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그때 우리 방송부 동기 부장인 B의 전화소리가 울렸다. 2학년 선배 부장 언니의 전화였다. B의 검은색 모토로라 스타택이 열리고, B는

“네네. 네네” 연신 대답을 이어갔다.


전화가 끊기고, B가 말했다.


“우리 다음 주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쟤네 만나서 방송제 영화 준비 하래!”

“쟤네?? 누구??”

“쟤네..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던 1학년들!”


쿠궁..

이미 심장은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거봐.. 이건 운명 이랬잖아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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