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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 Jan 28. 2021

달콤한 우리의 꿈은 눈처럼 하얗다

베로니크 드 뷔르의 <체리토마토파이>를 읽고, 쓰다

사계절.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찰나들을 모아,

눈에 띄는 공기, 색의 흐름들을 보기 좋게 묶어,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이름을 붙여,

우리만의 경계선을 만들었다.


이렇게 놓고 보니

1년이라는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가는 것 같다.


하긴

하루가 다르게 발견되는 기술,

들려오는 일련의 사건들을 보고 있으면

1년이 뭐야, 하루가 그렇게 짧을 수가 없다.


사실 우리의 시간은 짧지도, 길지도 않다.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고

똑같은 일상도, 바삐 지나온 그 시간도

어느 하나 같은 것이 없다.


매년 돌아오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이름 안에서

그 어떤 순간도 어느 하나 같은 것이 없다.


-

90살이라는 나이가 되면,

이렇게 깊은 사유를 통해서만 알 수 있는 사실들을

잊지 않으면서

계절을 만끽하고,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수많은 고독이 가지는 각각의 의미를

구분할 수 있을까?


 

<체리토마토파이>

주인공 잔.

그녀의 90살 사계절의 소소한 기록이 담긴 책.

"나는 놀고 싶은 마음이 났다. 눈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어린 시절이다"


4개의 각기 다른 시간 속에서

죽음에 대한 초연함, 무뎌지는 감정, 쓰임 없는 말에 대해 담담하게 써 내려간 잔할머니의 이야기를 읽어내려가다보니,


한 겨울, 아이처럼 눈을 모으던 할머니의 손이 떠오른다.


Ejjel dal lal alszunk  
오늘 밤 이 노래와 함께 잠이 들어
edes almunk hofeher  
달콤한 우리의 꿈은 눈처럼 하얗다


달콤한 나의 꿈은, 눈처럼 하얀데

언제 그랬느냐는 듯 눈이 녹아버리고 나면,

그 사실도 눈 녹듯이 망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번 겨울,

책에서 만난 잔 할머니가 밟아내려가던 겨울소리에  

달콤하고, 순수한 나의 꿈은

더 이상 녹지 않고 잔잔히 남아있다.





#  

근사한 서평은 틀렸지만,

책을 읽고 떠오르는 말들을 끄적여봅니다.

오랜만에 유쾌하고, 심오하고,

모두에게 공감을 주는 앤틱한 프랑스 소설.

베로니크 드 뷔르의 <체리토마토파이>


#

책을 다 읽고, 박효신의 <겨울소리>를 들으니

잔 할머니가 보였습니다.


"얼룩 하나 남지 않는 별이 가득히 내린 길을

나 혼자 이렇게 걷고 있어

다시 태어난 겨울소리 따라 부르는 깊은 밤

나의 노래가어디선가 잠든 너를 안아주길

sleep in white.

Ejjel dal lal alszunk 오늘 밤 이 노래와 함께 잠이 들어 edes almunk hofeher 달콤한 우리의 꿈은 눈처럼 하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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