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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 Dec 13. 2020

글이 써지지 않는다


 밤 9시가 되면 딸아이가 골라온 책들을 읽는다. 30분 정도가 지나면 양치를 마치고 잠자리에 든다. 오늘 서로에게 고마웠던 일들을 하나씩 말하고, 늘 너는 소중한 존재라는 주문을 외우며 딸아이가 잠들 때까지 옆을 지킨다. 의무적으로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가장 편한 10여분 간의 시간이 시작된다.(아이는 10분 정도면 곯아떨어진다)


전기난로의 미세한 삐걱거리는 회전 소리 외에는 필사적으로 조용하다. 그 고요한 어둠 속 짧은 시간 동안 오늘 나는 어떤 글을 써볼 것인지 생각한다.


삶은 곧 글이 된다고 한다. 타인의 글을 들여다보면 감히 나였으면 경험하지 못했을 크고 작은, 고통스럽거나 슬프거나 혹은 기쁘거나 환희를 느낄 일들이 많다. 감히 경험만으로도 글이 되는 인생은 범접할 엄두도 용기도 사실 없다. 그렇기에 그들처럼 되지 못함을 한탄한 적은 없다


사실 진짜 내가 그렇지 못해 부러운 이들은 평범히 쌓여가는 경험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하루를 허투루 보내지지 않고 똑같은 일상은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의미 없는 시간은 없다는 걸 글로 승화하는 사람들 말이다.


 일주일에 한 번은 의도적으로 글을 써보려 하는데 잘 되지 않는다. 크게 지장 없는 돈을 매겨 채찍질해보기도 하는데 그마저도 쌓여가는 벌금이 부끄럽지만 어려운 게 사실이다.


특히나 삶이 곧 글이라고 믿는 요즘의 나는, 삶이 너무 단조로워서 글감이 나오지 않는다고 불평을 털어놓는다. 예전의 기억들을 끄집어 올려 글을 써보려 해보기도 했다. 근데 글이라는 게 참 정직하다. 그때의 기억은 갑자기 왜 떠올리냐며 핀잔을 늘어놓는다. 그러다 보면 또 속절없이 시간은 가고, 노트북은 가차 없이 덮인다.


근데 글이라는 게 또 참 솔직하다. 똑같이 반복되는 그제도, 어제도 같은 밤 9시 30분의 어둠 속에서 한동안 꿈쩍도 손가락만이 바삐 움직여지고 있다. 늘 너무 작아서 답답하다고 여겼던 휴대폰의 화면에서 술술 글이 써진다.


똑같은 옷에 같은 침묵, 까만 어둠 속이지만 어제의 까끌거렸던 결과 지금의 결이 참 다르다. 글이 써지지 않아 불만이었던 그 생각들이 글이 되는 참 신기하고도 의미 있는, 매끄러워서 부드럽기 까지한 하루의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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