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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 Mar 26. 2022

누가 3월을 아름답다 했는가

3월은 아름다운 시간이다.

겨울 내내 움츠렸던 새싹이 고개를 들고, 꽃들이 색의 존재를 드러낸다. 아쉬움 가득한 2월의 짧은 시간을 보상이라도 받듯, 새로운 만남에 대한 기대가 있다. 3월은 그렇게 ‘설렘’이라는 말과 잘 어울리는 시간이다.


 워킹맘, 외동딸 맘 그리고 초딩맘. 올해 나의 3월에는 ‘엄마'를 수식하는 단어가 하나 늘었다.


"엄마들이 직장을 가장 많이 그만두는 시기가 초등학교 1학년이야. “

“초등학교 1학년 때, 친구관계 잘 만들어줘야 해.”

“지금 공부 습관을 잘 잡아야 해”


딸의 인생에 ‘초등학생' 관문이 시작된 것인데, 어째 엄마에게 이렇게나 많은 충고, 경고, 조언들이 쏟아지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이 수많은 많은 말들을 손에 쥐고, 귀에 담아 긍정인지, 부정인지 모를 ‘설렘’의 3월을 걷고 있다.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는 특별한 시대이자, 언제든, 누구든, 아플 수 있는 것이 당연한 시대. 딸 로즈는 3월 2일 입학을 앞둔 나흘 전부터 열이 나기 시작했다.

'코로나일까' 겁이 났다. 번호표를 받고 ‘내가 불릴까’ 숫자들이 난무하는 전광판을 수시로 쳐다보는 듯한 요즘.

열이 나기 시작하자마자 가족 모두가 자체적으로 검사를 했다.


오래전부터, 졸업, 입학 축하 겸. 형님네 세 식구와 펜션을 예약해두었다. 딸아이는 본인이 좋아하는 영화 <엔칸토>에 나오는 마법의 집처럼 빨간 지붕을 가진 그곳에 가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37, 38도를 오르락 거리지만 대략 컨디션은 괜찮았기에 코로나 음성이라는 얇은 위로의 결과를 안고, 펜션으로 향했다. 다행히 서울과 멀지 않았기에 여차하면 집으로 올 생각이었다.


빨간 지붕을 보자 마법 같이 씩씩해진 컨디션은 오래가지 않았다. 밤새 열이 39도까지 올랐고, 무서울 정도로 코피를 쏟았다. 달빛 가득한 옅은 어둠 속에서 딸아이의 입술이 오래된 가뭄을 겪는 밭처럼 갈라져 있는 걸 보았다.


아침 일찍 서울로 올라와 그 길로 병원으로 향했다 병명은 ‘구내염’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병명을 안고, 집으로 왔다. 입학 D-3일.

로즈가 초등학교의 첫날에 무사히 참여할 수 있을까. 덜컥 겁이 났다. 그렇게 나는 강렬하게 3월을 맞을 준비를 했다.



구내염은 생각보다 무서웠다.

아이의 입술은 무섭게 갈라져갔고, 혓바닥을 덮은 하얀 백태 사이로 빨간 구멍이 생겼다. 잇몸은 퉁퉁 부어 작고 하얀 이를 무섭게 덮었다. 늘 노래를 부르고 활기차던 아이는 우울한 표정으로 앉았다, 누웠다를 반복한다. 그 좋아하던 초콜릿도 따가워서 먹지를 못하겠다고 서럽게 울어댄다. 고모가 끓여 준 죽을 한번 더 믹서기에 간다. 숟가락이 닿는 게 싫어 모든 걸 다 빨대로 먹었다. 뭐라도 먹어야 할 것 같아서 사골국에 호박죽, 야채죽부터 요구르트, 두유, 아이스크림까지 수시로 아이 앞에 들이댔다.

열은 계속 38도 언저리. 달달하다고 좋아하던 해열제의 딸기맛도 혀에 닿으면 아프다고 울어대니, 밥이든 약이든 입안을 통과하게 하기 위해, 아이도 나도 어지간히도 애를 썼다.

