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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 Dec 06. 2020

출산의 기억

얼마 전 친한 후배가 전화로 임신 소식을 전했다. 워낙 대학 때부터 가깝게 지내왔던 터라 나의 임신, 출산과정을 다 지켜봐 왔던 사이다.

"언니, 저 5년 전에 언니 보면서, 임신하면 꼭 자연주의 출산하고 싶었는데! 어땠어요? 다시 이야기 좀 해줘요"

상기된 목소리의 후배와 그렇게 한참을 통화를 이어 갔다. 



2014년 5월부터 산전검사를 시작으로 임신을 계획했다. 그때 친한 언니가 출산은 어떻게 할 건지에 대해 물었다. 그래, 임신과 출산은 결실이고, 맺음이기에 그것도 함께 준비해야 하는구나 생각했다. 그때부터 출산의 방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선택에 따라 병원을 결정한다. 그리고 그 방법을 위해서는 남편은 물론, 부모님과의 의논도 어느 정도 필요했다.


가장 보편적인 출산의 방법은 자연분만이다. 산부인과 의사의 리드 하에, 상황에 따라 무통, 유도제 등을 통해 아이를 낳는다. 그리고 간혹 태어난 일시를 맞추기 위해 날짜와 시간까지 지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자연분만이 여의치 않은 경우에 제왕절개를 진행한다.


자연주의 출산.

그 말 자체가 생소했다. 몇몇 연예인들과 관련된 책, 글들을 쉽지 않게 접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자연주의 출산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는 몰입했고, 어느새 다가올 미래의 모습을 그곳에 이입했다. 아직도 그 다큐멘터리에서 생생하게 기억나는 장면들이 꽤나 있다.


고통을 울부짖는 산모 옆에는 간호사가 있고, 의사가 있다. 때문에 이 고통을 덜어줄 것이고, 해결해줄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내가 본 장면은 달랐다. 산모 옆에는 "후후... 숨 쉬어.. 괜찮아"라고 연신 말하는 남편이 있었다. 그리고 의사는 그들의 시야에서는 볼 수 없는 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더 놀라운 장면은,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린 그때에 함께 울려 퍼지는 산모의 웃음소리였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저 다큐멘터리에서의 기억만 더듬어 본다면) 산고의 고통을 오롯이 느끼는 산모는 아이가 세상으로 나오는 순간, 엄청난 아드레날린이 뿜어져 나온다고 한다. 이 고통이 끝났다는 것을, 이렇게 대단한 것을 당신이 해냈다는 걸 몸도 안다는 증거이다.



 2014년 9월 어느 날, 5통이 넘는 임신테스트기의 두 줄로 임신임을 확인했다. 그리고 나는 자연주의 출산 전문병원의 진료를 시작으로 그렇게 자연주의 출산을 준비했다. 주변에서의 반대가 정말 많았다. 워낙 내 고집을 아는 남편은 처음부터 나의 뜻대로 할 수 있게 편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시어머니를 비롯해, 친정엄마 조차도 큰일이라도 나면 어쩌냐고 반대하셨다. 특히 나의 베프의 반대가 꽤나 강렬했다. 친구의 남편은 의사다. 부부는 나에게 의료 발달에 따른 안전성의 특권을 왜 반하냐고 말렸다.

"몰라, 그냥 이건 자연스럽게 하고 싶어. 그냥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거잖아."

순간 자연인과 문명인 부부의 어색한 정적이 흘렀던, 그때의 우리가 기억난다.


사실 출산의 찰나에는 의료의 도움 없이 진행되지만, 그 준비과정 속에서 철저한 의료 문명의 혜택을 받는다. 대학병원에서 진행되는 철저한 사전검사를 통해 어느 하나라도 이상이 있으면 자연주의 출산은 거부된다. 때문에 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되, 어쩔 수 없다면 받아들이자는 마음을 수 없이 대뇌였다.



 그렇게 크고 작은 노력에 함께했던 기도가 이뤄졌다. 나는 8시간이 넘는 고통을 넘어, 아이의 울음소리보다 더 큰 나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그렇게 나는 아이를 낳았다. 병원이 아닌 조산원에서, 의사 없이, 무통주사 없이.

모든 출산의 순간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은 위대한 영역이다. 가끔 우주에서 보면 모든 게 하찮은 먼지일 뿐이라 말하는 이들에게, 그게 아닐 수 있다고 반박해보고 싶은 몇 안 되는 근거다.

때문에 수많은 위대한 엄마들 사이에서 누군가 묻지 않는 이상, 출산의 이야기를 굳이 꺼내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출산 후 5년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적어도 나에게만은 수 없이 그때의 나를 꺼내어 자랑한다. 



 '그냥 자연스럽게 해. 순리대로 낳는 거야'라고 설득하던 친정엄마에게 자연스러운 게 뭔데?라고 출산의 프레임을 되묻던 나.

안되면, 어쩔 수 없지, 하고 9개월 내내 담대하고, 대담했던 나.

피멍 든 얼굴로 울부짖는 나를 보며, 지금이라도 포기해도 된다던 남편을 향해 "당떨어지니까 얼른 초콜릿이라도 줘..' 결정적인 순간에도 유쾌했던 나.

태어난 아기를 보며, 우리는 엄청난 걸 해냈으니 뭐든 잘 해낼 거야라며 당당하게 조리원을 나섰던 나.


후배와의 통화를 끝으로, 잠깐 잊고 살았던 그때의 나를 꺼내어 본다. 그리고 요즘 버릇처럼 작아지려고 하는 나에게 이 글을 쓰며 한번 더 대뇌여 본다. 


너 꽤나 괜찮은 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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