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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 Nov 13. 2021

저는 왜 글쓰기가 여전히 어려운 걸까요?

<끝까지 쓰는 용기> 정여울 작가님에게 털어놓는 고민상담

   매일 아침 6시가 되면 펜을 든다. 글을 잘 쓰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을 때부터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이 존재하는데 그중에서도 모든 유명 작가들이 말하는 건 ‘꾸준한 글쓰기’다.

‘매일 글을 쓰다 보면 잘 쓰겠지’라는 마음 하나로, 약 6개월 정도 매일 아침 6시, 노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251 페이지를 다 채운 때 묻은 노트, 그리고 2번째 노트


 하지만 어쩐지 나는 아직 제자리에 있는 기분이다. (매일 글을 쓰긴 하지만 그저 이건 무의식에서 나를 깨우는 끄적임의 흔적일 뿐 발행으로 이어지지는 않기에 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더군다나, 어쩌면 당연하게도 고작 이 몇 개월의 세월에 마법 같은 글쓰기를 원한다면 이건 '무모한 욕심'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현듯 찾아온, 어쩌면 모두에게, 그 어떤 과정 속에서 꼭 등장하는 권태기 앞에 서서 말 못 할 소심한 반항을 하는 중이다.


  다행히 이런 나의 글태기 앞에서 나를 잡아 주고 있는 건 "글쓰기 모임" 덕분이다.

그곳에서 함께 하기로 한, 이 책을 의무적으로 손에 쥐고 읽었다.

정여울 작가님의 <끝까지는 쓰는 용기>


 정여울 작가님의 <끝까지 쓰는 용기>에는 글을 잘 쓰는 엄청난 스킬이 들어있지는 않다. 그 대신 글을 쓰고 싶어 하는 모든 이에게 들려주는 생생한 조언들이 가득하다.

 매일 아침 책을 펴면 작가님과 작은 술집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기분이다. 작가님은 내게 '왜 그렇게 여전히 글 쓰는 게 힘든 것 같냐"라고 물어보신다. (내가 나에게 하는 질문이지만...)

 그렇게 나는 매일 소주잔을 가득 채우며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

작가님, 저는 그저 행복하게만 살고 싶은 가봐요

글을 쓴다는 것은
항상 오해의 가능성이 가득한 거대한 침묵의 바다 위를 홀로 노 저어 간다는 것입니다
111p


작가님, 근데 저는 그저 행복하게만 살고 싶은 가봐요. 저는 아직도 비난받을 용기가 부족해요. 사실 저는 모두가 가진 생각에는 이유가 있고, 모든 것에 정답이 없다고 믿어요.

 근데 이런 마음을 가지고 '이래서 이 상황에 대해서 너네는 이렇게 말하겠지만 내 생각은 이래..'라는 기록을 남기는 순간, 반기를 들 이름도 얼굴도 모를 사람들의 생각이 마구 떠올라요.


 뭐랄까요. 모두가 저에게 동의한다고 했으면 좋겠고, 분란을 일으키는 글은 쓰고 싶지 않아요. 그저 행복한 인생만을 그렸으면 좋겠고, 모두 맨날 웃었으면 좋겠어요. 싸우지 않으면 더럽혀지지도 않겠지라는 그런 생각..

 근데 언제부턴가 이런 생각들로 인해 제 글에는 강렬함도 없고, 목소리도 없게 느껴지기도 해요.

‘오늘은 꼭 이런 말을 하고 싶어! 비난받을 각오로 한번 써보자!' 생각하며 글을 써 내려가다도 발행 버튼을 누르지 못한 SNS의 글들이 한가득이랍니다..


우리는, 글 쓰는 사람들은,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오해할 준비가 된 독자들의 냉정한 비난보다는 더 좋은 글을 쓰고 싶은 나의 열망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그 깊고 쓰라린 오해의 늪을 무사히 건너면 더 깊은 이해와 공감의 땅에 다다르기 때문입니다. 모든 창조적 작업을 꿈꾸는 크리에이터들이여, 타인의 악의적 댓글에 무너지지 말기를. 기꺼이 오해받을 준비, 언제든 비판받을 준비를 하되, 마침내 이해받고 공감받을 준비를 합시다. 결국 오해보다는 이해가, 비난보다는 공감의 힘이 끝내 더 오래가는 것이니까요.
111p


싸우고 싸워야 비로소 진짜 투명해진다고들 하죠. 어떤 비난, 갈등을 이겨낼 용기가 어느 날 제게도 불현듯 찾아오겠죠?



