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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 Jun 25. 2020

왜 글을 쓰고 싶으세요?

스스로에게 새삼스럽게 던져보고, 진지하게 답해봅니다. 

"6학년 3반, OOO 앞으로!"

운동장에 모인 전교생의 시선이 나에게 모인다.  

1996년 10월의 어느 날, 나는 그렇게 늘 높아만 보였던 그 계단을 하나 하나 처음으로 올라가 보았다. 


뛰어가는 걸음마다 생기는 얕은 모래바람, 뿌듯해보이는 목과 등, 겨드랑이에 꽉 끼어있는 상장,

수줍음과 자랑스러운 발걸음으로 더 많이 날리는 듯한 모래바람. 

다시 우리와 같은 자리로 돌아와 서 있지만 뭔가 빛은 품은 듯한 모습..


그 날 만큼은 내가 그랬다. 평소 내가 관찰했던 상을 받는 그 누군가를 향한 묘사가 나에게 적용되었다.  

시 주관 초등학생 글짓기대회 3등. 

그날 모래바람도 목과 등도 상장도 내가 느꼈던 그대로였다. 그리고 내 자리의 빛도 꽤나 눈부셨다. 


그 뒤로 글짓기 대회만 있으면 선생님들은 나를 교무실로 불렀고, 나는 시, 도, 전국 글짓기 대회에 모두 참여했다. 

대게 모든 글짓기 대회는 공원에서 진행 된다. 대회 당일 주제어가 주어지고, 두어시간 생각하고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있다. 제출 후 자유시간이 지나면 공원 가운데 다 같이 모여 심사위원들의 총평, 격려와 함께 수상작들이 발표된다.  


나는 그냥 글짓기 대회 자체가 좋았다. 소풍같이 설레기도 하지만 사뭇 진지해보이는 아이들의 모습이 늘 재미있었다. 비장하게 보이는 연필, 그 연필이 까맣게 번진 새끼손가락과 손바닥의 한쪽 면, 여기저기 굴러다디는 지우개. 


특히나 나는 2~3시간 동안 공원 벤치에 앉아, 혹은 잔디에 누워 주제어를 떠올리며 생각을 집중할 수 있는 그 시간이 좋았다.

 그저 멍하니 하늘을 응시하고, 말로만 듣던 지구가 돌고 있구나라는 것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던 순간. 그 시간이 지나면 나의 지구는 연필에게 움직임을 양보했고, 내 손과 연필만이 시야에서 움직였다. 

나는 그 '분주함'들이 참 좋았다.  


몇 번의 대회를 더 거쳤지만 나는 더 이상의 전교생들 앞에서 받을 수 있는 정도의 수상을 하지 못했다. 상이라는게 없어지니 어른들은 자연스럽게 나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나 또한 인정 받지 못함에 대한 아쉬움으로 내가 느낀 그 설레임을 잊어버렸고 지워버렸다. 



그때 나는 그러지 말았어야 한다.  

후회가 된다. 그 이후 내가 이루고자 했던 일들은 모두 그런 식이었다.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들을 타인의 시선을 기준으로 생각했고 인정받지 못함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그게 어느 순간 버릇이 되고 나니,  내가 표현하고, 진짜 이루고 싶었던 것들은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게 됐고, 

'남들이 보기엔 나쁘지 않아, 이 정도면 됐어...'라는 

자기위안, 아니 타인에 의한 위안을 내 스스로 만들었다.  


우리는 자신을 표현하는 행위로 인생을 채운다.  내면에 있는 생각, 감정, 욕망을 제때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면 삶이 답답해진다. 각자의 내면에 무엇이 있으며  또 어떻게 그것을 표현하느냐에 따라 사람의 인생이 달라진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중> 


다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살면서 순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그 때마다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용기내지 못했고 실천하지 못했다. 13살, 그 때의 생각, 감정, 욕망을 참 오랫동안 닫아두었다. 가끔 살며시 남몰래 열어보긴 했지만 자신있게 내가 이렇다라고 당당하게 꺼내지는 못했다. 그래서 나는 늘 답답했나보다. 


학창시절, 직장생활, 그리고 엄마가 된 지금 물론 감사하고 행복하게 지내왔다. 하지만 행복이라는 것은 노력만으로 시간만으로 해결되지 않음을 순간 순간 깨달을 때가 많다. 그 해답은 사실 나의 내면에 있는데 그게 뭔지 이제서야 궁금해졌고, 꺼내어 이야기 해보고 싶어졌다.  


-

나에게 물어본다. 

" 왜 글을 쓰고 싶으세요?"

나는 답해본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진짜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


육아, 책, 라디오, 역사, 여행 등등 좋아하고, 잘해보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다. 하지만 또 13살의 나 처럼,  이것들에 대한 내 생각을 표현하지 않으면 또 그저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것 같다. 


넋 놓고 흘려버리기엔  이제 나는 조금 더 용기 있고, 성숙한 어른이 되었다. 

37살, 평범한 직장인 그리고 아내, 엄마.이제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 느끼는 수 많은 것들을 하나씩, 차근차근 글로 표현해보고 싶다. 


남들의 시선을 신경쓰기보다는,  내 생각을 표현하고, 그 자체로 공감받고, 

그 속에서 많은 의견, 이야기를 타인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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