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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긋한 Dec 10. 2020

독박육아 속 오아시스

같은 15분

1> 하루 15분의 기적, 그 시작.



“그냥 하루에 딱 15분만 해봐. 뭐든지.”

아이 키우느라 혼자만의 시간을 전혀 가질 수 없다고 하소연하는 친구들에게 내가 하는 말이다. 아기띠하고 카페에 가서 라떼 한 잔 픽업해서 돌아오면 지나가 버리고마는 짧은 시간인데? 고작 15분으로 뭘 할 수 있다고! 하고 생각 할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도 15분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루 24시간 중 15분은 사소해 보여 쉽게 흘려보낼 수 있는 시간이다. 마치 양치 할 때 잠그지 않은 수도꼭지로 흘려보내는 물처럼. 아이와 24시간 함께하는 독박육아의 세계에서는 15분이 1시간의 가치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도대체 이 짧은 시간으로 무엇을 얼마나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인지 궁금할까? 먼저 15분의 가치를 발견하게 된 이야기부터 하고 싶다. 나의 꿈 중 하나는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거였다. 하루 꼬박 진통을 하고 딸을 품에 안았던 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는데, 이 세상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지켜야 하는 존재가 생겼다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이전과는 다른 세상이 시작되었다는 것 느꼈다. 그때는 그 책임이 나의 시간도 포함되어 있다는 걸 전혀 몰랐다.



이제 막 첫 발을 내딛은 육아의 세계는 결코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독박 육아는 말그대로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가는 것 처럼 외롭고 또 힘겨워서 매일 바닥으로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이래서 다들 순산하라는 말과 함께 잊지 않고 그 말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산후 우울증을 조심하라는 말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신랑이 아침에 출근하고 나면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아기와 함께하는 날의 반복. 언제 깨어나 울음을 터뜨릴지 모르니 하루종일 긴장한 상태로 옆에서 대기하고, 시간 맞춰 모유 수유 하고 밤에 누우면 팔을 위로 올리지도 못할 만큼 근육통은 근육통 대로, 젖몸살은 젖몸살 대로 몸도 마음도 말이 아니었다. 피로가 누적된 몸은 둘째치고 가고 싶은 곳을 자유롭게 갈 수도, 시간을 원하는대로 마음껏 사용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고통이었다. 밤에 자려고 누우면 내일 다시 똑같은 하루가 시작된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몰려와 늦은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예쁜 아이를 낳고도 하루 하루를 겨우 버티는 내 자신을 볼 때 마다 안쓰러웠다. 신랑이 퇴근해서 돌아오면 하루종일 얼마나 힘들었는지 하소연 하는게 일상이 되는 건 당연했다. 문제는 매일 불평 해도 달라지는게 하나 없는 일상 그 자체였다. 그렇다면 불평하는 대신 해결책을 찾고 싶었다.


먼저 ‘문제’가 무엇인지 정의하는게 필요했다. 24시간 함께하는 시간 동안 ‘하고 싶은 일을 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아이를 돌보는 육아와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루에 한 번이라도 한다면 숨통이 트이고 기분전환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중에서도 아이를 돌보면서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책 읽기를 하고 싶었다.


하루 중 짧은 시간만이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 단 한 가지를 한다면 분명 능동적이고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가 가장 짧게 자는 낮잠자는 시간이 30분 미만인걸 확인하고 30분 보다 더 짧은 15분으로 시작했다.


우선 읽고 싶은 전공 서적 책 한 권을 골라 아이 침대 옆에 준비해 두고 아이가 잠들면 미리 준비해둔 책을 펼쳐 15분 동안 읽기 시작했다. 15분이라는 시간 안에 끝낼 수 있는 목표를 구체적으로 정하기 위해 ‘하루 3장 읽기’를 목표로 정했다. 첫 번째 날, 목표한 3장을 다 읽고 핸드폰을 눌러 시계를 확인해 봤는데 아직도 7분이나 남아 있었다. 이왕 읽기 시작했으니 남은 7분 동안 조금 더 읽다보니 어느 덧 6장이나 읽었다. 15분이 짧다고 생각했지만 처음 목표했던 3장 보다 3장이나 더 읽을 수 있을만큼 충분한 시간이라는 걸 느꼈다. 잘만 활용한다면 시간도 장소도 자유롭지 못한 육아 생활에서도 하고 싶은 일을 15분에 맞춰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출산 전에 자주 공부하던 학교 도서관이나 커피숍은 아니지만 잠든 아이 옆에서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건 꿈만 같았다. 출산한 후로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만큼 정신 없이 보내던 나였다. 그런데 육아 외에 하고 싶은 일 한 가지, 책 읽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아이의 리듬에 100% 맞춰져 있던 내 시간을 수동모드에서 능동모드로 전환해 내 삶을 다시 되찾은 작은 승리였고, 주어진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것은 감격이었다.



이 작은 승리는 더 큰 승리를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의미하기도 했다. 하루에 한 번 아이가 낮잠자는 시간을 이용해 책을 읽은 것 처럼 15분을 2번 모으면 30분이 되고, 아이가 일어나기 전 15분, 아이가 낮잠 자는 시간 15분, 아이가 밤잠을 자는 시간 15분을 모으면 어느 덧 45분을 모을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으로 정신없이 보내던 하루 하루에 단 15분 동안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시간은 바쁘고 고된 일상 속에서도 나를 지켜주는 오아시스가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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