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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 Oct 24. 2021

7세, 육아가 교육을 만나는 나이

초등입학을 앞둔 엄마의 갈팡질팡 고민 이야기

아이의 하원을 기다리는 시간. 거리 한 쪽에 컬러풀한 현수막이 쳐져있다. 형형색색의 풍선, 간식, 문구세트, 장난감들이 눈길을 빼앗는 이곳. 아이들이 많은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명 학습지에서 학습지를 하는 친구들의 숙제 검사 겸, 신규 원아 모집을 위해 거리에 가끔 마련되는 공간이다.


유치원 차가 도착하고, 아이가 친구와 함께 내린다. 멀리서 딸아이 친구 엄마가 손에 한가득 종이를 가지고 뛰어온다.


엄마의 모습을 발견한 딸아이의 친구가 나에게 말한다.

“아줌마! 오늘 저 학습지 숙제 검사하는 날이에요!

다 같이 가도 돼요?”


 친구의 손에 이끌려, 컬러풀한 현수막 아래 자리를 잡았다. 자연스럽게 학습지 선생님들의 레이더에 우물쭈물하는 내가 포착됐다.


“어머니! 7살이면 학교도 들어갈 텐데… 우리 친구도 해야죠! 잠깐이면 되니까 국어랑 수학 테스트만 한번 받아보세요!”


짧고 굵은 다정하고 자연스러운 설득에 아이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연필을 손에 쥐었다. 테스트를 보는 동안, 이런 테스트가 처음인 나는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었다.

10분이 흘렀을까. 문제를 다 푼 아이는 지부장이라는 분의 안내에 따라 간식, 학용품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작은 의자에 본격적으로 앉아 선생님을 통해 결과를 공유받았다.


“어머니! 따로 뭐 안 하세요? 이 친구 같은 경우에는 완벽주의적인 성향도 있고, 자존심이 강해서 틀리는 걸 들켜하기 싫어하는 거 같아요. 이런 친구는 한 학기씩 무조건 선행을 시켜야 해요.”


“아…네…”


“수학도 1,2까지는 더하기를 할 수 있는데 3부터는 헷갈려해요. 하셔야 해요.”


“아… 네..

사실 저도 수학이 걱정이긴 해요…”


그 짧디 짧은 시간에 어쩜 그리 많은 상담 소스를 만들어내는지. 이건 과연 팔기 위한 전략인 건지. 진짜 그 찰나의 순간에 우리 아이를 분석한 건지. 알 길이 없다. 혹은 얇디얇은 내 귀를 척하고 알아낸 건지, 속사포처럼 터져 나오는 선생님의 목소리와 저 멀리 들리는 “저는 민트색 주세요! 초코맛 사탕은 없어요?” 취향 확실한 딸아이의 목소리에 더 정신이 혼미해지는 기분이다.


“아.. 그럼 저 수학만 우선 한 달 해볼게요..”


그때 나는 무엇에 홀려서 저런 말을 했을까. 어느새 계좌번호와 자동이체일을 술술 적고 있었다.


“어머니 잘하셨어요! 바로 다음 주부터 우리 선생님이 방문할 거예요”




  아이를 키우면서 스스로의 원칙을 세운 게 있다.

‘입학 전까지 유치원 정규 수업 외 예체능을 제외하곤 학습학원이나 학습지를 하지 않겠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지만, 어린 시절 매일 저녁 눈물을 닦아가며 억지로 풀어나가던, 학습지와 숙제의 기억이 참 싫었다.


‘똑바로 앉아라. 할 거면 똑바로 해라. 공부하려는 마음이 없다. 연필 제대로 쥐어라’


책상에 박힌 고개 밑으론, 늘 반쯤 눈물이 고여있었다. 속사포처럼 흘러내리는 이 잔소리만으로도 엄마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공부를 억지로 하지 않게, 재미있게 할 수 있게 해주고 싶다는 막연함이 ‘취학 전 학습지, 학습학원 금지’라는 애매한 기준으로 투영된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오늘, 7살 딸아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학습지를 신청했다.


사진출처 : 핀터레스트, https://hideakihamada.stores.jp/


사실 뭐에 홀렸다기보다. 요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여기저기 들려오는 목소리들에 내 마음과 교육의 개똥철학이 쉴 새 없이 요동치고 있다.

주변 엄마들이 그 어떤 말을 해도 현혹되지 않으리라 마음 먹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귀가 팔랑거린다.


“수학학원 안 보내세요? 어머! 아직 뺄셈 시작 안 했어요?”

“영어 학원 안 알아보세요? 요즘은 들어가려면 테스트부터 준비해야 돼요..! 초3 때까지 영어 안 잡으면 안 된대요!”

“논술, 스피치는 기본으로 준비해줘야죠”


그러다 어떤 선배 엄마의 말이, 내게 결정적 한방을 날렸다.


“어설프게 스트레스 안 주겠다고 엄마표로 설렁설렁했다가 낭패 봤어요.. 다시 시간을 돌리면 나도 그냥 다른 엄마들처럼 학원 보낼걸.. 후회해요.”


-

 육아도 내 일도.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은 나는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 지금껏 열심히 사랑만 주면 되리라 믿던 육아가, 교육이라는 새로운 관문을 앞두고 있다. 어쩌면 그 거대한 문을 너무 늦게 알아차렸을지도 모른다.


뭐 내 인생은 어떻게 합리화해서 곱게 포장한다 해도, 한 살 한 살 커가는 것도 아까운 이 아이의 시간을 내 욕심과 이리 펄럭이고 저리 펄럭이는 애초에 없었을지도 모를 철학으로 어설프게 쓰고 있는 건 아닌지, 책상 위에 올려진 학습지 결제 영수증을 바라보며 생각이 많아진다.



‘띠링’

방문 날짜와 시간을 확인하는 학습지 선생님의 문자가 왔다.

다음 주부터, 나의 딸도 한때 내가 그렇게 싫었던, 숫자만 가득한 얇은 종이뭉치를 풀고 있겠지 싶으니 내가 잘한 건가 갈팡질팡한다.


우선 내 육아, 교육의 첫 번째 생각은 흔적도 무너졌다. 하지만 무너지기까지 어수선하고 애매했던 내 마음에 급한 불을 우선은 끄고 보자는 생각이다. 그리고 정 아니다 싶으면 다른 교육의 철학, 원칙을 세우면 되지.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조금만 천천히, 겪어보자. 아이의 초등 준비를 앞둔 나는, 부딪히지 않으면 알 수 없을, 그 어떤 것도 정답은 없을 험난하다는 교육의 육아에 발을 조금씩 내딛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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