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화라는 이름의 합(合)

by 율리

운동을 시작한 지 한 달 반이 지났다. 친구들과 함께 그룹으로 PT를 등록하고 '도망갈 수 없는 구조'를 만든 지 한 달 반이 지난 것이다. 그동안 운동 다짐만 수십 번 했지만 번번이 무너졌다. 퇴근 후 피로, 갑작스러운 약속, 혹은 단순히 누워 있고 싶은 욕망 앞에서 '내일부터' '다음에'를 반복했던 나의 지난날들이었다. 나의 의지라는 것이 얼마나 가소로운 것인지, 또 얼마나 허약한 기반인지 참으로 긴 시간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이번은 달랐다. 약속이라는 강제성이 의지를 대신했다. 트레이너의 지시를 따르고, 친구들과의 약속을 지켜야 했다.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그 결과는 체지방 3kg 감량, 근육량 2kg 증가. 주변에서는 "대단하다"고 했다. 솔직히 별다른 노력을 한 기억이 없다. 이렇게 쉬운 건가?


하지만 찬찬히 지난 한 달을 되짚어보니 생활은 미세하게 변화하고 있었다. 아침 빵과 커피 한잔을 대신해, 직접 짠 레몬과 올리브오일을 마셨고, 무조건 삶은 계란을 먼저 먹었다. 또 의식적으로 염분은 줄였고, 간식 대신 견과류를 먹으려고 노력했다. 이런 작은 행동들이 변화하고, 또 축적되었지만 특별히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냥 했을 뿐이다. 그래서 내 몸이 변화한 것이 놀랍기만 하다.


여기서 또 깨달은 것은 내가 스스로를 과소평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늘 남들은 나에게 잘한다, 대단하다라고 말하지만 나는 지나치게 아니라고 말했다. '그냥 했는데요'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매일 작고 귀찮은 일들을 꾸준히 실행하고 있었다. 겸손의 탈을 쓴 자기비하라고 할까. 다른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나는 무심하게 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또 우리는 노력의 정의를 잘못 내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땀 흘리고 치를 떨어야만 노력이고, 쉽게 했으면 노력이 아니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것 역시 노력이다. 하지만 노력의 또 다른 이름은 자연스럽고 지속 가능한 얼굴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노력의 기쁨이라는 것들이 미칠듯한 성취감에서만 오는 것이 아닌, 무심하게 짓는 미소 안에 있는지도 모른다.


가끔 찰스 다윈이 "가장 강한 종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종이 살아남는다"한 말을 떠올린다. 나의 강점 중 하나는 변화에 잘 적응하고, 환경에 참 잘 따른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의지가 아닌 적응으로 변화했다는 생각이 든다. 약속이라는 시스템이 운동을 미룰 수 없게 만들었고, 자연스럽게 운동의 효과를 위해 무의식적 섭취를 작게 작게 의식적으로 바꿨다. 내 의지가 강해진 게 아니라 환경을 재설계했을 뿐인데, 나는 나의 강점을 잘 활용한 것이다. 의지력에 의존한다는 것은 매번 전쟁을 치르는 것과 같다. 하지만 시스템은 전쟁 자체를 불필요하게, 평화롭게 해결하게 만들어 주는 듯하다.


언젠가 거대한 목표를 세우고, 좌절하는 내 모습을 보며, 그저 매일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것이 낫겠다는 마음을 일기에 적어내려 간 적이 있다. 거창한 결심이 아닌 '아침 빵 → 레몬+오일' 같은 단순한 교체, '계란 삶기'라는 사소한 루틴,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이라는 미세한 선택. 이런 미시적 반복이 몸과 마음을 재구성하는 것이 맞다는 걸 알아가는 중이다. 변화는 드라마틱한 순간에 일어나는 게 아니라 시간이 많이 걸릴지라도 그저 그냥 하는 반복 속에서 축적됨을 알게 되었달까.


어쩌면 누구나 아는 내용들이다. 시스템이 의지보다 중요하다는 것, 작은 습관이 큰 변화를 만든다는 것, 환경이 행동을 결정한다는 것. 책에서도 읽었고, 강의에서도 들었고, 누군가의 성공담에서도 접했던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알고 있다는 것과 몸으로 체화한다는 것에는 너무나 큰 간극이 있었다. 이제야 그 차이를 조금이나마 실감하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는 어떤 목표든 의지에 의존하지 않고 시스템을 구축할 것이다. 그리고 작은 실행들에 대해 관대하게 칭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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