"엄마, 나 너무 아파..."

눈물을 글썽이며 울어대다 4살 이후 처음인 듯한 낮잠을 잤다. 며칠 먹지 못했더니 눈에 띄게 살이 빠졌다. 아이가 자는 동안 먹을 수 있는 것들은 모조리 믹서기에 놓고 갈았다.

밤이 되고, 열이 37.8도로 떨어졌다. 마지막 약을 먹고, 일찍 잠을 청하며 딸아이에게 말했다.


"내일 열이 많이 나거나, 의사 선생님이 학교 가지 말라고 하면 못 갈 수도 있어,,"

"그럼 나 학교 못 갈 수도 있는 거야?"

"응. 그럴 수도 있어"

"........... 엄마, 나 학교 가고 싶어. 초등학생이 빨리 되고 싶어"

"학교를 못 간다고 초등학생이 안 되는 건 아니야"

"그래도, 나 입학식 많이 기다렸단 말이야..."

“……

우선 우리 내일 건강하게 일어날 수 있게 얼른 일찍 자자!"


또르르, 로즈는 떨어지는 눈물을 닦으며 잠이 들었다. 못 먹을 정도로 아픈 것도 서러운데, 기다려온 시간이 불투명해진 아이의 상황이 안쓰러웠다. 그 날밤, 나도 눈물이 났다. 막연하기만 했던 초딩맘의 시작이 생각보다 요란해서 인지 웃음도 났다. 문득 3월 1일 밤의 눈물이 웃음이었는지, 눈물이었는지 모르겠다.


 입학식 날 아침, 새벽에 벌떡 눈이 떠졌다. 얼른 로즈의 이마를 만졌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아이가 깨자마자, 비몽사몽 눈물의 자가 키트로 음성을 확인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처음보다는 많이 좋아졌고, 혹시 모를 세균 감염에 대비해 항생제를 먹기로 한다.

조심스레 아이가 학교 가도 될 것 같은지 선생님께 물었다. 늘 시크하지만, 사실만을 말해주시는 선생님의 입에서 왜 무심하게 흘러나온

"네! 상관없어요!"

라는 말에, 아이와 나는 서로 눈을 마주친다.



3월 24일. 이제 학교에 나간 지 3주의 시간이 흘렀다. 아이는 적응을 잘하고 있다. 언제 아팠냐는 듯 최상의 컨디션을 다시 회복했고, 졸업식 때, 앞으로 못 보는 선생님과 친구들이 그리울 거라고 엉엉 울던 로즈에게는 새로운 선생님과 새 친구들이 많이 생겼다. 이 아름다운 3월의 설렘을 온몸으로 만낏하고 있는 중이다.


이제는 내 차례다. 이 엄마의 차례가 됐다.

아이의 지독한 구내염의 끝에는, 내게도 몸살이 찾아왔다. 아이가 회복되면 긴장 풀리는 엄마가 아플 차례라는 육아의 공식이 이번에도 빗나가지 않았다. 아이가 아플 동안 연차를 많이 썼다 보니, 정작 내가 필요할 땐 쓸 수도 없었다.


백번이고 고마운 재택근무 시스템도 사실, 일찍 하교하는 (요즘은 코로나로 인해 더 하교 시간이 빠르다) 초등맘에게는 썩 반갑지만은 않다. 근처에 사는 친척의 도움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일은 일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하루에도 몇 개의 레이더가 내 등을 억지로 뚫고 나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기분이다.


“엄마 학교 정말 재밌어!”

문득, 밥을 먹다가 아이가 해맑게 말한다.


3월. 아이와 나는 지금, 구름 위를 걷고 있다.

아이는 폭신한 구름 위가 재미있고, 엄마는 발이 푹푹 빠지는 아득한 구름 위가 불안하고 위태롭다.


“로즈가 좋다고 하니 다행이다”


엄마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 아이의 행복이 감사하고 또 감사하지만, 아직 엄마의 아름다운 3월은 아득아득, 조금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


이미지 출처 :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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