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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 Jul 12. 2020

밤 10시, 라디오

밤 10시,

듣기만 해도 설렘이 묻어나는 시간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리고 라디오에 빠졌던 사람들에게는.


그 시간은 밤하늘 별이 유독 반짝반짝 빛났고, 우리들만의 음악도시에 불이 켜졌다. 그리고 어둡던 밤하늘이 갑자기 푸르게 변했다. 그 시그널 음악들이 켜주었던 나의 밤은 여느 낮의 햇살보다 더 눈부셨다.

(별이 빛나는 밤에, 유희열(혹은 이소라)의 음악도시, 푸른 밤 성시경입니다)


눈부셨던 10대, 20대의 밤은, 30대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다만 나는 흔히들 말하는 요즘 음악이 옛날 음악만큼 좋지는 않다. 이렇게 옛날 사람이 되어 가는 건가 애써 부정하기도 했지만, 똑같은 주파수에 머무르기에는 나는 조금 나이가 많아져 버렸다.


버릇처럼 켜보는 라디오에서, 주파수를 돌려본다. 멀지 않은 곳에서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온다.


허윤희의 <꿈과 음악사이에>


CBS 음악 FM의 프로그램이었다. CBS? 기독교 방송? 기독교가 아닌 사람들이 들어도 되는 건가? 주파수에 대한 선입견으로 한 번도 시도조차 하지 않았는데..

종교를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이 음악이라고 했던가. 나는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신을 넘어 음악의 은총을 받고 있다.

(CBS 음악FM은 종교색과 관계없이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일반 FM방송처럼)


그렇게 나의 10대, 20대의 찬란했던 시간들을 지나 지금은 꿈과 음악사이에 머무르는 중이다.


https://www.pinterest.co.kr/pin/616008055261298629/

같은 팀 동생들과 야근을 끝내고 회사 근처에서 등갈비를 먹었다. 매운 등갈비, 소주 한 병과 함께 끝나지 않을 회사 욕을 하고 테헤란로를 걸었다. 그렇게 험난했던, 분노와 욕이 난무했던 하루를 등갈비와 술로 위로하는 우리가 불쌍하기도, 대견하기도 했다. 지하철을 타고 잠실철교를 지나던 그때, 순간 그 감정이 왜 이렇게 소중하게 느껴졌을까? 마치 어른이 된 것 같은 그런 기분 말이다.

나는 라디오 앱을 켜고 이 감정을 써 내려갔다. 그렇게 멈췄던 솔직한 나의 이야기를 30대에 처음으로 라디오에 사연을 보냈다.


'언니, 저 지금 술 한잔 하고 집에 오는데, 너무 기분이 좋아요! 오늘 너무 힘들었는데 등갈비 먹고, 소주 먹고 나니, 이게 뭐라고 왜 이렇게 좋죠? 소중한 사람들이 함께 있어서 일까요? 언니 그냥 갑자기 듣고 싶은 노래가 있어요! 015b의 텅 빈 거리에서 들려주세요'


누군가에게 이야기했다면, 다음 날 똑바로 그 사람을 쳐다보지도 못할 말들. SNS에 썼다면 그 다음날 바로 지웠을 법한 정제되지 않은 감정들, 하지만 그 순간을 나는 라디오에 잡아두었다.


라디오는 내가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할 수 있는 다른 나라에 이름 모를 친구와의 펜팔 같은 그런 것이다.


지금의 나는 나의 이야기를 한다. 남의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다만 그 과정 속에서 저 사람에게 필요 없는 이야기는 아닐까?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여러 생각을 한다. 우리들은 평범하거나 혹은 특별한 하기도 한 모든 것들을 깊게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말하는 버릇이 생긴 것이다.


그러다 문득, 오랜만에 라디오에 사연을 쓰며 새삼 생각해본다. 평범한 일상에서 느껴지는 순간의 진지함이 꽤나 소중하다 것. 그리고 어떤 날, 이렇게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내 이야기를 말할 수 있다는게 얼마나 좋은지를 말이다.


언제라도 사연을 보낼 수 있는 나, 순간을 소중하게 읽어주는 DJ, 그리고 그걸 언제라도 추억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영원히 남을 노래들. 라디오는 그렇게 늘 내 곁에 있었다.


나는 라디오가 좋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한번쯤은 그저 손이 가는 대로 편하게 나의 이야기를 사연으로 남겨보길 권한다. 사소한 순간도 음악과 함께 특별해질테고, 그게 꽤나 좋은 추억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수 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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