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율리 Sep 08. 2021

나의 베아트리체

 20대 초반, 나는 언론인을 꿈꿨다. 원래는 사람들의 사연과 음악을 들려주는 라디오 PD가 되고 싶었고, 자연스럽게 전공도 방송과 관련된 곳으로 향했다. 언론정보, 방송에 대한 다양한 수업을 들으며 졸업반이 가까워질 때 즈음, 나는 좀 더 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자나 다큐멘터리 PD가 되고 싶었다.

 

 정확히 강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지만, 신문기자 출신의 교수님 강의였다. 오랜 시간 준비한 조별과제를 내가 발표했던 날이었다. 교수님을 포함해 20명 남짓 학생들 앞에 서 있는 그때, 마치 기자처럼 이 문제를 제기하자는 자세로 리포팅, 발표를 했다.


 발표가 끝나고 교수님의 피드백이 이어졌다. 내용에 대한 피드백이 끝나고 '기자정신'을 가득 안고 이제 자리로 돌아가려는 나에게 교수님이 말했다.


 "아 그나저나! 너는 근데 쇼호스트 할 생각 없니? 너무 잘 어울리는데?"



  그때를 잊지 못한다. 너무 강렬하면 당시의 공기, 분위기, 표정까지도 생생하게 기억난다고 하는데, 그때 입었던 옷까지도 그려진다. 하하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자리로 돌아왔지만, 어이없는 마음은 아직 저 앞에 서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같은 조 친구가

 “오 진짜 잘 어울린다"라며 웃어주었다.

  또 한 번 가공된 웃음을 지어주었다. 동시에 나는 속으로 시원하게 욕을 날리고 있었다.

 



-

  그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교내 언론고시 준비반에 들어가기 위한 시험이 있었다. 하필 준비반 담당 교수님이 내게 쇼호스트를 권한 그 교수님이었다. 앞으로 자주 볼지 모른다는 게 싫기도 했지만 어쩌면 본때를 보여줄 기회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시험은 쉽지 않았다. 사회적 이슈를 두고 논술을 작성하는 것인데 생소했던 주제에 당황했고 당시 나는 형편없는 글을 제출했다. 이어진 면담시간, 교수님은 내 글이 적힌 정이를 손에 쥐고 실랄한 비판을 던져주셨다. 그리고 준비반 시험에 떨어졌다는 결과와 함께 또 내게 말한다.

 

"쇼호스트 지금부터 준비해봐! 잘 할거 같아! 마케팅이나 홍보 쪽으로 말이야"  


몇 초의 정적이 흐르고, 나는 용기 내 한마디 했다.


"저는 언론인이 되고 싶지,

물건을 파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원하는 인생이 아닙니다!”



-

그때의 내가 말한 인생은 무엇이었을까?

당차게 던진, 원하는 인생이란 대체 뭐였을까?


사실 나는 그랬다.

너바나 같은 Rock이 진짜 음악이지 하다가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음악이 좋았고

상업적이어서 싫다면서도,

박스오피스 1위 영화는 다 챙겨봤다.

고독한 것이 좋다면서도,

사람들과 함께 있는 자리를 즐겼고

정의를 구현하고 싶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숨어버리곤 했다.


그렇게 눈을 부릅뜨고 원하는 인생을 말했지만, 계속 떨어지는 언론사 시험에  쇼호스트 학원도 다녀보고, 광고홍보, 마케팅을 부전공으로 택해 후일을 도모했다.

 그리고 10년이 넘게 가장  "e-commerce 회사의 마케터" 열심히 파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당시 바늘구멍 같았던 방송사 공채를 나의 현실과 타협한 거라고 그럴듯하게 포장해보고도 싶지만, 어쩌면 남들보다 빨리 언론고시를 포기했다. 무엇보다 나는 쇼호스트며, 마케팅이며 그 모든 순간들을 즐겼다. 재미있게 해냈다.


내가 추구하는 것. 좋아하는 것. 잘할 수 있는 것.

나는 이것들을 하나씩 밟으며 지금의 나에게까지 잘 걸어왔다.





  우리는 단테를 피렌체의 시인이자, 철학자 그리고 <신곡>이라는 작품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단테를 기억하는 또 다른 이름, 베아트리체.

 그는 한 번의 눈 맞춤으로 그녀를 사랑했고, 제대로 말 한번 나누지 못했지만 그녀를 가장 순수하고 고결한 사랑의 존재로 노래했다. (어떤 사람들은 베아트리체가 환상 속 인물일지도 모른다고 한다)


 하지만, 단테 역시도 베아트리체를 향한 그 순수한 사랑만을 이어왔던 것은 아니었다. 자유롭고 세속적이었던 '카발칸티'라는 인물을 통해, 단테는 그가 몰랐던 세상을 알고, 그 흐름 속에서 그의 인생을 걸어왔다.


단테의 사랑은 순수하게 초월적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세속적이지도 않았다. 그 사이의 애매한 긴장이 그의 사랑이었다.
 


 위대한 작가의 단면을 빌려, 나를 본다. 내가 추구했던 삶과 내가 살아온 삶. 어떤 것이 진짜 나의 순수한 베아트리체인지 모르지만, 현실과 꿈 그 사이에 끊임없는 고민, 사색, 긴장이 지금의 나를 이룬다.


 나중에 내가 어떻게 기억될지 모르겠다. 아니 내가 나는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위해 살았다고 결론 지을지 모르겠다. 하긴, 그건 중요하지 않다. 무엇을 원했건 무엇을 해 오던 나는 그 사이의 이 긴장감 넘치는 생각들만으로 충분히 괜찮다고 토닥여 줄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베아트리체여

안녕…




매거진의 이전글 영어를 공부하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