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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 Aug 23. 2020

자식을 위한 같은 마음, 다른 행동

코로나, 환경변화, 세대갈등에 대한 복합적인 생각의 기록

내가 속한 베이비붐 세대는 근시안적인 태도로 좋은 한 때를 보냈고, 자신들이 굉장히 부정적인 시선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인식해야 한다.
<제이슨 디케레스 테일러, 인간은 죽지만 지구는 죽지 않는다 Interview 중>

 얼마 전, 시아버님 기일에 맞춰 산소에 다녀왔다. 우리는 아버님을 산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메모리얼 파크에 수목장으로 모셨다. 덕분에 기일이면 집에서 제사를 지내는 대신, 우리는  밥, 탕국, 생선, 전, 나물을 준비해 그곳으로 가 아버님을 뵙고, 그곳에서 식사를 한다. 제사음식을 준비한다는 게 쉽지는 않지만 가족들과 소풍을 간다는 즐거운 기분으로 임하려고 매번 노력한다.


하지만 나처럼 요리 실력이 없는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하는 제사는 매번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맛이 없으면 어쩌나에서부터 시작해, 음식의 정성이 부족해 보이지는 않을까 사소한 걱정이 가득하다. 그래서일까? 즐겁게 승화시키려고 하는 과정에서는 유쾌할 수 밖에만은 없는 일들은 종종 생기기도 한다. (남편의 방관적인 태도라던지, 그건 오늘 할 이야기는 아니니 접어두기로 한다.)


다행히 이번에는 어머니가 요리실력이 조금 부족해도 나의 노력을 높게 사주신 덕분에, 음식은 큰 화젯거리가 되지 않았다. 다만 식사를 다 마치고 그릇을 챙기는 의외의 과정에서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오묘한 기류는 시작됐다.

"아이고, 뭐 이리 그릇들을 바리바리 싸왔니? 여기서도 집에서도 치우는 데 한 세월 걸리겠다. 담에는 싹 버리고 가게 일회용 접시로 가지고 온나, 또 가면 설거지해야 되고, 니 편한 게 제일이다. 편해야 즐겁게 하지. 야는 가만 보면 사서 고생하는 스타일이다. 이리 세상이 편한 게 많은데..."


나는 되도록 일회용품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이번에도 보온병에서부터 시작해, 수저, 그릇 모두를 집에서 사용하는 것들로 가져갔다. 특히나 차로 왔다 갔다 하기에 들고 다닐 필요도 없으니 무거울 수 있다는 예외도 없었기 때문에 일회용품을 하나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의 생각은 달랐다. 준비하느라 수고하고, 또 치우느라 고생할 며느리가 안쓰러우셔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걸 안다. 특히나 힘이 들고, 번거로운 과정이 많아지면 즐겁던 일도 짜증 나기 시작하는 인간의 습성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시는 분이기에 요즘 들어 크게 변한 나의 살림과 행동 패턴(텀블러를 챙기고, 비누로 머리를 감고, 소프넛 세제를 쓰고, 생리 팬티를 사용하는)을 보고 '며느리를 위한' 잔소리를 많이 늘어놓으신다.  


어머니들 또래,  즉 베이비붐 세대들은 불편함과 편리함의 기로에서 그 엄청난 온도 차이를 몸소 경험하신 분들이다. 특히나 편리함으로 타협하지 않으셨던 시어머니 밑에서 많은 고생을 하셨다. 매번 제사, 명절이면 손수 빚는 만두, 송편은 물론이고, 차가운 물에 잘 녹지도 않던 비누로 몇 시간씩 빨던 그 많은 행주들. 지금이라면 상상도 하기 싫은 불편함을 견디셨다. 하지만 가장 트렌드에 민감한 나이로 그때를 살며, 하루가 다르게 등장하는 일상을 편하게 해주는 신(新) 문물-가공식품, 액체세제, 일회용품 등-을 거침없이 받아들였고, 그간의 불편함을 보상받으셨고, 우리의 자식들에게는 그런 불편함을 물려주지 않으리라 다짐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부모님 세대가 만들어주신 그 잘 닦인 평평한 길 위에서 더욱 진화된 편리함을 향해 빠르게 전진하고 있다.


새벽 배송을 위해 불필요하게 쓰이는 박스와 비닐들, 예쁜 포장을 위해 쓰이는 각종 플라스틱들. 한번 입고 버려지는 화려한 옷들 속의 폴리에스테르 (세계 5대 오염 산업 중에서 패션 산업은 2위를 차지한다고 한다.), 각종 화학물질들로 사용감을 높인 생활용품들, 동물실험들로 안전성을 증명하는 화장품들.


