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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 Aug 02. 2020

방학이라는 시간

아이의 짧은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며칠 전부터 알림장에는 '7/27~31일은 여름방학입니다. 아이들이 원에서는 누릴 수 없는 새로운 경험을 선물해주세요'라고 적혀있었다. 매년 똑같은 안내문이다. 유치원의 입장에서는 여름방학을 부모들에게 알리는 최선의 글귀였다. 하지만 학부모에겐, 아니 적어도 나에게는 애써 외면하고 싶은 부담스러운 문장이었다. 


난 여름이라는 계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나 더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도 반갑지 않고, 긴 시간 퍼붓는 비도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때문에 대학시절, MT를 끝으로 나는 여름에는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 그저 7월, 8월의 시간들은 최대한 조용하게 보내는 휴식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생기고 나서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특히 아이가 어린이집,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나의 여름은 '여름방학'이라는 미명 하에 나를 옥죄어 왔다. 


4살, 아이의 첫여름방학. 나는 사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나와 비슷한 여름에 대한 생각을 지녔던 남편도 여름에 휴가를 낸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기에 아이의 여름방학에 어디를 가야 한다는 생각 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주변의 많은 선배 엄마 아빠들은 6월, 여름의 더위가 찾아올 때면 안부처럼 물었다. 


"이번 여름엔 어디로 갈 거야?"


그랬다. 우리는 여름방학을 보내야 하는 아이를 가진 부모였다. 더 이상 휴식처럼 여름을 보내야 하는 그런  자유로운 영혼들이 더 이상 아니었다.    


그때 우리는 6월의 어느 날, 아이를 재워놓고 여름방학에 대해 고민했다. 어딜 가야 한다. 어디로 갈까? 해외로 가자니 이미 비행기 가격은 오를 대로 올라, 지금 예약한다는 건 가격이 상관없는 여유를 가졌거나, 혹은 호구 둘 중 하나를 택하는 것 같았다. 우린 둘 중 어느 하나도 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국내의 이름 있는 호텔, 펜션은 성수기, 극성수기라는 말로 1박 2일의 대가를 너무 비쌌게 부르고 있었다. 그에 반해 비수기라고 적혀있는 너그러운 가격은 다시 한번 꼭 지금이어야 하는 것인가 우리를 좌절하게 했다.. 결국 아이를 데리고 친정에 가기로 했고, 친정식구들과 근처 해수욕장에 갔다. 적어도 어딜 갔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아이랑 같이 바다 갔어요!"라고 말할 수 있고, 개학 첫날 방학에 뭘 했는지 그림으로 그려야 하는 아이에게 파란 색연필로 바다를, 핑크 색연필로 수영복 입은 자신을 그릴 수 있는 최선의 휴가라 믿었다. 


입구부터 파도는커녕 인파에 휩쓸리지 않기를 바라야 했고, 나와 비슷한 성격을 가진 딸아이는 모래가 발가락에 끼자마자 안아달라고 난리를 치는 바람에 엄마, 아빠, 나, 남편이 돌아가며 딸아이를 업고 다녔다. 모래도 싫은 아이는 짜디짠 바닷물은 더욱 싫어했다. 성수기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게 값이었던 파라솔 가격만 지불한 채, 1시간도 채 안되어 바다를 떠났다. 그래도 다행히 5일이나 휴가 내고 뭐 했어? 어디 갔다 왔어?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남해 갔다 왔어요!"라고 말할 수 있었고, 아이도 뭐했냐고 묻는 선생님의 말에 "바다 봤어요!"라고 한마디라도 했다고 한다. 그래 그거면 됐다. 


5살, 여름방학, 바다 갔다 왔어요! 그 한마디를 위한 또 한 번의 희생은 무리라고 생각했고, 우리는 여행은 가지 않기로 했다. 남편과 내가 이틀씩 휴가를 내고, 친정엄마 찬스 하루를 더해, 5일간의 방학을 보내기로 했다. 우리는 각자 박물관, 뮤지컬, 미술관, 키즈카페, 아쿠아리움, 친구 집 등 아이를 위한 촘촘한 계획을 실행해가며 꼭 여름방학에 여행이 아닌, 꽤나 괜찮은 대안을 발견했다고 안도했다. 


그렇게, 아이의 6살 방학의 알림장이 왔다. 하지만 5살의 여름방학과는 다른 코로나의 시대도 함께 왔다. 되도록 실내와 인파는 피해야 했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는 휴가는 부담으로 다가왔다. 이렇게나 큰 변수가 우리리 모두의 앞에 서 있는데, 우습게도 여름방학은 똑같이 주어졌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어른들은 아이에게 또 새로운 경험을 줘야 했다. 


"7일 동안 집에만 있을 수는 없잖아. 그렇다고 키즈카페를 갈 수도 없고, 실내는 좀 그러니, 펜션 하나 잡아서 갈까? 사람들 안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엄마 아빠 오라고 할까? 하.. 같이 가면 좀 그런가? 그냥 우리끼리만 가자"


남편의 제안에 짜증, 원망 가득 섞인 마음을 억누르고 단독 펜션, 풀빌라를 중심으로 뒤늦게 서울 근교, 강원도로 찾아보는데, 나와 같은 감정이든, 혹은 즐거운 기분이었을지 모르는 누군가들의 예약에 나는 또 좌절했다


찾고 찾다가 취소된 건 하나, 강원도 고성의 한 펜션으로 예약을 했다. 나름 오션뷰에 방안에 큰 스파시설이 있고, 바비큐 시설도 구비되어 있다.  '생각보다 괜찮다'는 리뷰를 읽으며 '그래. 괜찮겠지.. 방학 때 뭐 했냐고 물어보면, 바다 보이는 펜션에 갔다 왔다 하라고 해야지...'