-

언젠가 저에게도 애정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습작이 올까요?

10년이 넘는 취재 기간이 필요했던 책이 <빈센트 나의 빈센트> 예요. 방학이 되면 항상 빈센트에 관련된 여행을 떠났거든요. 벨기에,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미국, 심지어 일본에도 빈센트의 그림이 있어요. 이런 식으로 여행을 다니다간 전 세계를 여행하겠다 싶을 정도로, 빈센트의 그림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어요. <빈센트 나의 빈센트>를 쓰면서 글 쓰는 대상에 대한 사랑 때문에 인생이 바뀔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256p


작가님, 전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모든 게 좋아 보여요. 금사빠라는 말 아시죠? 딱 저예요.. 금세 사랑에 빠지는… 사랑에 빠지는 게 이성에만 국한되지 않고, 연예인도, 책도, 영화도… 모든 게 다 좋고 사랑스러워서 모두 보듬고 싶어 하는 성향이 강해요.


그러다 보니 깊게 들어가지 못하는 치명적 단점이 있죠. 예전에는 그런 제가 불편하다는 생각을 못했는데, 글을 쓸 때의 전문성, 깊이를 고민하다 보니 무언가를 깊이, 치열하게 들여다볼 줄 모르는 제게 한계를 느껴요.


빈센트를 위해 10년…이라는 시간을 취재하셨다는 게 저로서는 정말 놀라워요. 이 내용을 읽는 내내, 사랑으로 인해 내 인생이 바뀔 수 있는 대상이 무엇이 있을까.. 나의 애정이 만들어낼 수 있는 습작이 뭐가 있을까를 생각하게 되어요.

 문득, 모두를 위한 사랑도 좋지만, 긴 시간 나의 에너지를 쏟을 수 있는 무언가를 꼭 찾고 싶다는 열망이 들어요.  <OOO, 나의 OOO> 언젠가 이 빈칸을 채울 애정 가득한 대상이 저에게도 오겠죠?



여러분이 사랑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 열정적으로 습작을 해보셨으면 좋겠어요. <메이블 이야기>를 읽어보시고 내가 이만큼 애정을 갖고 쓸 수 있는 대상이 무엇일까, 꼭 생각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255p


-

저는 독후감, 서평이 늘 어려워요..

책을 빠르게 훑지 말고 한 글자 한 글자를 쓰다 음어 보세요. 속독은 글쓰기에 도움이 안 됩니다. 반드시 정독하되 한 문장 한 문장이 주는 울림에 귀를 기울이면서 글을 읽어보세요. 그때그때 떠오르는 감정들을 천천히 메모로 옮겨보세요. 메모를 자유롭게 브레인스토밍 하듯 쓴 다음, 그 메모를 가지고 새로운 리뷰를 써보는 거예요.
164p


 저는 책은 좋아하는데, 그 이후에 따라오는 독후감, 서평이 늘 어려워요. 특히 어린 시절 독후감을 쓰라고 하면 ‘완독’의 압박이 저를 짓눌렀어요. 저는 책을 읽는 속도도 느리고 책을 읽다가도 문장에 꽂혀 진도가 느려지는데 그러다 보면 독후감의 전형, 즉 글의 요약,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을 완벽하게 해내지 못해요.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이 너무 많은 것도 그랬고, 완독 하지도 못했는데 이 책을 요약할 자신이 없었거든요

 서평 역시도, 누군가 내 서평을 읽고 책을 사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할 텐데 라는 괜한 압박 때문일까요? 너무 한 곳에 빠져버려 극도로 감성적으로 승화된 책의 해석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서평이 될 수 있을까 고민이 가득해요.


근데, 작가님의 이 문장을 보고 조금은 용기를 얻었어요. '한 글자 한 글자를 쓰다듬어보라는 말..'

어쩌면 느리게 책을 읽는 제게는 무엇보다 반갑고 용기를 주는 말이에요.

