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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 May 15. 2022

희생을 필요로 하는 여행

   22년 5월 5일은 유난히 부담스럽다. 목요일에 자리 잡은 빨간색 숫자가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금요일 휴가만 내면 긴 연휴가 된다. 거기다가 의도된 날짜처럼, 아이 학교의 개교기념일이 5월 9일이다. 5월 5일부터 9일까지 5일이라는 길게 늘어선 휴일이 반가우면서도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긴 연휴, 우리가 찾은 여행지는 울진의 구산해수욕장이었다. 바다 가까운 곳에 운 좋게 지인의 친척집이 비게 되어 묵을 수 있게 되었고, 간단한 캠핑 도구를 챙겨 해변가에 늘어선 소나무 숲에서 캠핑을 할 참이었다.


   5월 5일 날 아침 일찍, 서울에서 대략 4시간이 걸리는 울진으로 향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많은 차들이 고속도로로 나왔다. 차에서 심심하다고 울부짖는 아이와 함께 수많은 동요들을 부르고, 휴게소마다 들러 간식이며, 뽑기며 어린이날의 응석을 제대로 받아주었다. 나는 장롱면허라 모든 운전은 남편이 한다. 때문에 그 역할 분담이 그 어느 때보다 명확하다.


  서울에서 울진까지 거의 6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의 피로와 짜증은 쌓여갔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허리가 아플 때면 망각했던 질문이 또 솟아난다.

 '이것은 누구를 위한 여행인가'


  울진 집에 도착했다. 그 집에도 아이들이 있다 보니, 넓은 거실에 트램펄린을 설치해뒀다. 딸아이가 보자마자 거기로 뛰어든다. 1층 주택에 트램펄린이라. 맘껏 뛰고, 또 뛰고.

 "엄마, 여기 진짜 좋다!"

방방 뛰는 모습을 보니, 조금 전까지의 생각은 또 망각의 뒤로 숨었고, 괜스레 뿌듯한 마음이 든다.  

 '그래, 네가 좋으니 됐다...'


   바닷가에 왔으니, 해변가로 나가야 할 텐데, 도무지 아이는 나갈 생각이 없다. 이렇게나 재미있는 놀이기구가 집안에 있는데, 물에도 못 들어간다는데 해변에 갈 필요를 못 느끼나 보다. 그럼 그냥 집에서 쉴까 싶다가도 철렁거리는 바닷소리가 귀에 들린다. 오랜만에 만나는 동해의 맑은 바다가 보고 싶다. 가서 모래성을 만들자, 가다가 아이스크림을 사 먹자 설득 끝에 슬리퍼를 끌고 바닷가로 향한다. 파란 지붕의 집들이 줄줄이 들어선 시골 동네. 마당마다 평상이 있고, 바다내음이 가득 찬 이곳. 고층빌딩으로 가득 담긴 내 눈에 신선하고 산뜻한 이색 풍경이다.

 ‘그래, 이게 여행이지’

 내 눈에 다른 풍경을 담는 여행. 이것은 누굴 위한 여행이냐는 잊을만하면 떠오르는 이 질문에 그것도 몰랐냐는 듯 괜한 허세를 부리며 답을 던져본다.


 


     오랜만에 찾은 바다는 눈이 부시도록 푸르렀다. 5월의 동해의 바닷바람은 아직 차고 매서웠다. 이따금씩 물어오는 세찬 모래바람이 오랜만에 드러낸 맨다리에 따갑게 내리쳤지만, 그마저도 좋았다. 잠깐 바다를 거닐고 싶었다. 바다를 오래오래 바라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는 우리에게 약속된 모래놀이를 요구했고, 바다를 등지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 모래성을 몇 번이고 만들었다. 파도를 벗 삼아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펄럭이는 하얀 치마를 휘날리며 유치하면서 술래잡기를 하고 싶었지만 그 시간은 허락되지 않았다. 잡히면 예외 없이 술래가 되어야 하는 냉정한 승부의 세계를 푸르른 동해바다에서 펼쳤다.

  아이와의 여행이 시작되면서 우리는 어른다운 여행을 반으로 접었다. 음식은 늘 맵지 않은 것이 있어야 했고, 가방 한가득 아이의 짐을 채워야 했다. 체력을 요하는 코스보다는 가볍게 즐길 수 있어야 했고, 중간중간 캐릭터들이 가득한 전시회나 테마파크를 넣었다. 어느 순간, 내 사진보다 아이의 사진을 남기게 되었고, 잠시 멈추는 여유보다는, 한시라도 지루해지면 안 된다는 일종의 사명감이 여행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우리는, 부모는, 서로는 일종의 희생을 하고 있었다. 여행을 함께 하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배려와 감내, 희생정신이 필요로 하다. 아직은 인내심을 배워나가는 아이와의 여행에선 그 정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5월의 짧지만 긴 여행을 마치고, 아이에게 물었다.

“뭐가 제일 좋았어?”

“음… 트램펄린이 있는 집이 진짜 좋았어!”

“아…!!!”




  아이와 함께 떠나는 여행은 행복하다. 다만 마냥 재밌고 즐겁지만은 않다. 모든 여행이 다 그럴지도. 아이와 어른의 차이. 타인과 타인의 차이. 서로가 가진 취향의 차이. 그 모든 것들 속에서 우리는 각자 즐거움의 모먼트가 다르다. 나는 그 정도가 아직은 심한, 희생이 요구되는 여행을 하는 중이다.


“엄마는 이번에 뭐가 제일 좋았어?”

“음.. 엄마는 우리 세 식구가 나란히 누워 자는 방에서 들리는 바닷소리가 좋았어”

“응 나도 들었어! 나도 그거 좋았어 엄마! 누워서 바닷소리 듣는 거!”


재잘재잘 이번 여행도 재밌었다는 아이의 말에 또 이 희생이 헛되지 않는구나 싶다. 그렇게 우리는 여러 감정들 속에서 추억을 쌓았고, 수많은 사진으로 순간을 찍었다. 앞으로 영원히 기억될 우리의 모먼트. 그렇기에 나는 이 여행이 어찌 되었건 좋았고, 멈출 수가 없다. 그저 신이 주신 망각에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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