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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 Mar 06. 2022

사랑은 음악을 타고…

어느 봄, 노래방에서의 추억(3)

‘마법의 성’

소중한 일들이 펼쳐질 것 같은 그곳에서 토요일 오전 수업이 끝나고 만나기로 했다. 우리 방송부원 6명. A의 학교 방송부원은 총 5명. ‘마법의 성’에서 가장 큰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콜라, 오렌지주스, 사이다. 형형색색의 음료가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다. 애꿎은 빨대만 만지작거렸다.


A는 생각보다 과묵했다. 그때와 똑같은 모습이었지만, 이번에는 얇은 검은색 안경을 끼고 있었다. 앞으로 잘해보자며, A네 방송부 부장이 떠들기 시작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A가 까만 음료를 마셨다. 순간 저게 콜라인지, 아이스커피인지 헷갈렸다. 그냥 문득 아이스커피였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그 아이와 쓰디쓴 커피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A가 나를 봤다. 투명 빨대로 까만 음료를 한참 들이키며 나를 바라본다. 급하게 빨대를 입에서 떼며 손가락을 가리킨다.

“어..? 어제??”

“응?? 어제 뭐??”


-

일주일 전 토요일. 그 많은 학교 중에 우리가 함께 노래방에 갈 수 있던 우연이 정확히 일주일 후에 만날 수 있는 필연이 되었다. 하늘을 날고 있던 오만가지 세포들이 땅으로 내려와 우왕좌왕 날뛰기 시작했다. 정확히 일주일 후에 다시 만난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모두 모아 운명을 만들고 싶었다.


한 다리 건너면 다 알 수 있는 작은 지방 도시답게, 정보는 순식간에 수집됐다. 5명밖에 되지 않는 1학년 방송부원들 중에 키가 크고 노래를 잘하는 성은 모르지만 A라고 불리는 아이. 수요일, 금요일 7시부터 2시간씩 새로 생긴 맥도널드에서 알바를 하는 아이.

수요일. 금요일. 다가오는 토요일 사이에서 2번의 기회가 생겼다. 운명으로 바뀔 2번의 기회.

평일 저녁 북적이는 마트 한편에 자리 잡은 맥도널드가 보였다. 2개의 카운터에 길게 늘어선 줄을 따라 카운터에 서 있는 두 사람을 살폈다. ‘A다’


남색 교복을 벗고 발랄한 빨간색 앞치마를 한 모습이 또 다른 그 아이의 모습으로 머리에 박힌다. 제일 끝 줄에 서서 차례를 기다린다. 이상하게 초조하지 않다. 오늘은 렌즈도 끼고, 내가 꾸밀 수 있는 최대치로 무장했다.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운다.

“불고기버거 세트요. 불고기버거 세트요…”

앞사람 주문이 끝나고 잠시 등을 돌려 감자튀김을 능숙하게 담아낸다.

“뭘로 드릴까요?”

눈이 마주쳤다. 꿀꺽… 마음속 주문이 약간의 버퍼링이 걸렸다.

A가 눈으로 한번 더 말한다.

“아.. 불고기버거… 세트요..”

17살 4월. 어느 수요일, 금요일 저녁 나는 인생 처음으로 맥도널드 불고기버거를 먹었다. 미처 바꾸지 못한 주문 덕에 이틀 만에 또 불고기버거를 먹었다.


-

“어..? 어제??”

“응?? 어제 뭐??”

“어제, 맥도널드 오지 않았어? 나 거기서 아르바이트하는데 본 거 같은데?”

“아..? 아..!! 기억난다!”

관객이 나 하나였기에 망정이다. 사실은 수요일도 갔었단다… 마음속으로 독백하며 가증스럽게 연기를 이어갔다.

“기억난다…” 혼잣말인 듯 혼잣말 같지 않은 말을 하며 안경을 한번 고쳐 쓴다.


-

그 해 봄 그리고 여름. 우리는 2주에 한 번씩 만났다. 영화 대신 라디오 드라마의 시나리오를 짰고, 8월에 있을 방송제에서 생방송으로 연기하기로 했다. 목소리 연기와 음악 연출. 나와 A는 나란히 음악 연출을 맡았다.

나도, A도 음악을 좋아했다. 고등학생들이 잘 모를 수 있는 팝 음악을 많이 알았고, 특히나 우리는 영화음악을 많이 알았다.

씬마다 어울리는 음악을 각자 후보에 담아, 2주에 한번 음악을 들으며 최종 곡을 골랐다.


A에게 취했는지, 음악에 취했는지 알 수 없었다. 매일 이어폰을 한쪽씩 나눠 끼며, 눈으로 이야기를 나누며, 이게 내가 그린 운명인지, 사랑인지, 이 알 수 없는 감정들이 BGM과 함께 차곡차곡 쌓여갔다.

17살. 알 수 없는 이 감정들이 그 시절 둘이서 함께 듣던 음악 안에 A와 함께 담기고 있었다.


-

18살 4월. A와의 운명을 혼자 기약한 지 1년이 흘렀다. 첫 만남에서부터 긴 시간 동안 우리는 음악 속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꽤 오랜 시간, 음악소리가 너무 커, 서로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다.


띠릭.

밤 10시가 넘은 어느 날 밤.

A에게 문자가 왔다.


‘너 리치 밸런스 알아?’

‘당연하지. 라 밤바!’

‘오 역시..! 너는 알 줄 알았어! Donna라는 노래도 알아?’

‘응 알지! 나는 라밤바보다 Donna가 더 좋아!’

‘잠깐 통화 가능?’


정신없이 좋아하는 팝송 가사를 적어 둔 노트를 꺼내, Donna의 가사를 훑어본다. 영어 한 줄 한국어 한 줄…


Oh, Donna, oh, Donna

I had a girl

Donna was her name


-4편에 계속-


https://youtu.be/IC9zULGSM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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