 한 문장에서, 한 챕터만으로도 분명 좋은 글이 나올 수 있고, 스스로 안고 있던 완독, 요약이라는 프레임에서 서평이라는 말을 끄집어 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고 있어요. 특별한 이 분들 덕분에...

글쓰기란 이런 거예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데 매일 만난 사람보다 더 친밀해진 느낌. 서로 온전히 교감하고 있기에 그 무엇도 필요하지 않은 느낌. 얼굴은 몰라도 그를 다 알 것만 같은 느낌. 그것이 교감의 힘이고 글쓰기가 가진 놀라운 감응의 힘이지요.
176p

 사실 이렇게 왜 글 쓰는 게 여전히 어려울까... 고민을 털어내고 있음에도, 한 편으로는 뿌듯한 건 조금이라도, 뭐라도 글을 쓰고는 있다는 거예요. 아무것도 쓰지 않았을 때를 떠올리면 얼마나 제 삶이 기특한지 몰라요. 

 이런 기특한 저, 뭐라도 쓰는 저를 만드는 건 앞에서 잠깐 말했던 글 쓰는 모임 <인라이팅 클럽>에서 함께하고 있는 작가님들 덕분이에요. 스스로의 슬픔을 승화시킬 줄 알고, 육아, 직장 등 힘든 상황 속에서도 펜을 놓지 않는.. 제게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큰 영감과 영향력을 주는 가장 위대한 작가님들이거든요.

 거기다 부족한  글에 기꺼이 독자가 되어주고, 과분한 칭찬과 응원을 남겨주십니다. 그리고 가끔 글을 내야 하는  부담이 되고,  조차 들기 싫은 날에도 그분들의 존재는 건강한 책임감을 안겨줘요.

그런 든든한 존재가 있기에 이렇게까지 왔다고 분명 말할 수 있어요. 사실 이 분들과 길게는 1년 넘게 함께하고 있지만 실제로 뵌 적도 없어요. 하지만 지금 저에겐 누구보다 친밀하고, 그분들의 글만으로도 모든 걸 다 아는 것 같은 그런 교감이 있어요.  

 이 책을 읽는 내내, 자꾸 <인라이팅 클럽> 작가님들의 글이, 얼굴이 정말 많이 떠올랐어요. 감사하게도 말이죠.


글 쓰는 일의 기쁨은 너무 많아서 일일이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중략) 하지만 지금은 글 쓰는 일로 인해 맺게 된 인연의 기쁨이 훨씬 큽니다. 제 책을 읽어준 독자들,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일을 하면서 알게 된 뜻밖의 인연들, 모두가 저에게 우정과 배려의 소중함을 일깨워줍니다.
99p


이미지 출처 : https://pin.it/4fnoNRM




 매일 글쓰기가 들다는 말로 작가님께 고민상담을 했다.  밖에도 정말 많은 고민이 있지만  가지만 추려 글을 써본다. 이렇게 글로 정리하다 보니 나의 수많은 고민들에는 다행히 답이 있다.


나는 나 자신조차도 기다립니다. 지금 결코 할 수 없는 일을 언젠가 해낼 수 있을 때까지, 지금 감당하지 못하는 고통을 언젠가 너끈히 이겨낼 수 있을 때까지, 나는 나를 기다립니다. 더 치열한 나를, 더 깊고 너른 나를 기다립니다.
259p


 수많은 책을  정여울 작가님 마저도  치열하고, 깊고. 너른 자신을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이제 꾸준히 글을   1년도  되지 않은 내가 어쩌면 감히 이런 고민을 했다는  부끄럽게도, 나는 기다림의 중요성을 잊고 살았다 싶다. 글을 쓰는  외에도 모든 과정에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나는 그 시간을 지루해하고 힘들어한다.


 이 고통, 고민은 사라지지 않는다. 언제든 찾아올 것이다. 나는 그때마다 작가님이 기다리는 책의 술집으로, 그리고 글로 이어진 분들이 있는 곳으로 가, 술잔을 기울어야겠다.

 글을 쓰고, 무언가를 창조하고 싶은 열망이 가득한 분들께 이 책이 도움이 될 거라 확신하고, 그 과정에서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과의 인연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걸 잊지 않으시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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