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우리 엄마는 집에서 자주 향을 피웠다. 거실 한편에 자리 잡은 전축 위에 모래가 가득 담긴 그릇이 하나 있었고, 그 옆에는 라이터와 초록색 향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엄마는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불경이 담긴 테이프를 틀었고, 동시에 향 하나에 불을 켜고 모래에 꽂으셨다. 낮게 깔리는 스님의 목소리와 집안 가득 채워지는 향의 진한 냄새. 그때 우리 집의 아침이 늘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그 냄새가 싫었다. (불경 소리는 말할 것도 없었다.) 절, 제사, 장례식장을 떠오르게 하는 향 냄새와 오묘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연기는 내게 죽음, 고요, 경건, 침묵과 같은 단어들을 소환시켰다. 특히 이 냄새가 얼마나 뒤끝이 강한지 집을 나서도, 교복에서도 그 냄새가 남아 있었다. 10대의 어디쯤.. 내 반항의 불씨는 위태위태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가느다란 향처럼 매일매일 조금씩 타들어갔다.
어느 날 아침.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이 유난히 싫었던 어떤 날. 방 문 틈새를 타고 기어이 내 방은 향 냄새가 가득 찼다. 벌떡 이불을 발로 차고 참고 참았던 짜증을 엄마에게 털어냈다.
“저 불경 소리, 향 냄새다 다 싫어! 무슨 우리 집이 절간도 아니고!! 애들이 뭐라는지 알아? 내 옷에서 절 냄새난대!!! 좀 저거 안 피우면 안 돼??”
평소 같으면 무슨 말버릇이냐며 큰 소리를 혼냈을 엄마를 알기에, 화를 내고도 움찔했다. 3.2.1 엄마는 조용히 테이프와 향을 껐고, 빨리 씻고 나오라며 눈을 피했다. 그다음 날부터 향과 그릇이 거실에서 사라졌다. 그 뒤 매일 아침 우리 집은 그저 아침밥 냄새와 침묵만이 가득했다.
향은 오래전부터 종교적인 목적으로 널리 사용되던 도구이다. 우리는 절에서, 혹은 죽은 사람들을 애도하기 위한 수단으로 제사, 장례식장에서 주로 향을 사용 해왔다.
요즘 들어 이 향은 ‘인센스 스틱 Incense Stick'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불리고 있고, 그 용도도 많이 확장되었다. 요즘 스트레스 관리, 힐링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명상, 요가 등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는데, 이와 함께 명상의 집중도를 높일 수 있는 인센스 스틱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럽게 높아졌다. 집에서의 명상은 물론, 캠핑장에서도 인센스 스틱의 은은하게 공기 위로 번지는 연기를 보며 '향 멍'으로 심신의 안정을 찾기도 한다.
많은 관심과 함께 향 또한 우드, 플로럴 등 다양한 종류가 출시되고 있고, 향의 재를 받쳐주는 홀더도 세련된 디자인, 다양한 재질로 나와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많이 활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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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쯤. 오랜만에 만난 친한 언니를 만났다. 이 언니는 나에게 처음으로 요가를 다이어트가 아닌 명상으로 접근하게 해 준 사람이다. 요즘 매일 아침 눈 뜨자마자 5분~10분 명상을 하려고 노력 중이다라고 말했더니, '인센스 스틱'이라는 생소한 이름의 물건을 추천해주었다.
"인센스 스틱? 향? 향을 피우라고?"
"응. 집중하는데 더 많이 도움될 거야"
어린 시절, 그렇게도 내 몸에서 떨쳐내고 싶었던 그 향을 내 손으로 피운다는 게 상상이 되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 향의 이미지는 그저 밥그릇 혹은 국그릇에 담긴 모래 위에 꽂힌 긴 초록색 나무였다. 하지만 언니가 보여준 향. '인센트 스틱'이라는 있어 보이는 외래어로 검색된 모습은 나의 편견을 깨 주었다. 거기다 향도 내가 좋아하는 우드 계열도 있다고 하고. 무엇보다 어떻게든 명상을 나의 하루 루틴으로 가져오고픈 나에게, 명상의 효과를 더 높여준다는 말에 그날 바로 그 애증의 '향'을 내 손으로 샀다. 그렇게 한 달을 넘게 꼬박, 매일 아침 눈 뜨자마자 향을 피우기 시작했다.
6시가 조금 안된 시간. 아무도 깨어있지 않다. 거실 한편에 자리 놓인 향에 불을 켠다. 조용히 흩날리는 연기와 잔잔하게 나를 감싸는 향기로 눈을 감는다. 아무 생각 말아야지. 어제의 걱정. 오늘의 걱정. 다 잘될 거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어보는 하루 10분의 시간.
이 시간만큼은 아무런 생각도 하지 말아야지 싶은데, 꼭 연기가 처음 올라올 때면 엄마가 떠오른다. 우리 엄마는 그때 이 향에 불을 붙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때 내가 어렴풋이 알던, 너희는 몰라도 된다고 애써 숨기셨던 갈등과 경제적 위기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다 잘될 거야.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 연기처럼 다 날아갈 수 있을 거라 수백 번이고 되뇌며 향을 피웠으리라. 그런데, 저 철없는 딸은 교복에 배이는 향 냄새가 싫다고 하니. 그래 너희가 싫다면, 자식이 싫다면 꺼야지.. 별 수 있겠나 또 말없이 모래 속으로 향의 불씨를 구겨 넣었으리라.
길고 가느다란, 그래서 여려 보이는 향은 강한 잔향을 남기고, 바닥에 회색 재를 남긴다. 매일 아침 그렇게 나는 그때의 엄마와,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와 말없이 긴 대화를 나눈다.
사람들이 요즘, 스트레스를 어떻게 푸느냐라고 물으면 나는 주저 없이 향. 인센스 스틱을 추천한다.
하루에 몇 번이고 눈을 감고 온 몸으로 향을 느껴도 좋고, 눈을 뜨고 공기 중으로 날아가 없어지는 연기를 보고 있어도 좋다고 말한다.
향에 대한 추억이 있건 없건, 그저 가느다랗게 타 들어가며, 사라지는 연기에 실어 보내고 싶은 생각은 누구나 있을 테니. 누구에게나 이 작은 도구가 분명 위로와 공감을 전해줄 것이다.
<매일매일 도구도구>
세상의 모든 만물에는 각자의 서사가 있다고 믿습니다. 내가 선택해, 나를 이루고 있는 크고 작은 도구들이 가진 본연의 역할, 맥락을 생각해봅니다. 그렇게 그 안에서 이뤄지는 저만의 소소한 이야기를 기록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