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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 May 13. 2021

곧 인수될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feat. 쓸데없는 싱숭생숭한 마음)



나는 인수될 회사에 다니고 있다. 회사의 일원이지만, 무지하게도 인수가 되는 과정을 정확하거나 알거나, 세련된 용어는 잘 알지 못한다. 그저 몇 조의 몸값이라는 웅장하면서도 거친 듯한 말들이 오가고 있고, 예비입찰을 거쳐 본 입찰이 진행 중이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다.


이 회사와는 2010년 4월 공채 신입으로 인연을 시작했다. 11년 넘게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동안 값진 인연을 많이 맺었고, 크고 작은 다양한 경험을 하며 나의 ‘커리어’ ‘인맥’이라 불리는 것들을 차곡차곡 쌓아왔다. 긴 시간을 함께 한 나름 의미 있고 소중하고 고마운 회사다.


사실 내가 몸담은 브랜드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때문에 인수가 된다고 적어도 나에게는 크게 달라지는 건 없을 것이다.

다만 “OOO의 누구입니다”

OOO. 나는 그 이름을 보고, 이 곳의 일원이 되기 위해, 오롯이 제 발로 걸어 들어왔다. 하지만 이제 그 이름은 내 의지는 요만큼도 담아주지 않고 바뀌어질 것이다.


복잡 미묘한 이 상황.

지금 나는 인수가 될 준비 중인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인수가 결정된 건 올해 1분기였다. 소문으로만 무성했던 이야기들이 공식화되는 순간. 기분이 이상했다.

어느 하나 결정된 것은 없고 어쩌면 더 좋은 길이 열릴지도, 혹은 아닐지도 모르는 한 치 앞도 모르는 상황.

많은 사람들이 말하길, 12년 차 직원에게는 그다지 큰 사건으로 다가오지 않을 테니 동요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래, 그렇겠지.

근데 그게 또 머리는 알지만,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걱정, 오지랖 세포들 덕분에 그렇게 간단하게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때부터 회사 사람들이 만나면, 인수에 대한 뜬구름 같은, 어쩔 때는 진짜 사실 같은 소문들의 이야기가 우르르 풀려 나왔다. 우리의 새로운 이름이, 소속이 될 회사에 대한 소문들이 쏟아졌다. 아마 각자가 원하는 회사가 있었을 테니, 조금이라도 소문의 실마리가 보이면 희망을 품고 이야기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는 언론 기사들이 서글프면서도 설레는 것 같기도 한 복잡 미묘한 우리의 메신저 대화창을 자극했다.


심지어, 한 친구는 너무 궁금해서 못 참을 거 같으니 사주를 보겠단다. 그래서 뭘 물어볼 거냐고 했더니 회사 인수가 어떻게 될지를 물어보겠다고 한다.

"아니 무슨, 회사가 생년월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주에서 그게 어떻게 나오냐..."

"왜 내가 이동수가 있거나, 내 올해, 내년 사주가 나오면 얼추 분위기가 비슷해 보이는 회사가 우리를 인수하지 않을까?"

얼토당토 안 되는 거 같은데, 또 묘하게 설득되기도 하는 말에 두 팔랑귀는 겸사겸사 사주를 봤다. 신점도 아니고, 당연히 감도 잡히지 않을 애매한 사주의 결과가 나왔다. 뻔하게도 말이다. '그래 재미로 본 거니까...' 애써 밀려오는 부질없음을 귀여운 부끄러움으로 포장해본다.


지금 우리는 예비입찰을 지나, 본 입찰을 향해 가고 있다.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건지, 알지 못한다. 회사의 일원이면서도 우리의 의지는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니 알려줄 필요도 없겠거니와, 안다고 달라지는 게 없겠지만 궁금하기도 하다.


이런 우리의 마음은 고려하지 않고, 회사는 계속 움직이고 성과를 요구한다.  뒤숭숭한 마음은 마음이고, 일은 일이니 당연하지 싶다.



그러는 와중에 이런 저런 사정, 이직으로 퇴사하는 동료들의 소식이 속속 들린다. 평소에도 없던 일들은 아니지만, 시기가 시기이니 만큼 이 동요되는 마음은 어찌할 길이 없다.



인수를 앞둔 상황에서 이직은 괜찮은 선택일까? 지금 옮겨야 하는 것일까? 그래도 아직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남아 있는 게 낫지 않을까?


그동안 감사했다는 동료의 퇴사 메일을 을 눈으로 읽고 있지만, 마음에는 허공을 떠도는 물음표가 가득이다.




-

지금도 내가 이 글을 왜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냥 그렇다는 거다. 이 상황에는 답이 없다. 저 물음표에는 답이 없다. 허공을 떠다니다 날아갈, 의미 없는 질문들일 것이다. 


다만 내 의지로 어쩔 수 없는 그 이름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나의 세상에, 우주에 미세한 부분이고 과정일 뿐임을 잊지 않길, 내 자신에게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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