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기인 와플팬에서 유해물질이 검출되었다는 뉴스를 들었다. 음식, 식기류 같이 먹는 행위에 엮어진 이런 불편한 진실들은 ‘모르는 게 약이다’ 싶다가도 아이를 생각하면 또 발끈한다. 이 세상의 모든 나쁜 물질을 다 비껴갈 순 없겠지만 그럼에도 피할 수 있는 것들을 살피려고 노력한다. 그중 하나가 프라이팬을 바꾸는 것이었다.
아침, 저녁 우리 집 프라이팬은 바쁘게 움직인다. 우리가 흔히 쓰는 까만 프라이팬은 음식물이 눌어붙지 않게 '불소수지'로 코팅을 한다. 마감이 제대로 되지 않거나, 긁힌 상태에서 가열을 하게 되면 인체에 해로운 물질이 나오기도 한다. 이런 아슬아슬한 진실을 알고는 있다. 때문에 코팅이 벗겨지지 않게 음식을 볶을 때는 조심조심하려고 노력했고, 설거지할 때 ‘박박’ 긁는 무의식을 단속했다. (식기세척기엔 넣을 수 없는 귀한 몸이다.) 그러기엔 사용 빈도수도 높았고, 무의식의 행동은 돌이킬 수 없이 조그마한 흠집을 만들었다. 다음 프라이팬을 살 때마다 '이제는 스텐 프라이팬을 쓰는 게 어때?'를 외치고 있었다.
스테인리스 프라이팬이 대중적이지 못한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매끈한 이 녀석은 코팅이라는 단계가 없다. 그건 바로 예열 없이 사용하면 100% 눌어붙는다는 것이다. 때문에 ‘건강을 위해 바꿨다가 정신건강에 좋지 않아 코팅 팬으로 다시 갈아탔다’, ‘성격 급한 사람에게는 비추…’ 같은 리뷰들이 넘쳐난다. 빨리빨리, 얼른 얼른을 입에, 마음에 달고 사는 나에게 과연 적합한 물건인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내 성격 중에는 급한 성미만큼이나 존재감 확실한, ‘일단 해볼까?'라는 아이가 있다. 이 무모함이 다급함을 이긴 어느 날 무작정 스테인리스 프라이팬을 사러 백화점으로 출동했다. 여러 매장을 돌며, 프라이팬을 구경했다. 그러다 선뜻 결제를 못하고 있는 나의 결정적 순간에 기적처럼, 엄마같이 푸근한 어떤 점원 분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어머! 스테인리스 프라이팬 쓰시려고?
생각 잘했어요!”
“근데 제가 잘할 수 있을지…”
믿음이 부족해 보이는 어리석은 중생을 포기하지 않고 그녀는 다시 따뜻하게 되물었다.
“왜왜? 뭐가 걱정인데요??”
“제가 성격이 너무 급해서, 잘 쓸 수 있을지 모르게…”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그녀는 말을 이어갔다.
“어머! 그게 뭐 별거라고! 약불로 3분만 예열하면 되는데 그게 뭔 걱정이야! 아무리 성질 급해도 3분을 못 참아? 그렇게 길들이고 나면, 뭐든 박박 긁어도 되고, 수세미로 싹싹 긁어도 되고~~ 나중엔 얼마나 편한데! 기다리면 낙이 온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니까"
철학적이고, 경건하기까지 한 설교 같은 멘트에 나는 홀린 듯 결제했고, ‘쓰기 전 예열 필수’ 관문 앞에 두려움 없이 섰다.
그렇게 스테인리스 프라이팬이 내게로 왔다.
은빛 자태만큼이나 스텐 프라이팬은 꽤 까다로운 도구다. 우리가 알고 있는 프라이팬에 익숙해져 있다면 더더욱 까칠하게 느껴진다. 처음 쓸 때 1번이지만, 연마제 제거를 위한 작업을 시작으로 쓸 때마다 그냥 쓸 수 없다. 약불에서 3분. 그 작업을 꼭 거쳐야 한다. 그 정도면 뭐 싶겠지만 실제로 해보면 그게 그렇게 번거로울 수 없다.
