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여주기식 인생

by 율리

서스럼없이 고민을 나누는 친구가 어느 날 말했다. "우리 딸은 꼭 보여주기식으로 공부하는 것 같아."

초등학교 5학년. 친구의 눈에 아이는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는 아이로 보이고 있었다.


보여주기식 공부라..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오래된 기억이 떠올랐다. 그건 사실 내가 엄마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였다. "넌 늘 남들을 의식하고, 보여주기식으로 살아." 나의 엄마는 말이 종종 거칠었고, 따뜻한 의도와는 별개로 나를 움츠러들게 만드는 말들을 종종 하셨다. 진심이 아니라는 판정, 진짜가 아니라는 낙인. 그 말은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나도 귀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친구가 같은 말을 자기 딸에게 던졌다는 사실에 마음이 애잔해졌다.


물론 친구의 뜻도 이해한다. 보여주기식 행동은 쉽게 '겉치레'로 오해받고, 우리는 어떤 삶은 진짜고 어떤 삶은 가짜인지 잔인하게 구분하려 한다. 진실에서 우러나는 삶,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선택,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행동이 아닌 삶. 그런 이야기는 늘 아름답고,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동시에 묻고 싶다. 우리는 언제부터 진짜로만 살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진짜를 얼마나 떳떳하게 실천할 수 있을까?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연기'를 요구한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가족 안에서. 누군가의 기대와 규칙을 배우지 않고는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기 어렵다. 즉 '보여주기식'은 단순한 허영이 아니라, 사회를 배우는 방식이기도 하다라는 생각을 한다.

나는 보여주기식 행동에 숨겨진 진짜 마음을 보려한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 사랑받고 싶은 마음. 실수하고 싶지 않은 마음. 그리고 무엇보다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


다자이 오사무의《인간실격》을 떠올린다. 그는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인간답게 보이기'를 연기한다. 웃어야 할 때 웃고, 농담해야 할 때 농담하며, 들키지 않기 위해 숨는다. 그에게 보여주기식 삶은 가면이자 생존이었다. 진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진심을 꺼냈다가 무너질까 두려워서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종종 그 가면을 비겁함이라 부르지만, 어떤 사람에게 그것은 버티기 위한 마지막 장치일지도 모른다. 다자이는 결국 그 가면 뒤에서 스스로를 잃었지만, 동시에 그 가면이 없었다면 그는 애초에 하루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보여주기식 삶의 비극은 그것이 가짜여서가 아니라, 그것만으로는 끝까지 갈 수 없다는 데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시작마저 부정할 수는 없지 않을까?


결국 보여주기식이란, '남에게 보이기 위해 사는 것'이라기보다 '나를 지키기 위해 외부의 기준을 빌려오는 것'일 때가 많다. 스스로를 믿을 수 없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의 눈을 빌려 나를 본다. 그것은 나약함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전략일지 모르겠다.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그렇게 단정하지 말자고.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자신을 맞춘다는 건, 사실 약점이 아니라 기술이라고. 약속을 지키는 힘이고, 책임감의 다른 이름일 수 있다고.

아이에게 필요한 건 "넌 진심이 아니야"라는 평가가 아니라, "너는 노력하는 방법을 알고 있구나"라는 인정일지 모른다. 보여주기식으로라도 책상 앞에 앉는 아이는, 적어도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알고 있는 아이다. 그 마음을 '가짜'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나는 안다. 우리는 언젠가 보여주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전까지는, 보여주기식으로라도 나를 끌고 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진심은 태어나자마자 완성된 것이 아니라, 많은 연습과 실패, 흔들림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단단해지는 것일 테니까.


보여주기식 인생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은 가짜가 아니라, 진짜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일 수도 있으니. 어쩌면 우리는 모두, '진심이 되고 싶어서' 먼저 진심인 척을 하는 연습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장 진실한 사람은 어쩌면, 가짜인 줄 알면서도 진짜가 되려고 매일 아침 거울 앞에 서는 사람일지 모른다.

그리고 언젠가, 수없이 드려다 본 그 거울 앞에서 진짜 내 모습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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