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치러야 할 자백의 대가

넷플릭스 <자백의 대가>를 보고

by 율리


자백(自白). 스스로 자, 흰 백. 글자 그대로 스스로를 희게 만드는 행위. 얼마 전 넥플릭스 <자백의 대가>를 아주 재미있게 보았다. 내용의 전개를 비롯해 드라마 속 영상미, 음악이 지속적인 긴장감을 만들어 주었다. 전도연님이 연기한 윤수와 김고은 님이 연기한 모은. 이 두 주인공을 비롯해, 극의 인물들이 대사를 통해, 행동을 통해 주고받는 자백은 문자처럼 결코 하얗지 않다. 오히려 그들의 자백은 진실을 덮기 위해 거짓을 덧칠한, 검게 물든 고백들로 가득했다.


남편 살해 누명을 쓴 윤수 앞에 나타난 사이코패스 모은. 모은은 거래를 제안한다. 자신이 윤수의 남편을 죽였다고 자백하겠다고. 대신 출소 후 모은이 죽이지 못한 누군가를 죽여달라고. 홀로 밖에서 남아있는 어린 딸을 위해 윤수는 그 거래를 받아들인다. 윤수가 출소한 뒤, 교도소 안에서 끊임없이 날아오는 문자, 지켜보는 시선. 모은은 집요하게 숨막히게 윤수에게 자백의 대가를 요구한다.


이들의 자백은 스스로의 고백이기 보다 목적을 위한 도구다. 윤수는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거짓 자백을 받아들이고, 진실을 위해 거짓 자백을 한다. 모은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거짓 자백을 내놓는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거짓을 고백하는 역설. 우리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순백의 자백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싶은 순간이다.


또 때로는 더 큰 진실을 지키기 위해 작은 거짓을 고백해야 할 때가 있다. 때로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신의 모습과 마주해야 할 때가 있다. 아니 많다. 하얀 벽 앞에 서는 일은 결코 유쾌하지 못하다. 오히려 두렵다. 그래서 우리는 자백을 회피하고, 변형하고, 떠넘긴다.


드라마 속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쉽게 자신의 '하얀색'을 드러내지 않는다. 영영 숨기기도 하고, 억지로 끄집어내지기도 한다. 드라마 속에서 나는 박해수님이 연기한 백동훈 검사의 자백이 인상깊었다. 자백이 필요없을 법한 확신, 회피, 의심. 그리고 누구보다 담담하게, 화려한 고백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준 수용. 어쩌면 가장 느리고 답답했지만, 화려했던 스스로의 고백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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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또 나는 크고 작은 과오 앞에서 어떤 자백을 내리고 있는지 생각한다. 인정하고 책임지는가, 아니면 합리화하고 회피하는가. 가끔은 숨기기도 하고, 더 큰 거짓으로 덮어버리기도 한다.


이는 비단 개인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 역시 끊임없이 자백을 요구받고, 또 회피한다. 기업의 사과문, 정치인의 해명, 공적 기관의 발표. 그 안에 진짜 자백이 있는지, 아니면 또 다른 거짓을 덧칠한 것인지 우리는 모른다. 또 집단은 개인보다 더 쉽게 책임을 희석시키고, 자백을 지연시킨다. '시스템의 문제', '불가피한 선택' 같은 것들로.


"우리는 모두 판사이면서 동시에 피고인이다"우리는 타인의 자백을 요구하고 판단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자백 앞에서는 피고인이 된다. 이 이중성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공정할 수 있을까. 남의 거짓 자백은 예리하게 꿰뚫으면서, 자신의 거짓 자백은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지는 않는가.


자백의 색깔은 결코 하얀색 하나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분명 순백도 있고, 회색도 있고, 검은색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 색 위에서 어떤 색을 덮고 있는가..


자백은 스스로의 고백이기도 하지만, 결국 자기 자신과의 대화라는 생각을 한다.세상에 내놓는 고백이 아니라, 거울 앞에 선 나 자신에게 하는 고백. 그 고백이 비록 완벽하게 희지 않더라도, 조금씩 더 투명해지려는 시도 자체가 있다면, 의미 있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한다. 그 대가는 내가 가장 잘 알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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