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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 Sep 02. 2021

영어를 공부하는 이유

고등학교 시절, 갈색의 긴 뽀글 머리에 안경을 쓴 영어 선생님이 있었다. 그 선생님은 늘 우리에게 하는 말이 있었다.

"영어는 '관계대명사'가 정말 중요하다!"  

무척이나 복잡한 관계로 이뤄져 있을 것 같은 노골적인 이름. 주격, 소유격, 목적격 파면 팔수록 더 어려워진다. that, which, who, whom 비슷하게 생긴 이들이 왜 다르게 쓰이는지

40명이 넘는 우리 반은 그 관계대명사와 씨름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충분히 외웠다고 생각하면 나와서 테스트를 하라고 했다. 통과해야만 한다는 압박감으로 내가 뭘 외우는지도 모르지만, 뭔가를 외웠다. 내 차례가 오는 동안 비교적 앞 줄에 서 있던 친구들의 희비가 엇갈린다.

테스트는 살벌했다.

문제를 내고, 2초 이상의 정적이 흐르면 아웃이다. 끝이 빨갛고 뾰족한 막대기를 흔들며 "다음!"을 외치셨다. 통과한 친구들은 세상을 얻은 듯 안도했다. 나는 그때 한 번만에 통과하지 않았다. 몇 번만에 통과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테스트를 교무실에서도 했던 기억이 있으니, 막차를 탔을 것이다.


그때 나는, 영어가 너무도 싫었다.



영어는 암기과목이라고 말한다. 모국어가 아닌 말을 공부하는 것이니, 암기라는 장애물이 있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영어는 암기'라는 공식으로 어찌어찌 여기까지 왔다. 토익, 토플, 오픽 참 많은 영어시험을 경험했다. "다음"이라고 외치는 선생님은 없었지만, 늘 나는 그 줄에 서 있었다.




우리 집에는 3년 넘게 딸아이의 하원을 해주던 이모님이 있었다. 요즘은 내가 재택을 하고, 이모님도 바빠지시면서 예전처럼 일하지는 못하지만 가끔 안부를 묻고 밥도 같이 먹는다. 이모님은 60세를 앞두고 있다. 4년 전 이모님을 봤을 때보다 흰머리도, 주름살도 느셨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모습이 있다. 이모님은 늘 영어공부를 하신다는거.


얼마 전에도 함께 점심을 먹었다. 이모님의 작은 에코가방에는 늘 그렇듯 영어책이 들어있었다.


"요즘도 계속 영어 공부하세요?

진짜 이모님 대단하세요!"


"에이 뭘! 그래도 이거 배우니까

세상이 넓어 보인다니까.

한국에 살아도 주변에 얼마나 영어가 많아.

단어라도 읽을 줄 아니까,

백화점을 가도 더 재밌게 쇼핑한다니까!

재밌게 살려면 영어 해야지!"


 


나는 여전히 20년 전처럼 영어를 공부해야 하는 줄에 서 있다. 다른 게 있다면 그때는 이해도 안 되고, 이름도 복잡한 '관계대명사'를 위해 서 있었다면,

지금은 Truman Capoter가 쓴 Breakfast at Tiffany's를 직접 읽어보고 싶어서이고,

Emily Dickinson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이 궁금해서, 영화 속의 대사를 그 느낌 그대로 이해하고 싶어서..


진짜 내가 알고 싶은 세상을 위해서이다.



그동안 영어를 외면하고,  정도면 됐다고 각하 살았다. 근데 나이가  수록, 주변을 둘러볼 수록 언어를 알아야만 누릴  있는 것들에 계속 눈이 가고 욕심이 간다.


그동안 접고 살았던 영어책을 다시 펼쳐본다. 또 다른 세계를 온전히 느끼고, 즐기는 그날을 기대하며.


:)




+공부는 끝이 없다는 말... 이제는 받아들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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