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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 May 08. 2022

캠핑을 결심한 이유

  작년 봄부터 기회가 될 때마다, 지인들의 캠핑을 따라다녔다. 여기서도 캠핑, 저기서도 캠핑. 트렌드에 예민한 나였지만, 이 트렌드에는 무척 둔감했다. 밖에서 자는 것도 싫고, 벌레도 싫었다. 무엇보다 게으른 습성과 바닥을 치는 체력으로는 그 세계에 내가 속할 수 없다고 믿었다.


  약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캠핑을 시작하기 위해 하나둘 장비를 알아보고 있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도 정말 내가 캠핑을 시작하는 게 잘하는 걸까?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후회하지 않을까? 하는 근원적 질문이 있다. 때문에 이 글은 땅을 치며 후회할지, 잘 선택했다고 토닥일지 모를 그때를 위한 일종의 선언문이자, 회고록의 처음이 될 기록이다.


고산해수욕장 캠핑장

내가 캠핑을 시작하기로 결심한 첫 번째 이유는, 아이를 위해서이다.

나는 주말이 싫다. 평일에는 학교에, 학원에,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하루가 금방 간다. 주말은 다르다. 주말 아침이어도 7시, 8시면 칼 같이 일어나서 엄마, 아빠를 찾는다. 배고프다. 놀아달라. 심심하다. 휴대폰 봐도 되나.. 쉴 새 없이 주문이 쏟아진다. 외동 부모의 숙명인 건지, 모든 부모에게 해당되는 건지 모를, 이 주문이 가진 마력은 나를 미치게 한다.


같은 외동딸을 가진 형님네는, 작년 겨울 여주의 한 캠핑장에 두 달 내내 텐트를 쳐두는 ‘장박’을 했다. 금요일 밤이면 세 가족이 캠핑장으로 갔다. 캠핑장에서 조카는 트램펄린이며, 놀이터에서 매주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 또래 친구가 없는 날이면 겨울나무 사진을 찍어 나름의 <겨울나무도감>을 만들었고, 우리를 비롯해 심심함에 몸부림치는 가족들을 초대해주었다.


 올봄에는 또래 친구가 있는 지인의 초대로 캠핑장에 다녀왔다. 코로나가 잠잠해진 덕에 아이들은 전보다 부담 없이 친구들을 만났고, 함께 방방이를 뛰고, 캠핑장에 온 또래들과 하루 종일을 놀았다. 그다음 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나 오늘이 정말 행복했어! 정말 너무 진짜.” 할 수 있을 만큼의 부사를 총동원해 나름의 밑밥의 깔고 결정적 한 마디를 내뱉는다.

“우리도 캠핑하면 안 돼? 제발?”

난공불락 같던 내 마음 캠핑의 벽에 우르르르 금이 가던 순간이다.


그리고, 내가 캠핑을 결심한 결정적 이유는, 우리 부부를 위해서다.

우리의 사랑은 토치 불처럼 강한 화력을 타올라 결혼을 했다. 생각보다 빨리 아이를 가졌고, 책임감 강한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서 살아왔다. 남편은 낚시에 빠졌고, 나는 책에 빠졌다. 나는 아이에게 신경을 썼고, 남편은 나름대로 가정에 충실했다. 우리 둘은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 같았지만, 예전처럼 함께 타오를 만한 계기를 찾지 못했다.


주말이면, 서로의 피곤함을 과시했다. 매일 침대에 늘어져있는 남편을 보면, 화가 치밀었고, 잔소리가 길어질수록 서로에 대한 미움이 커졌다. 우리는 시소처럼 서로의 역할이 일정하게 유지되길 바라며, 늘 똑같은 자리에서 하릴없이, 발만 튕기고 있었다.


집에 있으면 계속 나도 모르게 눕게 돼. 놀아주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 주말엔 그냥 라면이나 하나 끓여먹고 싶은데, 뭘 먹어야 될지도 모르겠어… 미안하게 생각해..”

쉴 새 없이 고해성사가 계속된다. 내가 이 모든 죄를 사하여 주기엔, 나 역시 잘한 게 없기에, 나 역시 미안하다는 말로 서로를 토닥여줬다.


렇게 우리는 서로를 게으르게 만드는 것이, 우리가 가진 성향이 아닌, 환경의 문제는 아닐까. 제3의 핑계를 찾았고, 그 해답이 어쩌면 ‘캠핑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게 우리는 <캠핑>이라는 우리의 세계를 다시 만나보기로 했다.



사실 주변에서는 캠핑을 아직도 말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거 맨날 어떻게 치울래? 벌레는 어쩔래? 돈이 생각보다 많이 든다. 요즘 캠핑장 잡기도 힘들다… 등등 현실적인 조언들이 많이 쏟아져 나온다. 1년 전과는 또 달라진 캠핑 트렌드의 온도에 또 한 번 마음이 귀가 펄럭인다.


다만, 이상하게 마음은 굳건해진다. 정 힘들면 그때 접으면 되지. 안 하고 후회하느니 하고 후회하자. 꽤나 단호한 결심들이 마음에 깔려있다. 그리고 캠핑을 함께 할 나의 전우들, 남편과 딸의 초롱초롱한 눈빛 덕분에 ‘캠핑 결심’에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생긴다.


잘할 수 있을까? 나도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재미있을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 슬금슬금 찾아온다. 오랜만에 집안 전체에 생기가 도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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