그렇게 우리는 우리는 부모세대들과 함께 했던, 우리가 만들고 기여한 근시안적인 태도의 결과를 하나씩 뼈저리게 겪고 있다.


어쩌면 우리에겐 선택권이 없었다는 억울한 반론을 펼 수도 있지만, 사실 우리는 그분들 덕분에 많은 것들을 누렸다. 매일 학교에서 친구들과 만나 함께 밥을 먹었고, 군것질을 했다. 쉬는 시간이면 땀나게 복도를 뛰어다녔다. 주말에는 가족, 친척들과 놀이공원, 캠핑을 다녔고 함께 밥을 먹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캠퍼스의 자유를 누렸고, 매주 설레는 미팅도 했다. 그리고 자취하는 친구의 집에 모여 밤새 술도 마셨다. 그리고 차곡차곡 모은 돈으로 도쿄타워와 에펠탑의 야경을 보았고, 바티칸에서 천지창조를 직접 눈으로 보았다.


나는 불안전한 20대를 지나, 이제는 아주 조금 세상을 알 것도 같은 30대의 중간에 서 있다. 그리고 나는 그때의 어머니들처럼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아이들에게 좋은 것만 주고 싶은 같은 마음이지만, 그때와는 차원이 다른 변화가 일어나는 너무도 다른 시간에 서 있다. 


때문에 우리는 자식 가진 부모의 똑같은 마음일지라도, 그들과는 완전히 다르게 생각해야 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아이들에게 줄 수 없고, 아이들이 커서 어른이 되면 미안한 마음 가득, 불편한 부모 자리에 앉아 더 단단해진 세대 간의 벽을 만들지도 모른다.


내가 치우는 게 힘들까 봐 일회용품 사용을 제안한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 일회용품 이거 다 쓰레기예요. 불편한 거 조금만 참으면 괜찮아요. 요즘 쓰레기 때문에 문제인 거 아시죠? 이렇게 편안하게만 하려다 보면 돌고 돌아서 이거 어머니 손녀한테 다 와요. 애들 너무 불쌍해요." (이걸 이야기할 때는 애교 있는 목소리, 웃는 얼굴을 장착해야 한다. 꼭)

매번 반찬을 보낼 때마다 겹겹이 비닐봉지를 보내는 엄마에게, 실리콘 봉지와 다회용 용기를 보내며 말했다.

"엄마, 엄마 반찬 없이는 못 살겠어. 근데 비닐봉지로 보내지 말고 조금씩 이걸로 보내줘! 또 씻어서 다음번에 한꺼번에 또 보낼게!"

나의 이런 말에 어머니는 순간 말문이 막혀하시고 자연스레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친정엄마는 수화기 너머로 "가시나 너 잘났다"라고 새침하게 말한다.


나는 요즘도 사람은 고기를 먹어야 힘이 난다는 어머니에게 탄소배출량을 이야기하고, 샴푸를 추천해달라는 엄마에게 비누를 권한다. 유난히 대형마트를 좋아하는 남편에게 연간회원을 끊었음을 통보했고, 딸에게는 유치원 알림장 뒤에 그림을 그리라고 말한다.


이런 사실과는 별개로 많은 심리학자들은 기후변화에 대한 무관심, 이를 테면 '어차피 개인의 노력으로는 변화를 일으키지도 못할 텐데 왜 나를 귀찮게 하느냐'같은 생각이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집단적 행동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분석했다.
 <클라리스 시벡 몬테리오리, 불타버린 나라 Feature 중 >


 사실 아주 작은 나의 행동이 당장의 큰 변화를 일으킬 거라는 기대는 없다. 조금씩 실천해 나가는 와중에도 나를 둘러싼 환경들이 도와주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에 때때로 그것에 타협하고 좌절한다. (가장 큰 변화를 줄 수 있는 곳은 기업이고, 정부라고 생각이 강하다.)


하지만 더 이상의 "잘될 거야"라는 무한 긍정의 마인드와 "나 하나쯤이야"하는 구태연한 태도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이렇게 조금이나마 행동해보고 실천하고 다소 복잡할 수 있는 나의 생각을 글로 적어본다. 그리고 이 노력이 내 가족들의 행동에 영향을 주고, 특히나 내 딸아이가 엄마가 본인 세대를 위해 끊임없는 행동했다는 걸 알아준다면 나는 그걸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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