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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 Oct 01. 2021

내 인생에 책을 쓰는 순간이 올까?

장강명 <책 한번 써봅시다>

 초등학교 6학년. 우리 학교의 한 아이가 책을 냈다. 작년에 서울에서 이사 온 하얀 얼굴의 큰 키, 동그란 안경을 쓴 아이. 아직도 그 아이의 모습과 목소리가 선명하다. 거침없는 사투리의 향연 속에서 그 아이의 속삭이는 서울말을 동경했다. 졸업을 앞둔 겨울, 그 아이는 책을 읽고 꾸준히 써 온 독후감을 모아 책으로 엮어 출간했다. 그 당시 초등학생이 책을 낸다는 것은 굉장한 일, 아니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역시 서울에서 온 애는 달라'

정작 아이들은 '그런가 보다' 했을지언정, 선생님과 엄마들의 칭찬, 부러움, 비교가 쏟아졌다. 그 뒤 그 아이에 대한 나의 동경은 서울말 그리고 '책을 낸 초등학생 작가'라는 것이 하나 더해졌다. 형형색색의 노트에 빼곡히 적어둔 나의 글들이 한없이 초라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때부터였을까? 책이라는 존재는 한없이 멀어 보였다. 사실 책은 물론,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흥미를, 보람을 꽤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 주변에 가까운 사람들이 글을 쓰고, 책을 낸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과거 초등학생. 그때의 나처럼 마음이 콩닥거린다.


 "내 인생에 책을 쓰는 순간이 올까?"



얼핏, 내 인생과는 무관할 것 같은 확신에 찬 권유가 책 제목으로 담겨 있다. 장강명 작가 <책 한번 써봅시다>


글쓰기 모임 <인라이팅 클럽>을 만나 의식적으로 브런치를 통해서 글을 쓰기 시작하며, 한껏 움츠러들었던 나에게서 한 발자국 걸어 나왔다. 의문이 생기고, 영감을 받고, 뭐라도 내 뱉고 싶을 때, 그리고 함께 하는 사람들 와의 약속을 위해 하나씩 하나씩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서둘러 남겨버리는 결론과 툭툭 끊기는 듯한 사유에 흔히 말하는 '글태기'가 찾아올 때 즈음.

  

어쩌면 내 인생에서는 없을 거라 믿었던 말에, 겁 없이 손 내밀고 읽어본 책이다.



반응하는 글(때로는 배설하는 글)과 기획하는 글은 다르다. 그 차이를 느껴봐야 한다. 에세이 열아홉 편의 글감은 있는데 추가로 써야 하는 한 편의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속을 썩이는 경험을 해봐야 한다. 18p
 들인 시간이 길고 이뤄낸 바의 규모가 클수록 흥분의 강도는 커진다. 몇 달, 길게는 몇 년에 걸친 작업을 마칠 때에는 엄청난 환희와 감격을 느끼게 된다. 30p


책에서는 글을 써야 하는 이유, 정확히 말하자면 책을 써야 하는 이유에 대해 말한다. 한 주제로 200자 원고지 600매를 쓰는 '저자'가 되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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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살 나로 돌아가 본다. 동경이라 포장했지만, 사실은 질투심이 가득했다. 빛이 날 만큼 하얀 피부도 그랬고, 다른 세상에서 온 듯한 저 서울말도 얄밉게도 미웠다. 거기다가 우리 학교에서 글을 제일 잘 쓰는 건 나라고 믿었는데, 그 아이는 책을 냈다. 매일 밤 나도 독후감을 쓰고, 말도 안 되는 소설을 끄적인 노트가 한가득인데 그 아이는 책을 내고, 작가가 되었다. 그렇게 덮어버린 노트의 마지막 장은 질투로 가득 찼다.


이미 세월은 흘렀다. 미련은 늘 세월을 따라다닌다. 어쩌면 정확히 늘 내가 가진 공허함과, 채워도 채워도 끝이 없는 창조에 대한 갈망에 대한 답이 책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 인생에 책을 쓰는 순간을 그려본다. 어떻게든 꼭 한 번은, 뭐든 책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가끔 한번 책이라는 이름 안에 굳어져버린 저 활자들을 책임져야 하고, 그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는 생각에 스멀스멀 올라왔던 욕망을 애써 억눌렀던 적이 있다. 바보 같이.


책을 읽기 전, 내내 자신에게 물었던 질문에 답이 인다.




+ 놀랍게도 조지 오웰도, 마크 트웨인도, 박경리 선생님도, 이문열 선생님도 모두 필명을 사용한 작가들이다.

언젠가 내가 책을 쓴다면 '율리'라는 필명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만년필에 새겨진 나의 결심과 함께 언젠가 내 책이, 내 사유가 세상에서 때로는 비난받고, 때로는 깊은 토론의 소재가 되길 바라며..  







+ 책에 대해.

책에서는 우리가 책을 써야 하는 이유는 물론, 영감 받는 방법, 에세이/소설/논픽션/칼럼 등을 쓰는 방법이  설명되어 있다. 틀에 박힌 작법서라기보다 책에 대한 인식을 바꿈을 통해 글을 쉽게 쓰는 방법을 설명해준다. 글을 쓰고  쓰고 싶은 사람, 그리고 채워지지 않는 창조에 목마른 사람이라면,  답이 책에 있다는  알게 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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