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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 Mar 17. 2022

어쩌다 오늘.

어쩌다 TV를 틀었다. 뒤척거리는 어느 밤.

어쩌다 사장이라는 프로그램을 한참을 봤다.

어쩌다 저 유명한 배우들이 한적한 시골마을의 마트를 운영하는 프로그램이다.

어쩌다가 요즘 나는 매일 밤 이걸 보고 또 본다.


어쩌다 나는 초등학생의 엄마가 되었다. 언제 이렇게 컸는지 새삼 놀랍다가도,

어쩌다 저렇게 의젓해진 건지 당당히 교문을 들어가는 뒷모습을 보면 대견하고 뭉클하다.


어쩌다 입학 첫날부터 아이가 심한 구내염을 앓았다. 그 아픈 일주일 동안 아껴둔 연차를 다 썼다. 밥도 못 먹고 하루 종일 아프고 짜증 내는 아이에게 집중하기 위해서. 세 끼 죽을 끓이고, 믹서로 곱게 갈아서 겨우겨우 밥을 먹였다.

어쩌다 남편은 그 한주 동안 제일 바빴다. 어쩌다 그런 거겠지만, 그의 타이밍은 꼭 내게 도움이 안 된다.


어쩌다 나는 요즘 1년 넘게 거의 재택근무를 하는 중이다. 그러다 보니 재택과 육아를 본의 아니게 병행한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싶으면서도 신경도, 체력도 2배로 든다. 다행히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남편의 누나, 형님네 도움을 많이 받는 중이다.


어쩌다 나는 시어머니, 형님과 같은 ‘시월드’ 아파트에 살게 된 건지 옛날엔 짜증이 많이 났다. 하지만 요즘은 정말 다행이다 수십 번 생각한다.


어쩌다 내가 이 많은 것들을 해내고 있는지 대견하다가도 가끔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어쩌다 퇴사를 생각하다가도, 어쩌다 해결되어가는 일들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다.

어쩌라는 건지…



어쩌다… 문득 생각하니 내가 39살이다.

어쩌다 대통령 당선인이  나이를 도입해서 2살씩 어려진다는 기사를 봤다.  40살이 되는구나 싶었던 서글픈 설렘으로 가득 찼었는데, 

어쩌다   서글픔에 가까운 설렘을 3년은  쥐고 있어야 생각하니  반갑지만은 않다.


뭐 어찌 됐건, 39살까지 왔다.

어찌어찌하다가, 어쩌다 보니 여기에 서 있다.

오늘은 그냥 그 좋아하는 의미부여, 감동 코드는 내려놓고 싶어졌다.

그냥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왔던 걸로.

어쩌다 맞이한 오늘이 나쁘지 않았던 걸로. 그렇게 마무리를 해본다.

내일도, 모레도 어쩌다 보면 흘러갈 거니…

내일도 어찌어찌 또 즐기며 살아보자…



+

어쩌다 사장에서 불 꺼진 마트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배우들이 말한다.

어쩌다 우리가 마트를 운영하게 된 거지?’ 물으며 오늘 손님으로 만났던 짧지만 인상 깊었던 인연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는 몰라도, 세상  배우들이 아주 행복해 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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