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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 Oct 11. 2020

오늘부터, 정치적인 인간

 얼마 전 BTS는 BLM(Black Lives Matter)로 불리는 흑인 인권 캠페인에 대해 지지하고, 100만 달러를 기부했다. 이어 전 세계의 팬들도 기부를 이어나가고 있다. 이들이 전파하는 선한 영향력에 ARMY의 일원임이 또 한 번 자랑스러운 요즘이다. 그리고 지지의사와 함께 덧붙인 인터뷰를 보고 팬으로서의 긍지를 넘어, 한 인간으로서 나는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영감을 깊게 받았다.  

트위터 캡처
 "우리가 정치인은 아니지만, 모든 것은 결국 정치적이다. 조약돌이라도 정치적일 수 있다. 우리 목표는 모두가 안전한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그런 생각이 인종차별 캠페인과 유니세프 캠페인이나 다른 행동의 동기가 되고 있다"

방탄소년단 RM 인터뷰 중


그래, 모든 것은 결국 정치적이다.

 정치. 나는 한 번도 정치라는 말을 눈여겨보지 않았고, 생각하려 들지 않았다. 나에게 정치란, 가족끼리는 피해야 할 대화의 소재이고, 회사에서의 정치는 뒤에서 욕먹기 딱 좋은 행동이고, TV에서는 자동으로 인상이 찌푸려지게 만드는 채널 중 하나다. 때문에 나의 행동을 '정치'로 엮어 이야기할 때면 기분도 좋지 않을뿐더러, 괜한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아 애써 부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BTS는 ‘정치적인 행동이지 않느냐’라는 질문에 모두가 거부하고 싶어 하는 것을 부정하는 대신,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었다.

정치 政治 : 나라를 다스리는 일.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으로,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을 한다. <표준국어대사전>

 

 정치의 뜻을 들여다보면, 그간의 우리가 갇혀 있던 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한번 끝까지 살펴보면, 정치라는 말이 왜 모든 것이 될 수 있는지, 작은 조약돌마저도 그렇게 보일 수 있는지 다시금 사유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국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고, 사회질서를 바로잡는 역할.

 물론 정치를 업으로, 노동의 대가를 받는 소위 '정치인'들은 책임을 다 해야 할 일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투표했고, 대표로 선출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한 나라, 도, 시, 군 그리고 작게는 학교, 가정 등 우리는 셀 수 없이 많은 공동체가 있다. 그리고 대표자들의 수는 제한적이고 그들이 보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안타깝게 그들 중에서는 진짜 정치의 뜻을 모르는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때문에, 나는 그리고 우리는 '정치'를 외면하지만 말고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정치적 인간이 되기 위해서 해야 할 일.  

 우연히,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칼럼을 통해 저자를 알게 되었고, 칼럼이 실린 책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사실 책 제목은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이 아니다. 뭔가 덧없어 보이고, 삶의 희망을 노래하기엔 우울한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첫인상으로 외면하기에는 '왜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을까'라는 의문이 불현듯 들었다.

 책에는 크고 작은 이야기들이 있다. 저자는 추석, 설거지, 결혼 그리고 광복, 근대화, 투표, 또 그리고 영화. 우리가 똑같이 영위하고 있는 삶에서 참 많은 사유를 하고 의미를 찾는다. 근데 그게 참, 신기하게도 지금의 내 눈에는 새롭게 정의하고 싶은 '정치적'인 이야기로 읽혔고, (만약 다른 의문을 가졌다면 또 다르게 읽혔을 것이다) 과연 그 정치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한 방향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이러한 시절에 아침을 열 때는 공동체와 나의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첫째, 이미 죽어 있다면 제때 문상을 할 수 있다. 둘째, 죽음이 오는 중이라면, 죽음과 대면하여 놀라지 않을 수 있다. 셋째, 죽음이 아직 오지 않은다면, 남은 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보다 성심껏 선택할 수 있다. 넷째, 정치인들이 말하는 가짜 희망에 농락당하지 않을 수 있다. 다섯째, 공포와 허무를 떨치기 위해 사람들이 과장된 행동에 나설 때, 상대적으로 침착할 수 있다. 그렇게 얻은 침착함을 가지고 혹시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자신의 생과 이 공동체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보는 거다. 화전민이나 프리라이더가 아니라 조용히 느리게, 그러나 책임 있는 정치 주체로 살아보고야 말겠다는 열정을 가져보는 거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열정이란 그 자체로 지나치게 큰 야망처럼 보인다.  
<김영민,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중에서

 

 정치라는 것은 꽤나 무섭다. 우리나라의 정치인들도 모두 나름의 명분을 가지고 있고, 정의에 대해 잘 알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인간은 이성과, 지식을 가진 동시에 욕망, 감정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절대적으로 늘 모두를 위한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기 힘든 존재이다. 그리고 요즘을 살고 있는 우리는 더더욱 그게 어렵다. 미디어, SNS 등에서 서로의 감정을 활용하려는 환경이고, 오랫동안 익숙해져 버린 자본주의, 개인주의가 더해져 있으니 말이다. 이 글을 쓰는 나 역시도 이기적이고, 이중적이고, 지극히 인간적인 평범한 사람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일기를 쓴다. 밤에 쓸 때도 종종 있지만 밤이 되어 하루를 돌아보면 부쩍 우울하고, 센티한 느낌이 강해져 되도록 피하려고 한다. 그 대신 아침에 일어나 명상을 빌미로, 일기를 써 내려간다. 그러다 보면 어제의 나도, 그리고 오늘의 나도 모두 껴안을 수 있는 공간이 생기는 기분이다.


 이제 일기를 쓰는 아침에, 나는 꼭 나와 우리 가족, 그리고 더 나아가 공동체의 죽음을 생각해보기로 한다. 밤이라면 눈물을 펑펑 쏟을 것 같지만, 나에게 아침은 넉넉한 시간이니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다 보면 작은 것들에 감사할 수 있고, 또 떠들썩한 소리에도 일희일비하지 않을 수 있으리라. 또 생각은 깊을수록 진화하는 것. 나의 가수의 말을 시작으로 시작된 생각의 끝은, ‘진짜’ 정치적인 행동이 되길 바라본다.

 

 

 주말 아침,  핫도그가 먹고 싶다는 아이의 주문으로 핫도그를 가운데 두고 세 식구가 둘러앉았다. 불현듯 남편에게 '우리가 내일 죽는다고 생각하면.. 어때?'라고 무심한 듯 던져 본다. 남편은 예상대로 무슨 심각한 일이 있냐, 뭐 잘못 먹었냐, 아침부터 무슨 소리냐 반응한다. 딸아이는 '엄마? 100살 넘으면 죽는 거 아니야? 왜 내일 죽어?' 해맑게 묻는다.

 

 당장 내일 죽는다 해도 웃음이 나온다. 지금이 소중하고 행복하다. 그리고 나의 가족들이, 모든 아이들이, 사람들이 나처럼 행복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이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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