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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 Aug 22. 2021

남편에게 브런치의 존재를 알리지 못하는 이유

주말 내내 짜증이 난다. 남편은 언제부턴가 취미가 들린 낚시를 1박 2일로 갔다. 어젯밤 환하게 열고 잔 창문과 얇은 이불, 무심코 켜놨던 선풍기로 딸과 나는 아침부터 코맹맹이가 되었다. 주말 오전에 가던 리듬체조 학원도 취소하고 토요일 내내 집에 있다.


오후가 되어 남편이 돌아온다. 만선의 꿈을 안고 떠난 그의 얼굴에 뿌듯함이 가득하다. 아이스박스 한가득 담아 온 갈치(한 50마리가 넘은 것 같다..)를 뿌듯하게 내민다.


"엄청 많이 잡았지? 내가 빨리 다듬어서 먹자!"


타이밍이 별로다. 폴폴 비린내가 신경을 자극한다. 좁은 주방에 온갖 도구들을 올려놓고 손질을 시작한다. 입맛이 없다는 딸아이를 달래 가며 눌은밥을 끓이는데 고소한 냄새도 비린내를 어쩌지는 못한다. 설상가상 딸아이는 열이 나기 시작한다. 1년 넘게 먹지 않은 해열제는 유통기한이 다 되었다.

남편의 관심은 오로지 갈치에 향해 있다.


"좀 있으면 괜찮아질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끓어오르는 화를 참으며 약국으로 향한다. 약국으로 가는 내내 정말 많이도 책에서 읽어 온  '화를 참는 법'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등을 되뇌며 걸어간다. 현관문을 여니, 비린내가 진동을 한다.


"왔어? 이거 누나네 갔다 줄래?

이건 옆 집도 좀 주고!"


만선의 소식을 여기저기 알리고 싶은가 보다. 딸아이는 축 쳐져 앉아 있다. 이 모습을 보니 책이고 뭐고 다 필요 없어졌다. 나는 그렇게 주말 저녁, 또 화를 냈다.

자주 가는 낚시도 아니고, 손꼽아 기다려온 날이니 만큼 함께 기뻐해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상황이 그랬다고 핑계를 대 보지만, 칭찬받고 싶었던 남편에게 성질만 낸, 사실은 그의 입장에서 억울하고 서글펐던 날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라는 누군가의 말을 아마 수천번은 더 읽어야 할 것 같다.  



-

책을 읽고, 따라 쓰고, 글을 쓰는 모습을 보며 남편은 말한다.

"책에 나와 있는 것처럼, 짜증 내지 말고 나한테도 좀 잘해줘! 딸내미한테도 좀 성질 좀 내지 말고"


그렇게 좋은 말들과, 스스로의 성찰을 위해 참 많이도 노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만큼은 그게 참 어렵다.


하반기가 다가오면서 일은 점점 많아진다. 재택을 시작하면서 육아와 직장의 경계에서 허우적 댄다. 남편도 재택을 하면서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주말엔 외출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럴수록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에 대한 욕심은 버릴 수 없다. 한계로 지정해 놓은 경계선은 늘 위태롭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내가 가식적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요즘 '에너지가 없어'라고 위로해보지만, 생각해보면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책에서 배우고, 글로 담아보는 만큼 마음이 너그럽지 못함을 느낀다.


 언젠가 남편이 나에게 그렇게 쓰는 글들을 궁금해한 적이 있다. 브런치에 적어 내려가고 있는 글을 선뜻 보여주기가 망설여진다. 푹푹. 힘들다고 집에서는 한숨 쉬고 있는데, 마치 세상을 알아가는 것처럼, 또 꽤나 괜찮은 사람인 양 가식을 떨고 있는 건 아닌지. 나의 진짜 독자에게 떳떳하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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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기 힘든 갈치회를 썰어주고, 제법 통통한 갈치를 구웠다. 아까 그렇게 나는 불같이 화를 냈지만, 남편은 회와 술을 먹어보라며 웃어 보인다. 아직 집 안을 가득 채운 이 비린내가 짜증 난다. 근데 갈치는 맛있다. 갈치 잡느라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가 갑자기 어색하고 미안해진다.


이 글을 보여주며, 화내서 미안하다고 말할까?

망설여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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