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속옷을 넣어둔 서랍장을 정리했다. 언제 입었는지 모를 브래지어들이 어지럽게 엉켜있었다. 순간, 이 것들을 모두 버려버릴까 싶은 생각이 든다.
요즘 나의 '의' 생활에서 크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외출할 때 브래지어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길어지는 재택과 현저히 줄어든 약속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브라를 하지 않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러다가 아이의 등 하원 시간이나, 잠깐의 외출을 위해 브라를 입는 날이면 5분도 안되어 가슴이 답답하고, 어깨가 계속 아파왔다.
여자들의 이 속옷. 어떻게 나는 이 답답한 걸, 20년이 넘도록 하고 살았을까 생각해본다.
나의 인생 의생활에 브래지어가 들어온 것은 13살 때 즈음으로 기억한다. 그 시기에 자연스럽게 시작되는 몸의 변화와 함께, 주변 친구들이 하나 둘 입기 시작했고, 나 역시 자연스럽게 이 존재를 받아들였다. 그때는 혹시라도 브라끈이 보일까 하루 종일 신경을 곤두세웠고, 누가 등이라도 만지면 괜히 얼굴을 붉히며 짜증을 냈다. 그럼에도 나는, 우리는, 여자는 이것에 적응해야 했고, 익숙해져야 했다.
성인이 되어서 어쩌다 정말 바쁜 날 브라를 깜박하고 회사에 간 날이 있다. 브라가 없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하루 종일 더워도 벗지 못했던 겉옷의 기억과, 하루 종일 한없이 어깨를 웅크리고 다닌 나를 기억한다. 그렇게 언제부턴가 브래지어가 없는 외출이 어색해지는 내가 되었다.
하루 종일 밖에 있다가 집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답답했던 브래지어를 풀어버린다. 훨씬 숨 쉬기도 편하고, 이렇게 불편한걸 왜 하고 있을까. 이렇게 또 나를 혹사시키면서 하루를 살았구나. 나는 무엇을 위해 이 답답한 걸 옥죄고 있을까 문득 자괴감을 참 많이도 느꼈었다.
38살. 나는 조금씩 노브라에 도전하고 있다.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지내다 보니, 혹은 나이가 들면서 성숙해지는지는 몰라도
세상엔 꼭 그래야만 하는 건 없다는 걸, 우선 내가 편해야 한다는 것,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된다는 걸 하나씩 알아가며,
그렇게 나는 20년 동안 나를 묶었던 물리적인 이 브라를 더 이상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친구들과의 단톡방, 오늘 노브라로 외출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선언했다.
“야! 다른 사람이 시선을 불편해하면 어떻게 해? 진짜 아예 노브라로 나간 거야?”
“아니, 니플 패드는 했지! 그걸로도 충분하더라고”
“야 브라 너무 안 하면 가슴 안 예뻐져”
“야 그런 중력 법칙이 뭔 상관이냐, 숨쉬기 편하면 됐지"
"그래, 30년 가까이했으면 됐다. 꼭 하라는 법 있어? 내가 편한 게 먼저지"
-
스포츠용 1개, 와이어 없는 스킨톤 브라 1개 만을 남겨두고 모든 브라를 정리했다. 정들었던 물건들을 떠나보낼 때는 괜스레 마음이 뭉클하고 고마웠던 순간과 아쉬움을 담아 보낸다. 하지만 이 헝클어진 브라들에게는 고마웠다는 쿨한 마음만을 담아 보냈다.
38살. 이 녀석들을 버리면서 세상의 구분과 경계를 조금씩 느슨하게 풀어내고 있는 듯하다. 마치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나를 위한 시선으로 옮겨가고 있는 듯한 자유로운 기분.
그게 브라 따위와 뭔 상관이야 싶다가도, '노브라'라는 말 하나만으로도 자유로워지고, 나를 사랑해주는 것만 같아서 괜스레 뭉클한 그런 날이다.
안녕. 잘 가라! 브라들아!
<매일매일 도구도구>
세상의 모든 만물에는 각자의 서사가 있다고 믿습니다. 내가 선택해, 나를 이루고 있는 크고 작은 도구들이 가진 본연의 역할, 맥락을 생각해봅니다. 그렇게 그 안에서 이뤄지는 저만의 소소한 이야기를 기록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