서울에서 고성까지 2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다. 늘 궁금한 게 아이가 한 명 있는 집은 2시간의 이동시간에 뭘 할까? 아빠든 엄마든 운전자 1명은 운전에 집중해야 할 것이고, 한 명은 아이와 무언가를 해야 한다. 그것도 차 안에서. 운전을 못하는 나는 오롯이 아이와 뭔가를 해야 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나는 멀미가 심한 사람이다. 차에서 잠을 자거나, 혹은 멍 때려야 하는데 때문에 아이에게 어쩔 수 없이 아이패드를 쥐어준다. 그렇게 2시간이 넘게 아이는 패드를 쥐고 즐거워한다.  거기서부터 나는 또 짜증이 난다. 이게 누굴 위한 휴가인가..


그렇게 도착한 고성, 파란 하늘 대신 뿌연 하늘과 매서운 파도 소리만 철썩거린다. 펜션 체크인을 위해 주인과 만났다. 주인은 아이를 보더니 추가 요금이 4만 원이라고 말한다.

"2만 원 아니었나요?" 

"성수기라서요.."

"아 네...."


방 안으로 올라가니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뷰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하얀 이불이 눈에 들어온다. 이끌리듯 하얀 이불로 발걸음을 옮기어, 예민한 나의 레이더는 하얀 이불을 들쳐본다. 아니나 다를까 더럽다. 얼룩덜룩,.

내가 뭘 기대했던가. 

프런트로 전화를 해서 이불을 바꿔달라 말하니 성수기에는 여분의 이불도 없고, 바꿔줄 수도 없다고 한다. 성수기에는 성수기라는 말로 모든 걸 단번에 정리해버린다. 그리고 성수기의 약자인 나는 쉽게 굴복해버린다. 


성수기에 걸터앉아 있는 여름의 휴가가 참 어렵고, 싫다. 


추적추적 비 오는 바닷가를 거닐다가, 아이가 재채기를 하자 서둘러 방으로 들어왔다. 따뜻한 제트스파를 대신해보고, 바비큐로 고기도 먹어본다. 그런데 집에서 강원도의 한 펜션으로 장소만 바뀌었을 뿐이지 즐겁지가 않다. 


사실 여행에서 아이는, 어디를 갔는지 보다는 누구와 어떻게 놀았는지 중요하게 생각했다. 때문에 아이는 되도록 시댁 식구, 친정식구들과 함께 하거나, 또래가 있는 집과 함께 가는 것을 좋아했고, 덕분에 우리도 여유를 즐길 수 있기에 그 편이 좋았다.  그런데 우리는 장소만 바뀌었을 뿐 늘 똑같은 조합으로 여기에 있었고, 날씨도, 룸 컨디션도 마음에 들지 않는 곳으로 여행을 와 있었다. 


왜 이 고생을 여기까지 와서 해야 할까? 집이랑 뭐가 다르지? 나의 불만과 예민 세포들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얼룩덜룩 찝찝한 이불도 싫었고, 밤새 쿵쿵대는 층간 소음,  피~융! 비루한 해변의 폭죽 소리로 밤을 지새웠다. 그리고 망가질 대로 망가진 컨디션과 함께 비 오는 습한 바닷바람은 우리 가족에게 여름 감기를 안겨줬다.  


다음 날 아침, 보통은 체크아웃 시간을 꾹꾹 채워 나오지만 2시간이나 먼저 펜션을 빠져나왔다.  간단히 밥을 먹고 근처 서점으로 향해 그나마 지친 나의 심신을 달래 보지만,  우리는 빨리 집으로 왔다. 이렇게 집이 간절할 수가.. 


정말 나는 이번 여름휴가라고 명명한 이 시간이 하나도 맘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1박 2일을 보내고, 그다음 날은 하루 종일 집에서 아이와 클레이, 그림을 그리고, 또 다음 날은 동네 문구점 투어를 다녀오고, 그다음 날은 동네 친구를 만나 놀이터에서 놀고, 집에서 치킨을 먹었다. 


방학의 마지막 날, 


"내일 유치원 가면, 뭐 했다고 말할 거야? 우리 바다 보이는 큰 욕조 있는 펜션도 갔잖아" 


내심 나는 또 하나도 맘에 들지 않았지만, 비싼 돈 들여 다녀온 오션뷰를 딸이 기억하길 바랬나 보다. 그냥 누군가가 들었을 때, 혹은 오션뷰에서의 와인 사진 한 장 만 봤을 때 "우와 좋았겠네!" 의미 없는 감탄이라도 라고 들을 수 있으니 말이다. 




"나? 우리 동네 문구점 다 가본 거랑, 지유랑 놀이터 갔다가 우리 집에서 치킨 시켜 먹은 거!"


헛웃음이 나온다. 그래도 강원도 바다 갔다 왔다고 말해...라는 말이 혀 끝까지 올라왔지만 말하지 않았다. 콧물이 가득 차 있는 코를 킁킁대며 말한다. 


"진짜? 엄마도 사실 그게 제일 재밌었어"



나에게는 아직도 아이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물해줘야 하는 방학이 많이 남아 있다.  어떤 방학은 즐거울 수 있고, 어떤 방학은 이번처럼 허무하고 별로일 수 있다. 어떻게 보내는 것이 정답인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3번의 방학을 보내며 생각해본다.  


내가 아이에게 방학 때 줄 새로운 경험은, 꼭 새로운 장소, 환경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방학이 타인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정해진 시간일지라도, 남들에게 말하기 위해, 보여주기 위한 마음으로 그 시간을 낭비하지는 않겠다는 걸 말이다. 



유난히 긴 방학, 다들 잘 보내고 계신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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