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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 Aug 10. 2021

머리는 알고, 마음은 몰라도 된다

마음과 머리, 머리와 마음

마음은 아래에 있고, 머리는 그 위에 있다. 서로가 서 있는 곳은 다르지만,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잘 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머리는 마음에게 말을 걸고, 마음은 혈관을 타고 붉은 피로 대답한다.


20대, 마음이 특히나 요동치던 시절. 심하게 다투는 날이 많았다.

특히나 머리는 정확히 기억하지만, 마음은 모른척하는 순간이 있다.


이별.

그때 머리는 마음이 이렇게 내 말을 안 듣는 아이였나 학을 뗐다.

펼쳐지는 일련의 상황들이 이별의 징후임을 머리는 애초에 알았다. 심지어 주변 사람들까지도 몇 번이고 조언하고 이상하다고 말했는데, 끝까지 마음은 인정하지 않았다.

어쩌면 마음도 알았는지 모르겠다.

뜨거웠던 혈관의 온도는 매일 밤 눈물로 넘쳐흘렀다.


머리는 알겠는데, 마음은 몰랐다. 아니 알고 싶지 않아 보였다.

머리는 말을 걸지 않았다. 마음은 들으려 하지 않았고 저만치 앞으로 가버렸다.


결국 그들을 다시 화해하게 만든 건 시간이었다.

들끓던 마음도, 시간이 지나니 식어갔다. 서서히 머리가 했던 말들이 들렸다.


이제야 대화가 통하는 마음을 붙잡고, 머리가 핀잔을 준다.

"내가 그럴 거라고 했지?"

"네가 뭘 안다고 그래?"

"아직 정신 못 차린 거야?"

"아 알겠어 알겠다고!!"

투닥투닥

언젠가 또 이럴 걸 알면서도 다시 둘은 재잘재잘 예전처럼 대화를 이어나간다.



*

마음과 머리, 머리와 마음

여운이 강했던 순간들을 지나고, 둘은 여전히 싸우고 있다. 그때만큼 기복이 심하게 싸우지는 않지만

투 닥투닥의 횟수가 점점 더 늘어났다.


잠든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내일은 화내지 말자고 함께 결심했는데,

그새를 못 참고 마음은 폭발했다.

남편과 손 잡고, 앞으로 잘해보자 다짐했는데,

부글부글 커튼 뒤에 발견된 맥주캔을 보니 또 마음이 들끓었다.

확 그냥 퇴사해버릴까 마음은 저만치 달려가 본다.

머리는 그런 마음을 붙잡아 대화를 시도한다.



씩씩 거리는 마음은,

머리가 하는 잔소리가 싫지만은 않다.

누구보다 머리의 똑똑함을 알기에.

차가운 머리는

늘 저렇게 날뛰는 마음이 감당이 안될 때도 있지만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저만치 걸어간 마음을 데려오면서 느낄 수 없는 머리에겐 없는 온기가 참 좋기 때문이다.



서로는 그렇게 하나라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머리가 정확히 아는 게 있다.

언젠가 마음이 하는 소리가 심상치 않을 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는 걸. 그래야 평화가 찾아온다는 걸 말이다.


오늘도 둘은 시끌시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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