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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 Jan 03. 2021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들

#정인아미안해 #우리가바꿀게

 1월 2일 토요일 밤, 잠든 아이 옆에서 흐느껴 울었다. 그날 아마 나뿐만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 정인이의 이야기. 뉴스를 통해서만 보아왔던 사실을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본 날이다. 보는 내내 피가 거꾸로 솟는다는, 가슴이 미어진다는 기분을 느꼈다. 친구들과의 단톡방도 난리다. 분노를 담은 욕에서부터, 미안한 마음까지 그렇게 우리는 새벽 2시가 넘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렇게 다음 날이 되어서도 일찍 잠든 남편에게 어제의 이야기를 전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7살 딸도, 왜 동생이 하늘나라로 간 거야? 나쁜 어른들은 잡아가는 거 아니야? 연신 질문을 던진다. 문득 딸아이를 안고, 우리 정인이를 위해 기도하자고 말했다.


평소 감정이 쉽게 요동치는 나는, 어제 정인이의 모든 모습들이 계속 눈에 밟힌다. 어느 순간 몰라보게 수척해진 아이를 떠올리니 계속 분노가 치민다. 이 요동치는 생각에 압도되어 머리가 아파지는 지금,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아기 천사를 통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들을 또 감정적으로 흘려버리지 않게 말이다.


아이는 약자다.

잊지 말아야 하는 사실 하나. 아이들은 약한 존재다. 어떤 악한 모습을 행하든 간에 어른들이 보호해줘야 하고 지켜줘야 한다. 특히나 아직 자신의 의사를 온전히 전하지 못하거나, 힘으로 어른들을 이기지 못하는 작디작은 존재들에 대해서는 누구도 반박할 수 없을 것이다.


언제였던가. 주택 총조사 기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동네 통장이라는 어떤 할머니와 우리 아파트에 사시는 할머니가 초인종을 울렸다. 때마침 남편은 없었고, 딸아이는 투정을 부리며 울고 있었다. 그 와중에 정신없이 문을 열어 방문 목적을 설명받고, 확인 후 사인을 했다. 아이에게 울지 말라고 타이르는 순간, 통장이라는 분이 대뜸 딸에게 "왜 그래? 엄마가 때렸니? 할머니한테는 말해도 돼"라고 말했다. 순간 기분이 나빴다. 전후사정도 모르면서 갑자기 저렇게? 다행히 평소 우리를 잘 아는 이웃 할머니가 "어머, 이 집은 그렇지 않아! 내가 잘 알아!" 라며 손사래를 치시며 상황은 마무리되었다.


순간  저 할머니가 나를 아동학대로 의심했다는 것에 기분이 나빴다. 그렇게 문이 닫히고, 이제 나와 아이만 있는 지금, 정말 내가 아이를 학대하는 사람이었다면 이 닫힌 공간에서 아이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제압할 수 없는 어른과 한 공간에 있을 아이는 얼마나 큰 공포를 느낄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부모라 하더라도 말이다. 그렇게 그 할머니의 도를 넘은 관심과 의심이 결코 과하지 않음을 알았다. 그게 누구든 간에 어떤 상황이든 간에, 약자의 시선으로 모든 것을 바라봐야 한다.

 

어른들은 불완전하다.

두 번째 사실이다. 어른들은 완벽하지 못하다. 정인이 사건을 비롯해 우리는 크고 작은 아동학대 사건을 접해왔다. 심지어 모든 가해자는 완전한 사랑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던 부모이다.


모든 아이들이 잠들었을 것 같은 밤이 깊어지면, 카톡이 울린다. 아이를 키우는 친구들의 하소연이 시작된다. 오늘도 아이에게 소리를 질렀다. 화를 냈다. 너무 후회가 된다. 잠든 아이를 보니 눈물이 난다. 나는 0점 엄마다.. 그렇게 우리는 매일 불완전한 우리의 존재에 대해 반성하고 위로한다.


요즘 <금쪽같은 내 새끼>만 봐도 우리 어른들을 알 수 있다. 우리 역시, 저마다의 상처를 가지고 있고, 순간 욱하기도 하고 울고 싶어 하는 어른임을 말이다. 그걸 알기에 어른들은 스스로를 돌아보고 아이들을 위해 반성하고 노력한다.


어른이라는 말은 뭐든 할 수 있는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적어도 아이를 키움에 있어서 말이다. 계속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계속 배워야 하는 사람일 뿐이다.


그럼에도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세 번째를 적으며, 삶의 희망을 노래함이 문득 부끄럽고, 이미 지켜주지 못한 아이들에게 미안하기만 하다. 


#정인아미안해 #우리가바꿀게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미안함과 함께 계속되어야 하는 삶을 바꿔야 한다는 것도 말이다. 이렇게 미안함과 그 결심의 말이 공존하기에, 문득 희망을 가지자함이 어둡게만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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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정인이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마지막 힘없는 발걸음을 보니 가슴이 메어진다. 하지만 그 작은 아이는 우리에게 진짜 잊지 말아야 큰 것들 함께 알려주었다.

한없이 부족한 어른은 약하디 약한 그 아이를 통해 뒤늦게 깨우친다.


헛되지 않도록, 헛되지 않도록, 우리가 해야 할 것들은 뭐가 있을지. 계속 궁금해하고 공유하고, 행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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