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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 Sep 27. 2020

엄마라는 존재

엄마 나 그리고 엄마, 마야 엔젤루를 읽고

 6살 딸아이는 나물을 잘 먹는다. 시금치, 콩나물을 기본으로 취나물, 고사리, 곤드레, 가지 등 이름만 들어도 구수한 밥상을 잘도 소화해낸다.


오늘도 밥상에 올라온 산나물을 씹어먹고 있으니, 남편은 처음 보는 광경인 것처럼 또 아이에게 묻는다.


"우리 딸 어쩜 이리 나물을 잘 먹어?”

“진주 할머니가 많이 줬다니까”


 진주 할머니, 그러니까 나의 엄마는 손녀가 6개월이 되었을 때부터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한 두 돌 때까지 아이를 봐주셨다. 나는 출산 후 빠졌던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조금씩 자라던 그때. 삐죽 튀어나온 머리카락을 왁스로 눌러가며 출근을 시작했다. 엄마는 아이가 밥을 먹을 수 있기 시작할 때부터 세 끼에 갓 삶은, 참기름 향이 가득한 제철, 건나물을 만들어 먹이셨다. 할미새가 주는 먹이를 아기새는 냠냠 잘도 받아먹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어미새는 맛없어 보이는 나물을 먹여주고, 받아먹는 그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곤 했다.



 복귀를 앞둔 두 달 전부터, 나는 매일 밤마다 잠든 아이를 바라보았다. 엄마 젖만으로 세상의 무게를 늘려가는 이 아이를, 누구에게 내 책임과 사랑을 함께 해달라고 부탁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친정은 멀었고, 시댁도 여의치 않았고, 낮이면 베이비시터 면접을 보며 방법을 찾았지만, 작고 작은 아이가 잠든 모습만 바라보면 하염없이 눈물만 흘렀다. 나는 방법을 찾지 못했고, 우울함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그런 나에게 엄마가 왔다.

엄마와 내가 함께 자란 진주에서,

지금 나의 아이와 내가 함께 커가는 이 곳 서울까지.


내가 여기 있잖니, 난 내 모든 걸 가지고 왔다. 네 엄마니까



매주 일요일 오후 진주에서 서울로 4시간.

금요일 저녁 서울에서 진주로 또 4시간.

그렇게 1년 반 동안, 그 긴 거리와 시간을 모두 품고나에게 와주셨다.


늘 나는 아이가 깨기 전 출근을 했다. 엄마는 아침마다 손녀의 오후 간식을 미리 준비하셨다. 네모난 연두색 강판에 빨간 토마토를 곱게 갈아 냄비에 넣고 올리브유 몇 방울과 함께 중간 불로 끓이셨다. 토마토를 끓이면 영양분이 더 많아진다는 혼잣말과 함께.


그러고는 나에게 닿을락 말락 한 목소리로.

"내 자식한테도 이리 못해줬는데, 손녀한테 이리 정성을 다 해주네.. 그때는 사는 게 힘들어서 엄두가 안 났다.."

그렇게 나는 늘 엄마의 반성 혹은 변명 같은 혼잣말을 귀에 꽂고 매일 똑같은 길을 지나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어머니는 용기라는 이름의 크고 작은 선물들을 내게 주었다. 그중 작은 선물들은 내 의식의 틈바구니 속으로 워낙 미묘하게 스며들어 어머니의 그림자가 어디에서 끝나고 어디에서부터 나의 존재가 시작되는지 나조차 알 수 없는 정도다.


 사실 나에게 엄마는, 지금처럼 나물을 삶고, 토마토를 끓이는 자상하고 따뜻한 모습으로 기억되지만은 않았다. 어린 시절, 윽박지르고, 매를 들고, 아들만 예뻐하던 엄마의 모습이 어쩌면 따뜻했던 기억의 잔상들을 압도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나에게는 늘 미움, 원망, 서운함의 감정이 엄마와 뒤섞여 있었다.


하지만 어떤 감정이 사로잡혀 있더라도 모든 순간, 특히나 내가 빠져나오기 힘든 슬픔이 찾아오면 꼭 뒤를 돌아 엄마를 찾았다. 그때마다 엄마는 늘 거기에 서 계셨다.


1년 반 동안 엄마는 나에게 미처 해주지 못해 마음에 남았던 것들을 손녀딸에게 해주었다. 나는 그렇게 딸아이와 함께 다시 엄마에게 의지하는 아기가 되어 또 다른 기억을 쌓아갔다.


그리고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이제 엄마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서운한 감정들을 밀어내려고도, 또 즐거웠던 기억을 억지로 끌어내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저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엄마는 알게 모르게 나에게 스며들어 있었고, 어떠한 감정이든, 기억이든 굳이 의식하려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천천히 깨우쳐 갔다.  



 이제 딸아이는 6살이다. 나와 딸은 나와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어떠한 모습으로 기억될지 모르지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나 역시 내가 어찌할 수 없던 상황 속에서 늘 온화하고 따뜻한 엄마일 수만은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좋은 기억만 남겨줄 수 있으리라 확신할 수도 없는 엄마이다. 때문에 내가 어떤 엄마로 남고 싶다는 바람과 부질없는 욕심은 접어두기로 했다. 그저 나는 늘 너의 뒤에 서 있고, 언제든 달려갈 수 있다는 것을 애써 의식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존재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나의 엄마가 나에게 그러한 것 처럼.


어머니는 기둥처럼 나를 지탱하고 있었다. 그것이 어머니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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