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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 Feb 28. 2022

진짜 사랑을 아는 언니들의 이야기

영화 <Sex and the City>

<Sex and the City>

이 강렬한 제목은 미국의 뉴욕 여자 4명의 이야기를 담은 TV 프로그램이다. 2000년대 초반 이제 막 세상의 시야를 넓혀가던 20대 시절. 이 TV쇼는 강렬한 제목처럼 자극적이고, 화려하게 그때의 나에게 다가왔다.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캐리, 샬롯, 미란다, 사만다’이 4명의 언니들의 사랑과 우정 이야기는 따뜻하면서도 낯 뜨겁게 솔직했다. 친구들과 에피소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면, 강렬했던 장면들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도 많이 오고 갔다. 거기다가 언니들은 화려했다. 그녀들이 걷는 뉴욕의 명소들이 그랬고, 언니들이 입고 들고 신는 각종 명품들만으로도 언제부턴가 우상처럼 느껴졌다.


 이 모든 것들이 환상이든 아니든. 나름 마음껏 사랑할 수 있던 그 시절 우리들에겐 범접하기 힘들지만, 언젠가 저렇게 쿨하고 멋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 언제부턴가 연애의, 멋진 여자의 로망이 되어 조심스레 우리 곁에 있었다. Sex and the City. 제목을 빌려 무의식적으로 금기시해왔던 말도 마음껏 내뱉으며 말이다.



 대장정의 TV쇼가 나의 20대 중반과 함께 끝이 났다. 뉴욕 어디선가 살고 있을 것 같았던 언니들이

2008년 어느 날, 화려하게 영화로 돌아왔다. 영화가 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 하숙집에 모여 앉아 노트북에서 함께 TV쇼를 보던, 대학교 친구들 몇 명과 영화관을 찾았다. 그때보다 우리는 조금 더 이 제목을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나이와 용기가 되어서일까. 오랜만에 만난 이 강렬한 영화 제목이 참 반가웠다.


영화는 나의 가장 최애 캐릭터였던 ‘캐리’가 진정한 사랑이라 말하는 ‘빅’과의 결혼을 준비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샬롯은 완벽한 가정을 이루고, 미란다는 워킹맘으로, 숱한 섹스와 남자들 사이에 있던 사만다 언니마저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브라운관에 등장했다. 한 번도 가보적 없지만 늘 익숙하고 변치 않은 뉴욕에서 완벽하게 사랑을 찾았다고 믿었던 언니들은 여전히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찾고 있었다.


2008년, 나 역시 진짜 사랑의 의미를 찾고 싶어 하는 나이였지만, 40살, 50살 가까워진 언니들이 사랑에 대해 하는 말을 귀담아듣지는 못했다. 그때의 이 영화는 그저 세련되고, 더 화려해진 언니들의 스타일과 여전히 핫한 언니들의 육체적 사랑에만 귀를 기울였다.


2022년. 40대를 바라보는 나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예쁜 딸아이를 키우는 나는 여전히 한 번도 뉴욕에 가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따금씩 언니들이 활보하던 그 뉴욕의 거리가 그리웠다.

모두가 잠든 밤. 침대에 누워 작은 휴대폰 화면으로 오랜만에 2008년 이 영화를 다시 플레이해본다.


여전히 내가 사는 삶과 언니들의 겉으론 괴리감이 있다. 가슴이 푹 파인 파티복을 입을 일도 없고, 저렇게 높은 하이힐은 엄두도 나지 않는다. 하지만 20대의 시절에는 느낄 수 없었던 언니들의 사정이 눈에 들어온다.

남편을 사랑하지만 육아에, 일에, 현실의 짐에 부대껴 섹스마저도 짐처럼 느껴지는 미란다 언니. 언제부턴가 40년 넘게 살아온 나보다 연인의 이름을 더 많이 부르게 되어 서글픈 사만다 언니. 완벽하게 만들어진 인생이 망가질까 봐 정말 내가 좋아하는 것을 외면하는 샬롯 언니.

그때, 여전히 화려했던 언니들의 모습에서 읽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씩 발견한다.

언니들은 화려한 도시에서 여전히 멋지게 사랑을 나누지만, 결국의 그 사랑은 타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있다는 걸 말하고 있었다.

20대에는 절대 들리지 않았던 그 말을 말이다.



사만다가 5년을 넘게 사귄 남자 친구와 이별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제 그만 헤어지자는 사만다의 말에 그가 묻는다.

“이제 날 사랑하지 않는 거야?”

사만다는 그의 말에 이렇게 말한다.

아니야 사랑해

당신을 사랑하지만,   사랑해



40대가  지금도 사실 사랑이 뭔지 모르겠다. 불꽃같은 사랑, 설렘 가득한 사랑을 지나, 이제는 성숙하고, 책임지고, 믿음 가득한 사랑의 구간에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그 사랑의 온도나 방법이 어찌 되었든 간에 나는 늘 중요한 하나를 잊고 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 어떤 형태든, 나를 사랑하고 있었는지. 묻는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에게 묻는다. 남편도 자식도 부모님도 모두 사랑하고 중요하지만 정작 나는 40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살아온 내게, 진짜 사랑을 주었는지 말이다.


그리고 2008년 그 시절. 언니들의 화려한 명품 라벨이 멋져 보였던 건, 언니들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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