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왜 늘 약간의 환상을 동반하는가

by Glory young

요즘처럼 따뜻한 계절에는 어디를 가든 커플들이 즐비해 있고, 때로는 과하게 애정을 표현하는 모습을 보면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순간, 마음 한편에서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감정이 불쑥 찾아오곤 한다. 반대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에는 세상의 포커스가 온통 내 사람에게 맞춰지고, 주변의 모든 것이 희미해진다. 사랑이란 감정은 참 기묘하고 아름다우며, 동시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요소들로 가득하다.


사실 사랑은 형체 없는 관념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관념을 각자의 해석에 따라 ‘사랑’이라 이름 붙이고, 부풀리고, 터뜨리는 과정을 반복한다. 수많은 조건과 상황 속에서 사랑의 의미는 시시각각 변화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 감정을 공유하고 지켜내려 한다. 환상 같던 사랑이 누군가와의 관계 안에서 표상을 얻고, 그 표상이 시간이 지나 진실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사랑은 그렇게 환상과 진실 사이를 유영하며, 때로는 더 아름답고 솔직한 감정으로 우리를 찾아온다.


사랑은 비효율적인 감정이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로맨스 영화는 사실 감정 하나로 이어지는 블록버스터이며, 실상은 코미디보다 더 코미디에 가깝다.” 관계를 유지하는 데 효율성을 따지는 시대, 사람들은 때로는 실리적 이유로 관계를 맺기도 한다. 이를 비난할 수는 없지만, 효율만을 좇다 보면 관계의 본질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사랑은 계산 가능한 입력값에 따라 출력되는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논리를 벗어난, 제어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발생하고 우리를 흔든다. “사랑해”라는 말을 하면서도 문득, 내가 느낀 감정이 진짜 사랑이었는지, 아니면 내가 정의한 ‘사랑’이라는 환상 속 감정이었는지를 되묻게 된다. 그리고 다시 “사랑이란 무엇일까?”라는 뻔하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은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누군가에게는 어리석고 바보 같아 보일 수 있는 사랑일지라도, 사랑을 경험하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인생의 결정을 바꿀 만큼 진지하고 중요한 감정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로맨스에 조용히 동의하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며 감정을 공유한다.


서문이 길었지만, 나는 연애 프로그램의 열렬한 애청자다. '환승연애', '솔로지옥', '하트시그널', '나는 솔로', '사랑은 계속된다', '돌싱글즈'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챙겨봤다. 로맨스 드라마나 영화는 즐기지 않는데도, 연애 프로그램에는 유독 시간과 마음을 빼앗기곤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흥미롭게 본 프로그램은 단연 '나는 솔로'였다. 다른 프로그램들과 결이 다르지만, 화제성과 몰입도를 동시에 갖춘 '나는 솔로'는 일반인들의 리얼한 감정과 선택이 개입되어 구성되는 이야기여서 그런지 실로 매력적이었다. 출연자들의 자율성, 예측 불가한 흐름, 그리고 제작진의 최소한의 개입 등은 진짜 ‘현실’ 같다는 인상을 줬다. 프로그램 속에서 출연자들은 학력, 외모, 경제력 같은 조건을 고려하며 사랑을 선택하거나 망설인다. 하지만 머리로는 알지만 결국 가슴이 동하는 선택을 하는 결과를 보면서 '사랑'이란 얼마나 개연성 없고 감정에 충실하는지에 대한 일면을 명명백백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이 광경들은 영화 속 운명적인 사랑과는 거리가 멀지만, 우리 삶에 더 가까운 리얼리티를 반영한다.


많은 이들이 연애 프로그램을 보며 감정이입을 하고 몰입한다. 마치 친구의 연애 이야기를 듣는 듯, 혹은 가족과 안방에서 드라마를 함께 보는 듯한 감각이다. 출연자들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캐릭터를 지니고 있고, 현실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들을 응원하고, 몰입하고, 가끔은 실망하기도 하며 감정을 공유한다. 하지만 이 모든 감정은 기획된 이야기 위에 존재한다.


하트시그널, 환승연애처럼 정교한 서사와 설정을 바탕으로 제작된 프로그램들은 기획과 현실의 경계를 점점 흐리게 만든다. 어느 순간 우리는 그 기획마저 '버라이어티'라 여기며 받아들이게 된다. 이들은 SNS에서 찾을 수 있고, 실제 일상을 살아가는 인물들이며,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이런 몰입 속에서 진정성 논란이 불거지면 시청자들은 혼란에 빠진다. 자신이 믿고 몰입했던 감정이 허상이었음을 알게 될 때, 우리는 상실감과 배신감을 느낀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건, 이 프로그램들이 현실을 비추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감정을 자극하고 즐거움을 주기 위한 예능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왜 이들의 사랑에 몰입하고, 믿고 싶어하며, 때로는 실망하게 되는 걸까?


이 질문은 단순히 수용자의 특성을 넘어서, 기획과 매체가 만들어낸 프레임의 문제로 이어진다. 대중매체는 현실을 환상으로 재구성하며 우리에게 특정한 사랑의 이미지를 각인시킨다. 그 표상은 진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우리는 그 프레임을 통해 실제 연애조차 해석하게 된다.


사실 우리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연애를 하면서도 로맨스가 사라진 순간들, 사랑하기로 선택한 관계지만 때때로 미운 감정을 견뎌야 했던 시간들, 잘 보이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화장과 옷차림에 신경을 썼지만 결국 땀에 무너진 파운데이션까지. 그런 환상의 이면에 있는 현실의 감각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렇기에 사랑을 정의해 나갈 때, 대중매체의 경계 없는 환상을 지표 삼기보다 그 상상력과 현실감을 충분히 덧대어 자신만의 의미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현실의 사랑도 충분히 환상으로 감싸 해석하고 살아간다. 감정 상태에 따라, 상황에 따라 우리는 스스로 환상의 프리즘을 덧씌운다. 여기에 대중매체의 영향이 더해지면 그 프리즘은 더욱 견고하고 두꺼워진다.

결국, 우리는 사랑을 제대로 보기 위해 환상을 걷어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랑의 불완전함, 관계의 갈등, 감정의 유동성, 그리고 일상의 비루함을 인정하면서, 매체가 보여주는 '완벽한 사랑의 서사'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사랑을 정의하려 한다면, 대중매체의 틀을 답으로 삼기보다 자신만의 현실감과 상상력을 덧대어 나가는 태도가 중요하다. 사랑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살아가는 데 빼놓을 수 없는 감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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