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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 May 22. 2022

영원한 부부의 싸움

그 남편, 그 와이프의 늘 같은 패턴의 싸움

결혼한 남자를 지칭하는 다양한 말 중, 나는 남편이라는 말을 잘 쓴다.

“우리 남편은요..”

“남편 지금 집에 있어요!”


남편은 나를 와이프라고 한다.

“우리 집 와이프는요..”

“와이프가 뭐 사러 갔는데요!”


우리 집 그 남편과 그 와이프는 결혼한 지 9년 차다. 지금껏 크고 작은 다툼을 지나, 잘 화해하고, 어물쩍 넘기는 요령을 터득하며 세월을 쌓아오고 있다.


요 몇 달간, 싸우지 않고 22년의 반을 잘 넘기나 했다. 하지만 어김없이 크게 한숨을 내쉬는 그 남편과 엉엉 우는 그 와이프가 소환되었다.


그 남편이 말한다.

“요즘 넌 내가 뭐만 말해도, 짜증이야. 맨날 힘들다는 말 입에 달고 살아. 무서워서 너한테 뭐하나 묻지도 못하겠어”


그 와이프가 대답한다.

“아니. 내가 왜 힘든지 모르겠어? 오빠 딸내미 초등학교 들어가고 학원이며, 아침 등교 준비며, 숙제며 한 번이라도 신경 써봤어? 나도 똑같이 일하는데 왜 나만 애 키우는 기분이야?

맨날 화장실에서 20-30분씩 처박혀있고! 밥은 무슨 내가 대령해야 먹고, 치우기는 커녕 맨날 냉장고 복잡하다고 잔소리만 하고! 나는 도대체 몇 가지를 해야 하는 건데?”


그 남편이 대답한다.

“그렇게 힘들면 좀 내려놔! 나한테 시킬 건 시키고 부탁할 건 부탁하고”


그 와이프가 맞받아친다

“아니, 맨날 내가 시키는 것만 해? 집에 오면 어련히 안 보여? 빨래통 쌓아있음 세탁기 돌리면 되고, 빨래가 다 말랐으면 개면 되고! 밥 먹고 나면 바로 치우면 안 돼? 언제까지 내가 말하면 할 건데? 나도 매번 말하기 입 아프고 힘들어?”


그 남편이 소리 지른다.

“또 힘들단다! 내가 알아서 못하는 성격이다 싶으면 좀 시키면 될 거 아냐! 어차피 애 키우는 것도 집안일도 해야 하는 거면 회사를 때려치우던가! 그놈에 회사는 맨날 야근하고!”


그 와이프는 미치고 팔짝 뛸 것 같다.

내가 뜻이 있어서 그만둬야지.  이래라 저래라야! 내가 힘들게 공부하고 들어와서 쌓아온 커리언데  오빠가 이래라 저래라야? 내가 그만두고 싶다가도 지금  말을 들으니 정신이 번쩍 든다!  열심히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그 남편이 움찔한다.

“하여튼 너는 지금 짜증이 많이 나있어! 내가 무슨 말만 해도 인상부터 쓴다고! 이게 부부야? 언제부터 우리가 서로한테 인상 쓰는 사이가 됐냐고!”


그 와이프가 울기 시작한다.

그래!  성질 더럽고, 밖에서 쌓이는 스트레스 오빠한테  푸는 거 인정해! 근데 내가  힘들지, 얼마나 힘든지.. 생각이나 해봤어?? 나도 똑같이 일하는데  나는 신경이 두배 세배 쓰여야 하냐고…!! ? 나는 시켜야 하고, 부탁해야 ? 우리 같이 하는 거 아냐? 같이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오빠 또 속으로 쟤 피해의식 발동했네 싶지? 난 피해의식이 있는 게 아니라, 피해보고 있다고!!

오빤 내가 왜 저러는지! 왜 힘든지 생각 안 하지? 전혀? 그냥 내가 성질부리는 것만 보이지?”


그 남편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쉰다.

그 와이프는 엉엉 세상 서럽게 운다.

남편은 우는 모습을 뒤로하고 전자담배를 손에 쥐고 자리를 뜬다.

와이프는 그 자리에 앉아 계속 운다.


생각해보니, 또 이 싸움의 반복이다. 몇 개월 전에도 몇 년 전에도 우리는 이렇게 싸웠다.

그러고 나면,

그 와이프는 성질을 부렸다는, 어설픈 완벽주의로 힘들게 했다는. 그 남편은 또 마음을 몰라줬다는, 남일처럼 집안일을 대했다는.

이런 일말의 미안함이 배가 되어, 평화의 시간을 쌓아간다. 고쳐야 함을 서로가 알면서도, 나는 잘하고 있는 것 같다는 또 다른 일말의 자만심으로 또 같은 패턴의 부부싸움이 조만간 올 것임을 알면서도, 또 오늘을 산다.

찝찝하면서도, 우스우면서도, 그냥 이것도 우리의 세월이구나 싶다. 그렇게 우리의 부부 싸움은 아마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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