혹여라도 예열의 과정을 스킵하면, 처참하게 눌어붙는다. 특히나 바쁜 아침에 계란 프라이라도 할라치면, ‘에라 잇’ 내면의 욕이 흘러나온다. 검정 프라이팬으로 돌아갈까 싶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렇게 기다림의 순간이 쌓여간다. 어느새 이 아이로 능숙하게 전까지 부쳐낸다. 그 경지에 오르면 사람들은 스텐 프라이팬을 길들였다고 말한다. 그렇게 그 도구는 내게 길들였졌고, 나는 그 속에서 기다림이 주는 미학을 깨웠다.
*
얼마 전, 회사에서 한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했다. 혼자서도 충분히 진행할 수 있는 규모였다. 하지만 얼마 전 우리 본부에 처음 합류한 한 팀원이 있는데, 그 후배에게 전반적인 내용을 가르치며 진행하라는 팀장의 지시가 있었다. 사실 누군가와 처음으로 일을 함께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서로의 스타일을 알아가야 하고, 업무를 가르쳐야 하는 입장에 서면 더뎌지는 속도에 애가 타기도 한다. 특히나 이번 프로젝트처럼 론칭 날짜가 충분치 않는 경우엔 더더욱 그렇다.
처음 업무에 대한 설명을 하고 분장하던 오전 줌 미팅. 중요하지만 난이도가 높지 않은 일을 별도로 진행해보라고 했다. 오후 4시에 다시 만나 이야기하기로 한다. 화면 가득 열의, 부담으로 가득 찬 후배의 얼굴이 보인다.
그렇게 각자 맡은 일을 정리해 가다 보니 문득 걱정이 됐다. 아니나 다를까 4시가 조금 안됐을 무렵, 다급한 후배의 메신저가 도착했다. 30분만 시간을 더 줄 수 있냐고 묻는다. 6시까지 팀장님께 보고를 마치려면 4시엔 같이 봐야한다. 혹여라 수정할 거리가 생길 때를 대비해 2시간의 시간을 확보해둔 것이다. 4시 30분. 수정할 시간이 빠듯해보인다. 시간 계산을 위해 빠르게 굴러가는 머리만큼 또 마음이 조급해온다.
‘정해둔 시간에 맞추려면 시간을 더 줄 수 없어요. 수정할 거리가 많으면 4시도 부족해요.'라는 말을 메신저 창에 쓰고 써내려간다. 그러다 enter 키 앞에서 손이 멈췄다. 손가락은 backspace로 향해 모든 말을 지우고, 짧은 한마디를 남겼다
- 네 기다릴게요 :)
순간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냥 그래도 될 것 같았다. 이게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이렇게까지 정색할 필요가 있나. 나보다 더 다급했을 후배의 용기에 찬물을 끼얹기 싫었다
4시 35분, 후배는 늦어서 죄송하다는 끝없는 ㅠㅠㅠ 들과 함께 완성된 파일을 나에게 주었다. 정 이상하면 그때 가서 생각하자 라는 생각과 함께, 파일을 열었다. 다행히 후배가 정리한 내용은 꽤나 괜찮았다. 어쩌면 늘 해오던 나보다 더 신선한 접근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손 볼 거 많이 없겠는데요? 조금만 정리해서 바로 보고해도 되겠어요"
내 한마디에 줌 화면 가득, 활짝 웃는 후배의 모습이 보였다.
" 으! 정말요?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묻고, 답하고, 기다리고, 믿어주며 각자의 역할을 했고, 문제없이, 그리고 꽤 근사하게 프로젝트를 완성했다.
*
오늘 저녁 식사를 위해 프라이팬을 꺼내 들었다. 3분의 기다림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처음에는 그 시간이 발을 동동 굴릴 만큼 길게 느껴졌지만, 이제는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나름의 노하우를 터득했다. 음악을 듣거나, 쓰레기를 정리하거나, 그릇을 정리하거나.
한바탕 요란한 저녁시간이 끝나고 나면, 물에 불려둔 프라이팬을 가볍게 헹구고, 식기세척기에 넣는다. 기다림의 시간에 보답하듯 프라이팬은 본인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 주었고, 내 걱정과 수고까지 덜어주었다.
그렇게 오늘 저녁도 우리는 꽤나 멋있는 식탁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덕분에 어제보다 더 멋진 하루를 만들어 냈다.
<매일매일 도구도구>
세상의 모든 만물에는 각자의 서사가 있다고 믿습니다. 내가 선택해, 나를 이루고 있는 크고 작은 도구들이 가진 본연의 역할, 맥락을 생각해봅니다. 그렇게 그 안에서 이뤄지는 저만의 소소한 이야기를 기록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