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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 Jun 29. 2020

육아, 매뉴얼이 필요할까?

육아, 나만의 철학을 만들어가는 중입니다.



물을 쏟기까지 수많은 세계가 흘러간다.

딸아이가 바닥에 물을 쏟았다. 처음 아이가 바닥에 물을 쏟았을 때,  나는 당황하지 않았다. 육아를 책으로 배우는 나에겐 든든한 지침서가 있었다.

"어머! 물을 쏟았구나! 그래도 혼자 물을 마시려고 노력해서 멋져! 그럼 우리 이제 같이 물을 닦아볼까?"

과정에 대한 격려, 칭찬 그리고 다음번 아이의 긍정적인 행동을 유발할 수 있는 적절히 다정한 멘트까지. 나는 성공했다. 나름 꽤나 드라마에 나올 법한 그럼 엄마의 모습이었다.


그 후, 물을 혼자서 마시는 연습을 할 때마다, 바닥에는 물이 흥건히 흘렀다. 그때마다 나는 당황하지 않고 매뉴얼들을 떠올리며 나름의 훈육, 훈련을 했다. 나는 발생하더라도 문제없이 넘어갈 수 있으리라..


어느 주말 오후, 또 '아이가 물을 쏟았을 때'가 발생했다. 딸아이는 아빠와 방에서 보드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나는 점심 식탁을 모두 치우고, 부엌 바닥을 닦았다. 게임에서 아이는 계속 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는 하면 할수록 힘든 가사를 꾸역꾸역 끝내고, 막 시작되는 커피 한잔의 여유를 아무도 방해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렇게 우리는 다른 세계에 있었다. 우리의 세계가 충돌한 것은, 아이가 물을 쏟았을 그때였다.


아이는 물을 그대로 바닥에 방치한 채 다시 보드게임을 하기 위해 방 안으로 달려갔다. 그 물은 바로 내 시야에 들어왔다.


나의 머리는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내가 읽은 육아서 그리고 나의 현재 감정.

'하... 방금 다 닦았는데....'

'이제 좀 쉬려고 앉았는데'

'분명 물을 쏟으면 바로 닦으라고 훈련시켰는데...'

'왜 그랬는지 일단 물어봐야 해. 다자 꼬자 다그치 말자..'

그 짧은 순간에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내 마음을 요동치게 했는지 모른다.

다행히 입 밖으로 튀어나온 건 이성이었다.


"윤서야, 이리 나와볼래?"

낮고 굵은 목소리로 아이를 부른다. 아이의 발걸음은 당당했다. 나는 또 혈압이 오른다. 차라리 조금 미안해하는 모습이었다면 덜 했을까?

"엄마가 뭐라 그랬어? 물을 따르다가 실수한 건 괜찮지만, 실수한 건 바로 해결해야지"

"... 지금 하기 싫어 엄마."

"그래? 그럼 엄마가 좀 기다려줄까?"

"응"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차라리 다른 일에 몰두하거나 그 물을 외면해버렸다면 어땠을까.

나는 기다리지 못했다. 나도 모르게 내가 정해둔 기다림의 시간은 10분이었나 보다.


"윤서! 빨리 나와서 이거 닦아! 엄마 충분히 기다린 것 같아!"

이번엔 짜증이 섞인 목소리다. 투덜투덜 걸어 나오는 딸아이는 자리에 서서 가만히 바닥을 바라본다.

"안 치울 거야? 엄마가 자기가 한 행동은 책임져야 한다고 했지?"

"지금 닦기 싫다고! 조금 있다가 닦겠다고"

그 자리에 앉아서 아이는 울기 시작했고, 나의 분노지수는 또 올라간다. 그냥 원래 시키는 대로 닦으면 될걸, 왜 안 닦고 또 울고 난리란 말인가.


한참을 울고 아이가 말한다

"엄마는 왜 기다려주겠다고 하고, 엄마 말에 책임을 안져?"


그렇게나 나와 아이의 다른 존재다.  물이 쏟아지기 전까지 서로 다른 세계를 형성한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신봉하던 육아서의 매뉴얼에서 제시하는 것들은 그 복잡한 세계를 전부 아우르지 못한다.


출처 : https://www.pinterest.co.kr/pin/390968811399296186/


육아, 아이를 기르고 나를 기르는 일.


 "아이는 엄마 하기에 달렸다" vs "엄마가 어떻게 하든 아이는 아이의 운명을 산다"

많은 육아서에서는 나름 육아에 대해 많이들 정의한다. 그래서 '엄마, 육아'라는 단어는 많은 수식어들과 함께 정보가 공유되고, 유행이 된다. 그에 대한 정답을 각자 어떻게 내리고, 실천하든 확실한 것은 '아이에게 엄마, 주 양육자의 육아'는 중요하고 영향력이 크다는 것이다.


다만, 너무 많은 수식어를 통한 정보에 휘둘려 나만의 철학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한 가장 중요한 일관성 있는 엄마의 행동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닐까?


육아(兒)는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기를 육, 아이 아(兒).  

본디 한 아이를 기르는 양육자의 역할, 즉 기다린다는 것은 내 마음대로 조정하는 것이 아니다. 기다려주고, 지켜봐 주고, 믿어주고, 사랑해주는 어쩌면 가장 수동적이지만 어려운 '기르다'의 행위를 하는 것이다.   


반면 육아(我)는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다. 기를 육 그리고 나 아(我).

어른이 된 나는, 이제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는 힘이 있다. 도움이 필요하면 미안해말고 요청하면 되고, 쉬고 싶으면 잠깐 쉬어도 되고, 스트레스가 쌓이면 나만의 방법으로 풀면 된다. 그만큼 나는 가장 적극적이지만 어려운 나를 "기르는" 행위를 하면 된다.  그리고 그래야만 육아(兒)를 할 수 있다. 그래야만 아이를 기다리고, 지켜주고, 믿어주고, 사랑해줄 수 있다.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나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각자가 잡을 토끼가 있다. 다만 내가 좀 더 즐겁게 토끼를 잡아간다면 아이도 그걸 배울 수 있고,  아이가 잡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응원해 줄 수 있지 않을까?


다음번에, 아이가 물을 쏟고 닦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면? 그때 가서 어떻게 할지 생각해보려고 한다.

그때까지 나는 좀 더 멋진 엄마가 되기 위해 책도 많이 읽고, 지금처럼 글도 쓰고, 쇼핑도 하고, 유튜브에서 열심히 매일 요가도 따라 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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