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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 Jul 18. 2021

재택근무 출근룩

오늘 아침은 뭐 입지?

  재택근무 8개월 차. 금방 끝날 줄 알았던 긴 시간을 생각보다 길게 누리고 있다. 회사의 결정에 대해 모두가 부럽다고 말한다. 부러워할만하다. 매일 아침, 저녁 지하철에 몸을 싣지 않아도 되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지경이다. 물론 단점도 있다. 하지만 오늘은 재택근무의 장단점을 이야기하기 위해 글을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재택이든, 사무실이든 출근룩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적어보려 한다


  재택근무와 출근룩. 어딘가 어색한 조합의 두 단어. 보통 재택근무자의 출근은 컴퓨터를 켜는 것으로 시작한다. 메신저의 파란불이 켜지면서 암묵적인 출근 인사가 오간다. 보통 아침 8시부터 출근이 시작되는데 10시 이전까지는 미팅이 거의 없다. 누군가를 만나고 이야기하는 건 손가락이 대신해줄 수 있기에, 지금 내 몰골이 어떤지, 무슨 옷을 입었는지는 상관없다. 그러다 보면 어젯밤 입고 잠들었던 세상 편한 옷이 자연스레 ‘출근룩’이 된다.

 출근이라는 꽤나 진지한 사회생활이 시작되었는데, 옷을 보아하니 이불속 세상처럼 편해 보인다.

‘뭐 어때, 누가 본다고’

이 자발적인 선택이 주는 모순이 언제부터인가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10년 넘게 사무실로 출근하는 동안, 다양한 옷을 입었다. 어제 입은 옷은 절대 다음 날 입지 않았다. 레이어드를 위해 같은 옷을 입을지언정, 누가 봐도 어제와는 다른 옷이구나 싶을 수 있게 적절히 배치한다. 딱히 옷을 잘 입는다라는 말을 듣기 위했던 것은 아니지만, T.P.O에 맞게 옷을 차려입는 커리어우먼이고 싶었다. 무엇보다 하루에도 수십 명 넘게 마주치는 나를 아는 사람들이 뻗친 머리, 후줄근한 티셔츠, 무릎이 해진 바지로 나를 기억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때의 나는 매일 밤 잠들기 전에 생각했다. ‘내일은 뭐 입지? 옆 팀 아무개의 드레스가 예뻤는데, 내일은 나도 드레스를 입어볼까? 내일 PT가 있는데 조금 포멀 하게 입어야 할까? 여기엔 무슨 구두가 괜찮지?’ 잠들기 전까지 몇 번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그렇게 고민하고서도 집안을 나서는 직전까지도 이리저리 바꿔본다. 그렇게 고민한 흔적이 마음에 드는 날은 인사도 더 경쾌하게, 회의는 1분 정도 늦게 들어가기도 했다.



*

 인간에게는 긴장감이 필요하다. 긴장감도 온도에 따라 아주 다양하겠지만, 지금 내게 필요한 건 팽팽하거나, 미묘한 극단적인 온도가 아니다. 자발적이고, 느슨해서 허전함이 없는 적당한 긴장을 말한다.


 이것은 잠옷 같은 그 옷을 그대로 입고 출근하는 나에게 스멀스멀, 어느 순간 쿵하고 다가왔다.

 ‘누가 본다고’ ‘편하면 됐지’ 하는 생각은 결국, 눕고 싶어 지고, 나태해지는 나를 만들었다. 누구나 부러워할 만큼 괜찮은 이 자유가 나를 망치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이제 잠들기 전, 루틴 같았던 생각의 시간을 다시 가지기 시작했다.

‘내일은 뭘 입을까?’

  다만, 지난 10년 넘게 했던 고민과는 결이 많이 다르다. 그때는 ‘이렇게 입으면 예뻐 보일까?’라는 마음이 근원이었다면, 지금은 잠옷을 벗고 일상을 맞이 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착장 한다. 그렇게 출근한다는 마음으로 옷을 갈아입고 나면, 느슨하지만 기분 좋은 긴장감이 장착된다. 이틀, 사흘 같은 옷을 입을 때도 있지만, 사실 매일 옷을 갈아입을 필요는 없으니 상관없다.


 옷을 갈아입는다는 것이 잘 보이기 위함이 아닌, 내게 주어진 자유를 누리는 최소한의 예의, 책임을 차리기 위한 분리 작업이었다.


 일주일에 2번 정도 재택을 하는 남편이 매번 아침에 옷을 갈아입는 나에게 물었다.

 “아침에 회의 있어?”

 “아니.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조크든”

 “(뭐래…)”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 ‘재택 생활’의 노하우가 쌓여간다. 그렇게 자유, 책임 같은 막연한 인생의 슬기로움도 조금씩 습득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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